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도 많아졌으면 하는 소설 속 사람들

2014. 5. 29. 11:07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시시각각 떠오르는 뉴스 때문에 무엇 하나 집중하기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그 어떤 버라이어티 쇼보다 엽기적인 뉴스를 매일같이 접하다 보니 이제 웬만한 소설은 소설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그래서 최근에는 좀 잔잔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고른 책들에 등장하는 이들은 처음 만나면, 이질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요즘은 만나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내 곁에도 이런 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형사, 권력에 맞서 싸우는 기자, 마음의 병까지 치료해주는 간호사, 학생들과 웃고 떠드는 선생님까지 어쩌면 너무 당연하지만, 요즘 같은 팍팍한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 말입니다.

 

5월의 마지막 주, 조금은 따뜻한 이야기들을 쓰고 싶었습니다. 우리 곁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인 동시에,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만나게 되는 사람들. 소설 속 그들의 모습처럼, 우리 세상에도 이런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시작은 살인사건입니다.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던 40대 이혼 여성이 목이 졸린 채 발견되죠. 그녀가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누구에게 원한을 샀길래 이렇게 무참히 살해되었는지,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채 관할서인 니혼바시 경찰서에 새로 부임한 가가 형사가 사건에 투입됩니다. 가가 형사의 임무는 살해된 여성의 그 날의 행적을 좇아 이 사건의 진범을 찾아 나가는 것이고요.

 

시작은 그저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 나서는 걸로 여겨지지만, 책을 읽다 보면 보통의 스릴러와 무언가 다른 점이 느껴집니다. 이 소설은 살인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해된 여성을 둘러싼 여러 명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죠. 가가 형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이 의심스러워 보이던 사람도 알고 보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선의의 거짓을 행한 것이었고, 고부 갈등으로 가정 파탄에 이른 것처럼 보이던 집안도 사실은 누구보다도 끔찍이 서로를 생각했던 이들이었습니다. 사건을 둘러싼 여러 사람의 삶을 보여주며 인간 드라마를 그리고 있는 것이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_ 교보문고

 

여기서 가가 형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건을 파헤치고 위협적인 형사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처를 치유해주고,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책의 중반부를 넘어가게 되면 이 가가 형사의 매력에 사건 자체는 잊어버릴 정도로 빠져들게 되는데요, 우리 곁에도 가가 형사 같은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는 일생을 살아가며 단 한 번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곳, 혹여나 찾게 되더라도 하루빨리 나오고 싶고 끔찍하게 아픈 경험으로 남을 곳, 바로 중환자실입니다. 그런데 여기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공간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병원을 삶의 공간으로 삼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 의료진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낯선 땅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 펜로즈 병원에서 20여 년간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죽음을 마주한 이들의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민자가 많은 미국 땅의 환자들은 아픈 몸보다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는 것이 더 큰 아픔입니다. 그래서 수만 명이 사는 공간이지만 더욱더 외롭고 고독한 이들이 많죠. 저자 역시 이민자이기에 그들의 고통을 알았고, 그 누구보다 그들의 아픔을 잘 이해했기에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려 노력합니다.

 

이미지 출처_ 교보문고

 

날로 상업화되어가는 병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 따뜻한 간호사와 의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보다 더 치료하기 힘들다고 하죠? 이민자들이 받았던 극진한 치료보다 더 도움이 되었던 건 의료진들의 따뜻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떠나는 순간 '당신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학창시절 제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선생님은 굉장히 권위적이거나 자기 할 말만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전 학교를 싫어했고, 당연히 지금도 학교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렸죠. 그런데 <완득이>를 만나며 세상에는 이런 선생님도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소설이기는 했지만 말이에요.

 

똥 주는 완득이 선생님의 별명입니다. 겉으로 보면 나만 괴롭히고, 술만 마시는 비렁뱅이 선생님이지만 알고 보면 이 세상에서 내 생각을 가장 많이 해주는 이들 중 한 사람입니다. 이 똥주가 매력적인 건 학생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다는 것입니다. 같이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하고, 자신의 모든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죠. 그러면서도 아버지처럼 무한한 내리사랑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 이게 바로 똥주 선생의 매력입니다.

 

이미지 출처_ 교보문고


세상을 향한 마음의 벽을 쌓고 사는 완득이는 똥주 선생을 만나며 변화합니다. 킥복싱을 배우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법을 익히고, 얼굴색이 다른 어머니이지만 엄마를 만나고 부모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힙니다. 그렇게 완득이는 똥주 선생 덕분에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나갑니다. 내게도 똥주 선생 같은 선생님이 있었다면 지금의 내 삶은 훨씬 더 풍성해졌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랍니다.


 

 

 

기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언론사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요즘, <밀레니엄>을 읽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미카엘 같은 기자 정신을 가진 기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레니엄' 잡지사의 기자 미카엘은 한 재벌 기업의 부패를 폭로했다가 거꾸로 고소를 당해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그저 힘없는 기자 출신 미카엘은 판결에 승복하고 잡지사를 나와 생활하던 중 또 다른 제안을 받게 됩니다.

 

스웨덴의 대재벌 '방예르'가의 은퇴한 총수가 의뢰한 사건인데, 열여섯에 실종된 손녀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재벌 기업 때문에 기자직을 상실하고, 또 다른 재벌 기업의 제안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미카엘은 그 제안을 수락하고 방예르 가문의 조사에 착수합니다. 그리고 거대 재벌 안에 감춰져 왔던 인간의 탐욕과 삐뚤어진 욕망을 마주하게 되죠.

 

이미지 출처_ 교보문고

 

인간은 누구나 커다란 힘 앞에서는 작아지고,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두려움을 갖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그러한 두려움을 펜으로, 영상으로 극복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기자를 원하고, 그들을 열렬히 지지합니다. 국민들의 지지가 있기에 기자는 진실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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