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의학 발달의 기초, '세균'이 바꾼 세상

2014. 1. 21. 10:39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근래 두 세기 동안 가장 위대한 의학상의 진보는 무엇이었을까요? 세균과 바이러스로 속절없이 죽어가던 사람들을 구해 낸 항생제나 백신일까요? 아니면 정확한 진단으로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있게 해 준 엑스선이나 CT·MRI 같은 촬영 장비였을까요? 세상을 바꾼 의학상의 10대 획기적 발견을 다룬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메디치)가 제시하는 답은, 아마도 많은 분들의 ‘합리적’ 상상을 빗겨나갈 것 같은데요.


<영국의사협회지>가 전 세계 1만1000명 이상의 독자들에게 얻은 대답은 바로 ‘공중위생’이었다고 합니다. 공중위생이란 별 게 아닙니다. 청결한 수돗물을 제공하고 하수와 쓰레기를 안전하게 처리해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는 겁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것이 산업화 초기에는 무척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지금 제3세계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지만 말이죠.




[출처 - 교보문고]


“잿더미와 오물이 쌓여서 도로 표면이 높아져 있다. 빈민가 입구에 있는 물웅덩이나 수로는 불쾌한 냄새를 풍기고 사유지도 예전과 달리 대변으로 넘쳐나고 있다.” 1832년 5월 영국의 리즈 시에 콜레라가 처음으로 창궐했을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콜레라는 700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영국 전역에서 6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콜레라의 원인은 다름 아닌 그 더러운 환경, 오염된 물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의사의 피나는 노력이 있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1831년 겨울 영국의 의학도 존 스노우는 의사 수련을 받고 있었다. 그는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는 뉴캐슬 근처 킬링워스의 한 탄광에서 치료법이 없는 죽음의 병을 앓고 있는 많은 광원들을 돌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콜레라의 원인은 미아즈마(miasma·나쁜 공기나 기운)라고 알려져 있었다. 미아즈마는 늪지대나 하수구, 화산 등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다. 스노우는 죽어가는 광원들을 보며 큰 의문에 빠진다. 그는 하수구도 늪지대도 없고 흡입할 증기도 없는 깊은 지하에서 일하는 광원들이 콜레라에 걸리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매일경제 2012-10-20] X선·백신…문명을 창조한 의학의 10대 발견



‘근대 역학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스노우가 질병의 원인을 밝혀냈다면,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던 젊은 변호사 에드윈 채드윅은 실제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는 <대영제국 노동인구의 위생 상태에 대하여>라는 보고서를 통해 리즈 시의 콜레라 발생이 위생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청결과 배수 상태가 나쁜 지역이 위생 상태가 좋은 지역보다 콜레라 발생률이 두 배가 높았다는 겁니다.


채드윅은 1848년 공중보건법을 통과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 법을 통해 영국은 역사상 최초로 국가가 공중위생을 갖춰나가게 됩니다. 하수 시설 구축 이후 사망률이 인구 1000명당 26명에서 17명으로 떨어진 것을 보면 대단한 성과임을 알 수 있지요. 공중위생이란 건 최신 의학기술에 비하면 빛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갖춰지면 이처럼 많은 질병을 초기에 예방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생을 강조하고 세균을 완전히 박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다 보니 역설적으로 우리는 또 다른 부작용을 안게 되는데요. <좋은 균 나쁜 균>(글항아리)는 그런 모순을 다룬 책입니다.




[출처 - 교보문고]



건장한 미식축구 선수를 손쓸 겨를도 없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슈퍼박테리아균은 왜 생겼을까. 작은 땅콩 부스러기에도 과민반응을 일으켜 생명까지 위협하는 알레르기성 질환이 느는 이유는 뭘까. 바로 우리 몸을 둘러싼 미생물을 지나치게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염증 치료를 위해 먹은 항생제는 몸속에 사는 이로운 세균에게까지 융단폭격을 가했다. 전염병 원인균을 퇴치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소독하는 데 집착했다. 그러자 미생물들은 끊임없이 약물에 내성을 키웠고, 무해한 세균을 거의 접촉해보지 않은 인체의 면역체계는 매우 민감해져서 식품에도 격렬하게 반응하거나 자기 몸까지도 마구 공격하기 시작했다.


[경향신문 2012-07-28] 좋은 세균과의 공생이 잘 사는 방법



지난 100년 동안 미생물에 대한 의학적 연구는 오로지 질병을 일으키는 것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한데 우리 몸에는 해로운 세균보다 이로운 세균이 더 많습니다. 소화관에서부터 코와 기관지에 이르기까지 내벽과 피부를 덮고 있는 세균의 수는 인간의 세포 수보다 10배나 더 많다고 하네요. 이 미생물들은 감염성 질환을 방어하는 보호 덮개 같은 구실을 합니다. 인간의 면역체는 이렇게 몸 속에 침입한 무해한 세균을 무시하도록 진화해 왔는데요.


공중위생이 발전함에 따라 세균이란 세균을 모두 말살하면서부터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무해한 세균마저 거의 만나보지 못한 우리 몸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해졌습니다. 면역계는 차츰 가까운 이웃, 자기 몸을 마구 공격하는 못된 습성을 나타내게 되는데요. 실제로 알레르기 같은 질환은 1800년대 이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발경화증, 루푸스, 류머티스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 질환 역시 최근에 급증하고 있지요.


항생제 남용 역시 마찬가집니다. 의사들은 병을 일으킨 세균이 무엇인지 시간 들여 살피기보다 대부분의 세균을 한 번에 싹 죽일 수 있는 융단폭격식 항생제 처방을 선호했습니다. 우리몸에 사는 이로운 미생물까지 다 죽여 버린 셈이지요. 우리가 즐겨 먹는 가축들도 대부분 항생제에 푹 절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세균들은 항생제에 대항해 내성을 키웠고 이제는 손 쓸 도리조차 없는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같은 ‘슈퍼세균’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공중위생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콜레라는 아직 완전히 퇴치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200여 종의 콜레라균 중에 유해한 균은 딱 2가지뿐인데 인간 거주지 인근의 오염된 물에서만 발견된다는 겁니다. 이쯤되면 과연 콜레라균이 인간을 오염시킨 것인지, 인간이 콜레라균을 변형시킨 것인지 의문도 듭니다. 결국 열쇠는 인류가 쥐고 있습니다. 항생제조차 대부분이 미생물로부터 얻는 것이라는 걸 상기한다면, 한갓 미물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인류 생존의 필수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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