잉여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잡지 <월간잉여>를 만나다

2013. 9. 5. 16:00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졸업 후 여느 20대처럼 취업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불합격 뿐. 자신이 잉여라고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은 처지의 '잉여'들이 많았다. 너와 내가 숨 쉴 '우리'의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잉여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기로 다짐한다. 2012년 2월, 잡지 <월간잉여>가 ‘잉여~잉여~’ 울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잉여라는 말이 웃기신가요? 

‘잉여라 놀리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잉여로운 사람이었느냐.’


 


‘잉여’ 그 위대한 탄생.


‘잉여’의 사전적 의미는 ‘다 쓰고 난 나머지’입니다.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로도 익숙한 개념일 텐데요. 원래 이는 물체와 함께 쓰이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네티즌과 청년들은 이 단어를 사람에게 까지 확대해 썼는데요. 취업을 못하거나 경쟁에 낙오되었을 때, 혹은 비참한 자신을 느낄 때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출처] 네이버 지식인


대한민국의 청년 백수, 취업 준비생 중 한 명이던 최서윤(27) 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졸업 후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는 동안 20번이나 넘게 퇴짜를 맞았고, 설상가상으로 토익점수까지 만료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그녀는 '잉여 정체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잉여들은 이렇게나 많은데 왜 그들을 위한 잡지는 없는가!'라고 말이죠. 결국 그녀는 자신이 주축이 되어 잉여를 위한 잡지를 만들기로 합니다. 그렇게 <월간잉여>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1인 매체, <월간잉여>


<월간잉여>는 제목 그대로 한 달마다 발행되는 잡지입니다. 하지만 작년 말에는 두 달 동안 잡지가 발행되지 못했고, 최서윤 씨는 정기적으로 잡지를 발행 할 자신이 없다며 정기구독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잉여 앞 '월간' 이란 단어가 위태로운 이유는 바로 이가 1인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1인 매체는 기사 작성, 디자인, 편집 등 매체의 제작과정이 단 한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입니다. 이는 자신의 의견을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고 다른 매체에 비해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선 힘겨울 수가 있는데요. <월간잉여>의 편집장 최서윤 씨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손길은 있었습니다. 바로 같은 ‘잉여’에게서 말이죠. <월간잉여>의 어느 구독자는 잡지를 살릴 방법으로 ‘300잉’(300인의 잉여)을 모집해 모금을 마련하였고, 독자들의 자발적 투고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독자들의 모습에 편집장 최서윤 씨는 사람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곤 사회 속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 소속감과 연대감을 부여해 줄 수 있는 더 좋은 잡지를 만들어 보답하기로 하죠. 신춘문예와 백일장 같은 이벤트를 열어 독자와 만남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잉여의, 잉여에 의한, 잉여를 위한 잡지 <월간잉여>. 편집장 최서윤 씨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어차피 우린 모두 잉여 아닌가요?” 




잡지 ‘월간잉여’의 잉집장(잉여+편집장) 최서윤 씨(27)



Q. ‘잉여’라는 단어가 20대와 만나면 위트 있게 들린다. 심지어 하나의 놀이 문화라는 생각도 든다.


20대는 많은 상실감을 느낄 수 있는 세대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있고 생동감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세대와 ‘잉여’라는 단어가 있을 때보다 자조적이더라도 위트 있게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춘이라는 외피가 있으니까. 하지만 잉여라는 정체성은 나이, 자신의 직업, 성별 등 과 상관없이 사회 속에서 자신이 잉여라고 느끼는 것에 달린 것 같다. 



Q. 부모님께선 <월간잉여>를 발행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부모님께서 “취업해!” 라며 닦달하는 타입은 아니시다. 하지만 잡지를 낸다고 처음 말씀드렸을 땐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 하고 싶은 걸 하자’ 주의라 결국 잡지를 냈다. 그 후 아버지께서 트위터를 하시다가 유명 파워트위터리안이 <월간잉여>를 언급하는 걸 보셨는데, 그때 뿌듯해하신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언제까지 봐 주실지 잘 모르겠다(웃음).



Q. 잉여의 원인은 개인과 사회 속 어느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회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와 세상은 20대에게 긍정적인 자세와 끊임없는 도전만을 강요한다. 취업 못한 청년들에게 '차라리 창업을 해라!', '계속 도전하면 된다.'라고 권유하는 정부의 태도만 봐도 그렇다. 현재의 청년들은 사회 속 자신에게 요구받는, 그래서 이상적이라고 믿는 모습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에 도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느끼게 된다. 결국, 현실과 주입된 이상, 그 사이의 괴리감이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자신을 잉여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다룬 청년백수의 삶



Q. 하필 글로 잉여의 삶을 풀어낸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영상이나 그림 등 다른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글은 다른 것들 보다 진입 장벽이 낮지 않은가. 영상을 찍기 위해선 많은 장비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글을 쓰는 건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면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월간잉여’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싶었고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잡지로 이를 풀어냈다. 공감과 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



Q. 잉여들의 목적은 결국 쓰임을 당하는 것인가?


어떤 재벌은 노골적으로 '천재 한 명이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은 현실을 방증하는 것 같다. 현실이 이렇다면, 난 이들이 같은 처지에 놓은 서로를 인지하고 다른 대안의 삶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지속가능한 '잉여질'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이라 생각 하는가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는 상황 속 잉여질을 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웃음). 아마 잉여들이 살아있는 게 잉여질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사회는 이런 사람들이 살아있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월간잉여’의 목적은 최대한 늦게 망하는 것이다(웃음). 그리고 올해 말 단행본 발행을 앞두고 있다. 잡지를 만들게 된 이유와 제작 과정, 다른 매체에 투고 한 칼럼들 그리고 대안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을 예정이다. 



Q. 이 세상 모든 잉여들에게 하고 싶은 말.


너무 자괴감에 빠져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변에 눈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보고, 우리가 놓여있는 사회구조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웬만한 사람은 잉여가 될 가능성이 큰 시대에 살고 있는다는 자각,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것 같다.



어디론가 달리고는 있는데 목적지를 모를 때, 앞서가는 사람의 등만 봐도 울컥, 내 속도에 처량해질 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을 때. 그럴 때, 잠시 두발을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레이스를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르며 웃고 있는 ‘잉여’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자자, 우리 잠시 숨 좀 고르고 갈까요?


▶ 월간잉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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