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은 무섭다, 인간의 ‘익숙함’에 대한 고찰

2013. 11. 4. 10:18다독다독, 다시보기/생활백과





우리는 매일 별 생각 없이 밥상에 오른 음식들을 입으로 가져갑니다. 그 음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밥상까지 왔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할 겨를은 없죠. 오늘 소개해 드릴 <월드피스 다이어트>(황소자리)라는 책을 보시면 한 번쯤은 우리 식생활을 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출처 - 교보문고]


미국의 현대식 도살장에서 살아있는 소를 스테이크로 뒤바꾸는 데는 25분이 걸린다. 한 인부는 시간당 309마리가 지나가는 죽은 소들의 다리 한 짝을 잘라낸다. (...) 전 세계적으로 매년 600억 마리의 육상동물들이 우리의 ‘맛과 취향’을 위해 도살당한다. 우유나 계란은 괜찮지 않을까. 인간도 그렇듯 소도 살아있는 내내 젖을 분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낙농장에서는 강제로 항상 임신 상태를 유지한다. 송아지를 출산하자마자 분리시키고 하루 40~50㎏의 젖을 생산하도록 만든다. 오물더미의 좁은 닭장 속에서 생산되는 계란도 마찬가지다. 계란이나 우유를 먹는 일은 “온갖 형태의 고통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경향신문 2013-01-26]세계평화와 진정한 변혁은 우리의 밥상, 채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우리가 먹는 고기들이 얼마나 끔찍한 환경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육식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습관’ 때문일 겁니다. 이미 우리는 고기를 먹는 습관에 길들여진 것이죠. 저 또한 이 책을 읽고 식욕이 딱 떨어져 고기는 다시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딱 한나절 만에 다시 허겁지겁 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먹는다는 건 단순히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는 행위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먹는 행위에는 크게는 인류의 역사, 민족의 역사에서부터 작게는 가족의 식습관까지 담겨 있습니다. ‘인류의 가장 정교한 집단의식’으로 불리는 이유죠. 이 먹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서 우리는 음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깔려 있는 ‘통념’까지 받아들이게 됩니다. 육식만 해도 그렇죠. 우리는 ‘인간은 원래 잡식 동물이었다’, ‘동물성 단백질은 필수 영양소다’ 등 육식을 합리화할 각종 ‘통념’들을 너무나 많이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습관이 밴 것도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2만~6만 년 전쯤 커다란 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했고, 약 1만 년 전쯤에야 목축을 시작했다고 하네요. 엄청나게 긴 것 같지만, 300만 년에 달하는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고기 먹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채소는 날 것으로 잘 먹지만 고기를 생살 그대로 잘 먹진 않죠. 오히려 양념을 듬뿍 쳐서 고기 본래의 맛을 숨길수록 좋아한다는 겁니다.


육식을 위해선 동물을 ‘죽여야’ 하는데 그것도 우린 아직 익숙지 않습니다. 누군가 죽여 온 동물을 먹을 수는 있어도 직접 모가지를 비틀긴 쉽지 않습니다. 가차 없는 ‘살육’을 하려면 우리는 인간 본연의 연민을 억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동물보다 인간을 우월하고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타인을 해치기 위해서는 가슴으로 느끼는 자연스러운 유대감부터 잘라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다른 사물을 ‘배제’하는 훈련을 계속하다 보면 다른 인간도 배제하겠죠. 인종차별, 심지어는 전쟁까지 익숙해질 지도 모릅니다.


<플라스틱 바다>(미지북스)라는 책은 우리의 습관이 만들어낸 또 다른 ‘괴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플라스틱입니다.




[출처 - 교보문고]


1997년 저자 찰스 무어 선장은 하와이에서 캘리포니아로 향하고 있었다. 호놀룰루 항구를 떠난 지 8일째, 그가 탄 해양관측선 알기타호는 북태평양 고기압 지대에 진입했다. (...) 무어 선장은 잔잔한 그림 같은 바다에서 수면 위에 점점이 흩어진 플라스틱 조각들을 발견했다. 해안가라면 모르겠지만, 육지로부터 몇 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발견하기란 흔치 않은 일이었다. (...) 그곳은 훗날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라고 불리게 된다. 그는 그곳의 상황을 단순히 쓰레기 산이나 섬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묽은 플라스틱 수프’다. (...) 이후 1999년 무어 선장은 북태평양에서 무작위로 11개 표본을 수집해 조사한 결과 제곱킬로미터(㎢)당 평균 33만여개의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됐다고 보고했다. 한 표본에서는 플라스틱 조각이 플랑크톤의 수보다 더 많았다.


 [경향신문 2013-09-26] 그 바다는 ‘묽은 플라스틱 수프’ 그 자체였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3억 톤의 플라스틱 제품이 생산된다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육류 소비량보다 1500만 톤이 더 많은 양입니다. 우리의 하루 생활을 떠올려 보면 플라스틱을 빼 놓고는 얘기할 수 없지요. 비닐봉지, 페트병, 플라스틱 일회용 컵, 플라스틱 박스 등등... 흥청망청 쓰고 아무렇게나 버리지만 이게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큰 관심은 없었던 듯합니다. 어딘가 외딴 곳에 매립되거나, 잘 하면 재활용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요. 아마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이 흐르고 흘러 바다 한가운데에서 발견될 줄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바다 표면에서 다랑어 한 마리가 뛰어오르는 것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떠다니는 걸 더 보기 쉬운 세상이 됐지요.





이 플라스틱은 안타깝게도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버린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란 점이 끔찍하지요. 실제로 2008년에 샛비늘치 670마리를 조사해보니 35%인 234마리가 평균 1mm의 플라스틱 조각을 삼킨 상태였다고 하네요. 83개의 파편을 삼킨 놈도 있었고요. 이 샛비늘치는 참치나 고래의 주요 먹잇감인데요. 플라스틱을 삼킨 샛비늘치를 참치나 고래가 먹고, 그걸 다시 우리가 먹을 거라는 사실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겠죠. 실제 해양 생물을 주식으로 삼는 북극해 연안의 이누이트족에게서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아 1명당 2명의 여아가 출생하고 아기들이 저체중으로 조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면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별다른 고민이나 반성 없이 육식을 하고 플라스틱을 써 온 인류에게 언젠가 그 무심함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을까요. 우리의 ‘습관’을 한 번쯤 되돌아볼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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