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해제’ 된 정보들을 근거로 작성된 신문기사 살펴보니

2011. 6. 29. 09:2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문학 속 저널리즘-『펠리칸 브리프』1 - 정보공개

알란 J. 파큘라 감독의 영화 <펠리칸 브리프>(Pelican Brief, 1993)는 배우 줄리아 로버츠와 덴젤 워싱턴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로, 작품성과 흥행 두 부문 모두 좋은 ‘성적’을 냈던 작품이었습니다. 국내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는데요, 영화의 원작은 존 그리셤(John Grisham)의 동명 소설이었죠.

<출처: 존 그리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알란 J. 파큘라 감독이 만든 영화
'펠리칸 브리프(Pelican Brief, 1993)'의 포스터.『맥스무비』 제공>

 

소설 『펠리칸 브리프』는 연방 대법관이 차례로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법대 재학생인 다비 쇼가 공개된 정보를 가지고 시험 삼아 브리프(brief)를 작성하는데, 이 브리프가 정계에 나돌게 되면서 남자 친구인 법대 교수도 살해되고 다비 쇼도 위험에 처하면서 <워싱턴 포스트> 기자와 함께 진실을 향한 고단한 여정을 시작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음 내용은 바로 다비 쇼가 브리프를 작성하기 위해 자료를 입수하는 모습입니다.


라피엣 연방재판소에 도착한 다비는 거의 비어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층의 서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금요일 정오였다.
법원은 개정 중이 아니었기 때문에 복도에는 사람이 없었다.
다비는 카운터에 멈춰 열린 창문 안을 들여다보며 기다렸다.
점심 식사가 늦어져서 태도가 딱딱해진 부서기가 창문으로 걸어왔다.

“뭘 도와드릴까요?”

결코 도와주고 싶어하지 않는 하급 공무원 특유의 목소리로 여자가 물었다.
다비는 종이 한 장을 창문으로 들이밀었다.
“이 서류들을 보고 싶은데요.”
서기는 사건의 이름을 빠르게 흘끗 보더니 다비를 보았다.
“왜죠?”
여자 서기가 물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건 공개 기록 아닌가요?”
“반 공개입니다.”
다비는 종이를 집어 들고 접으면서 말했다.
“정보 자유 조례를 알고 계세요?”
“변호사인가요?”
“이 서류를 보는데 꼭 변호사일 필요는 없지요.”
서기는 카운터의 서랍을 열어 열쇠 고리를 꺼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복도를 따라 오세요.” (Grisham, 1992/2004, 107-108쪽)


다비 쇼는 연방재판소를 찾아 재판 관련 소장과 관련 증거물과 심리 기록 등에 대한 자료 공개를 요구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처음 ‘반 공개’라면서 꺼리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그는 ‘정보자유법’(FOIA) 등을 거론하면서 자료 공개를 이끌어내게 됩니다(여담입니다만, 정보공개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 나라 정부나 미국 정부나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다비 쇼가 재판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찰력 있는 브리프를 작성하는 데 활용한 정보공개 제도입니다. 평범한 법대 대학생이 이 제도를 활용, 통찰력 있는 브리프를 쓸 수 있다는 게 놀랍죠.

사실과 팩트(fact)를 바탕으로 총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본령이라고 했을 때,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총체적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실과 팩트를 드러내는 구술(증언)과 함께 자료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료는 단행본, 정기간행물, 연구논문(물), 판결문 등 공개적인 자료 이외에도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생산 관리 또는 폐기하는 기록물과 문서 등도 포함하는데, 시민들이 이들 정부나 공공기관의 기록물, 문서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바로 ‘정보공개법’ 등에 근거한 정보공개 제도인 것이죠.

이처럼 정보공개는 헌법적 권리인 알권리에 기반, 기자와 법조인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정부 및 공공기관이 생산 관리하는 기록, 자료 등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보공개 제도는 스웨덴이 1766년 ‘출판자유법’을 제정, 처음으로 정부 공문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한 이래 1960년대 미국에서 도입됐고, 한국에서도 1996년 12월31일 법이 제정돼 1998년부터 실시되고 있죠.

아시겠지만, 신문 기사 가운데에서도 다비 쇼가 했던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기사가 적지 않습니다. 즉 기사의 출처가 정부, 기업 또는 법조 조직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 등이 아니라, 기자나 제3의 단체 등에서 정보공개를 청구해 입수한 자료의 팩트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실제 다음의 기사는 중앙선관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청구,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분석해 작성된 기사입니다.


<출처: 『세계일보』, 2010년 4월9일자, 2면>

 

이처럼 최근 국내 신문에서도 정보공개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보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기사를 적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사 가운데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 본지의 정보공개 청구에 따라 공개한 ....에 따르면’ 등의 표현이 담긴 기사는 대체로 정보공개를 통해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사가 작성됐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분초를 다퉈야 하는 국내 언론의 속보 경쟁에서 상당한 시간 소요로 인한 제한과 민감한 정보의 공개에 부담을 느끼는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수동적 태도 등과 맞물리면서 현실에서 기자들이 정보공개를 활용해 기사 작성하기에는 적지 않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정보공개 제도 실시 초창기에는 단순히 자료 접근을 위한 권리 정도의 기능적 기술적 의미 정도로 이해됐지만, 제도 활용폭과 이해가 높아가면서 정보공개 자체가 또하나의 큰 비전이 되기도 합니다. 즉 정보공개는 알권리를 위한 자료의 접근을 보장하는 정도의 제도가 아니라, 정보화 또는 지식사회의 도래에 따라 민주주의 요체가 되는 듯합니다. 그래서 최근 정보공개만을 전문하는 하는 시민단체가 국내에서도 생겨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공개센터’가 바로 그것이죠. 정보공개센터 소장인 하승수 변호사는 정보가 중요하게 부각된 시대의 정보공개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보공개제도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현실로 만드는 제도이다. 정말 국민이 주권자이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면, 정부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에게 제대로 보고하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주권자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고 주권자가 위임한 권한으로 일을 하고 있는 정부가 생산한 정보는 당연히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제공돼야 한다. 그것을 분명히 하는 제도가 정보공개제도이다.”(하승수, 2009, 7쪽)


정보공개센터는 매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얻는 공식 자료를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고 있고, 이 가운데 상당수 자료가 신문 등에 보도되기도 하죠. 아래는 정보공개센터가 정보공개를 청구해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출처: 『세계일보』, 2011년 6월16일자, 10면(5판)>

 

정보공개를 실시하는 각 나라마다 정보공개의 영역과 대상이 달라 각 나라별로 독특한 정보공개의 지형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이는 아마 각 나라와 민족의 역사성, 특수성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예를 든다면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경우 개인의 성적, 병력 등은 프라이버시로 철저히 보호되는 반면 세금 정보 등은 탈세할 경우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공개돼야 할 정보로 분류돼 공개됩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교육정보 등이 주요하게 부각되고 세금 관련 정보는 개인정보라며 공개되지 않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보공개 영역이나 대상을 놓고 각 나라별로 정보를 가진 진영과 정보를 보려는 진영간, 또는 정보를 보려는 진영간에도 다양한 양상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정보공개 편의성과 관련한 논란 가운데 하나가 자료의 복사 허용 여부인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전자 자료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 복사를 둘러싼 논란은 점점 비중이 적어지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자료의 특성상 복사를 놓고 공공기관과 이를 확보하려는 시민, 기자 등간의 갈등은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 『펠리칸 브리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옵니다.

문 앞에 붙은 팻말에는 ‘배심원실’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안에는 탁자도 의자도 없었다.
벽을 따라 파일 캐비닛과 상자들이 줄지어 있을 뿐이었다.
다비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서기는 벽을 가리켰다.
“저기에요. 이쪽 벽에 있는 것. 방 안 나머지 것들은 다른 잡동사니들이죠. 첫 번째 파일 캐비닛에 소장과 관련 문서들이 다 들어 있어요. 나머지는 발표와 증거물과 심리 기록이에요.”
“재판은 언제였죠?”
“지난 여름이었어요. 두 달 동안 계속되었죠.”
“항소는 어디예요?”
“아직 완결되지 않았어요. 11월1일이 기한인 걸로 알고 있어요. 댁은 기자인가요?”
“아녜요.”
“좋아요. 분명히 알고 있겠지만, 이것들은 사실 공개 기록들이예요. 하지만 예심 판사는 일정한 제한을 가했죠. 우선, 난 댁의 이름과 이방을 방문한 정확한 시간을 기록해 놓아야 합니다. 둘째, 이 방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항소가 완결될 때까지 이 서류들 가운데 어떤 것도 복사할 수 없습니다. 넷째로, 이곳에서 손 댄 물건은 정확히 원래 있던 자리에 되돌려놓아야 합니다. 이건 판사의 명령입니다.”
다비가 파일 캐비닛들이 있는 벽을 응시하며 물었다.
“왜 복사하면 안되죠?”
“판사님에게 물어보세요. 됐죠? 자, 이름이 뭐죠?”
“다비 쇼.”
서기가 문 옆에 걸려 있는 서류 판에 이름을 받아 적었다.
“여기 얼마나 있을 거죠?”
“모르겠어요. 서너 시간쯤.”
“우린 5시에 닫아요. 떠날 때 사무실로 날 찾아와 주세요.”(Grisham, 1992/2004, 107-108쪽)


결국 정보공개 제도는 시민, 기자 등이 의미와 중요성 등을 제대로 인식하고 얼마나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빛을 발휘하는 정도가 차이가 날 것입니다. 공개 영역과 대상을 둘러싼 대립의 지점이 확정될 것이며, 실무적 차원에서의 ‘갈등’도 해결의 방향을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논문이나 기사 작성은 물론 생활의 진실에 대해 공식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하고 싶다면 정보공개를 적극적으로 이용해보면 어떨까요?

또 우선 먼저 신문 속에서 기사의 자료 소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출입처,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공식 자료인지를 정확히 알고서 기사를 보고 읽고 평가한다면, 신문에 대한 이해, 평가가 훨씬 다차원적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참고문헌>
Grisham, J.(1992). The pelican brief. New York: Rights Unlimited, Inc. 정영목 역(2004). 『펠리컨 브리프』. 서울: 시공사.
하승수 조영삼 성재호 전진한(2009). 『정보사냥』. 서울: 환경재단 도요새.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