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우리의 ‘바캉스’ 모습, 사치 혹은 경제발전의 두 얼굴

2014. 7. 11. 09:0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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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1996. 7. 26 ‘바캉스 연료비 총 1,176억원’ 기사 사진



등줄기와 이마에 흐르는 땀, 밤이 돼도 사라지지 않는 열기… 한낮에는 밖에 돌아다니는 것 조차도 힘든 진짜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무더위 속에서 오늘도 불철주야 업무에 정신이 없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한 켠에는 시원한 바다와 계곡, 국내외 여행지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어딘가를 떠난다고 해서 편안하게 쉬다 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비슷한 휴가 시기로 인해 유명한 곳이라면 어딜 가나 사람들에 치이고, 꽉 막히는 도로는 휴가로 인해 더 큰 스트레스를 얻게 만들곤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생긴 말이 ‘집 나가면 고생’이란 말이죠. 그렇다고 휴가기간 어딘가로 떠나지 않으면 섭섭하기에 고생을 알면서도 우린 떠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오래전부터 볼 수 있는 우리의 휴가철 모습인데요. 하지만 지금이야 다양한 방법으로 휴가를 즐길 수 있지만, 여가라는 문화가 조금씩 정착되던 산업화 초기 우리나라의 휴가철은 정말 고생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휴가나 여행이라는 말보다 ‘바캉스’라는 말이 더 익숙했던 그 시절 뜨거운 여름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바캉스라는 말은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지만, 점차 그 쓰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표준어 사전에서도 ‘휴가’ 혹은 ‘여름휴가’ 등으로 순화해 쓸 것을 권하고 있는데요.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의 바람이 불며 미국과 유럽의 문물이 마치 지적이고 좋은 것처럼 받아들여지던 60년대이기에 휴가의 불어 표현인 ‘바캉스’가 일반적으로 쓰였습니다. 마치 경성시대 ‘모던껄’, ‘모던뽀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말이죠.



출처_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1971. 8. 28 농번기에 밀려온 행요 바캉스 상처



하지만 6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걱정이었던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서울에는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고 여전히 아이들은 미군의 지프를 쫓아 다니며 ‘깁 미 더 쪼꼴렛’을 외치고 있었죠. 이런 상황 속에서 바캉스란 어쩌면 사치일 뿐이었죠. 1963년 8월 16일자 동아일보 ‘경포해안의 단층’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피서객은 피서객대로 멱감다가면 그만이고, 마을사람들은 또 그런대로 장사만하면 그만이겠지만 유행의 첨단을 끌어모은 것 같은 레저족과 바닷가 노동으로 햇볕에 그을리다 못해 아예 흙빛이 된 마을의 생활전선파수병 사이에 드물게나마 오고가는 장사 속 대화는 때때로 서울과 뉴욕 사이보다 더 먼 거리를 느끼게 한다.’


-동아일보 1963. 8. 16 ‘경포해안의 단층’ 기사 내용 중


바캉스를 떠나는 사람과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생각보다 더욱 컸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논다는 것은 죄악처럼 여겨지다 보니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휴가를 내지 못하는 직장인이 대다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캉스가 그저 사치였던 60년대 초반을 넘어 중후반으로 가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바캉스라는 말의 어원이 프랑스에서 왔듯 프랑스식 여름휴가가 소개되면서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는데요. 너도 나도 배낭과 텐트를 들고 여행길에 나섰고, 대학신입생들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바캉스를 떠나는 것도 젊음의 특권이기도 했습니다.



출처_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65. 8. 2 ‘붐빈 바캉스’



60년대는 바캉스 문화에 대한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피서를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서민들은 철없는 배부른 사람들의 행태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언론 역시도 ‘서양 문물을 따라하기 바쁜 철없는 젊은이들’이라 기사를 내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상류사회의 전유물인 바캉스가 대중화 됐다’며, 바캉스는 삶의 재충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죠. 그럼 이 시기 피서지로 인기가 많았던 곳은 어디일까요? 예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찾는 여름 피서지는 바로 바다인데요. 특히 부산의 경우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밀려드는 인파에 대해 연일 언론에서 보도하다시피 했습니다.


각 해수욕장에 도합 40만의 인파가 들끓어 올 들어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송도에 10만 광안리에 12만, 해운대에 8만 기타 10만으로 부산 시내는 온통 ‘바캉스 붐’


인천송도해수욕장에는 1만여 명의 경인피서객이 들끓었다. 이날 인천과 송도해수욕장을 잇는 장장 4킬로의 도로에는 택시, 합습, 버스, 자가용차로 장사진을 이루었고 그나마 차를 못타서 걸어가는 시민들도 많았으며, 이날 동인천역에는 7천 5백여 명의 승긱이 내려 올 들어 최고의 기록을 냈는데, 평상시보다 손님이 3배나 많다고…


-경향신문, 1965. 8. 2 ‘장마갠 후 부산만 40만 인파 기사 내용 중




60년대를 넘어 7, 80년대로 넘어가면서 이제 여름 바캉스는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니게 됐습니다.기업들은 휴가비를 주면서 바캉스를 독려했고 성수기 때는 도심지가 한산하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하게 된 것도 바캉스 열풍에 한몫 하게 된 것인데요. 이렇게 바캉스가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면서 여름이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모습들이 신문 기사를 채웠습니다.



출처_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1968. 7. 15 ‘성하를 위한 모드 비치가운’ 



바캉스를 즐기는 바닷가에서의 한 때는 발랄한 아름다움이 한껏 발산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여성이 수영복 차림만으로 모래밭을 활보하는 것은 에티켓에 어긋나는 일, 수영복은 물속에서 헤엄치기 위한 의상이며, 일단 평지로 올라왔을 때는 몸을 감싸주는 의상 즉 비치가운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1968. 7. 15 ‘성하를 위한 모드 비치가운’ 기사 내용 중


경향신문사에서 마련한 수영강습회 회원 1백여 명이 27일 상오 9시 동양고속버스편으로 대천해수욕장으로 떠났다. 8월 3일까지 7일 동안 시원한 서해에서 수영의 기초부터 익사구조법 등을 익히게 될 이들은 대천관광호텔에서 숙식한다.

-경향신문, 1970, 7, 27 ‘수영 강습회원 대천으로’ 기사 내용 중


여름이 되면 너도나도 바캉스를 즐기면서 새로운 사회적 격차를 느끼게 하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누가 살갗을 더 매력적으로 태웠는지 은연 중 자랑을 하기도 하고,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갔다 와야 체면이 서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또한 바캉스 문화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적인 사회적 시선까지 만들기도 했습니다. 미니스커트와 비키니 수영복이 익숙하지 않았던 사회이기에 몸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비키니 차림으로 해수욕장에 돌아다니는 여성들의 모습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큰 돈을 들여 만든 고속도로가 주말 레저와 바캉스를 떠나는 승용차가 50% 이상 차지한다는 점에 산업도로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며 국회 건설위원들이 정부를 향해 비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태는 국민들 사이에 위화감만 조성하게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죠. 이처럼 바캉스가 대중화 되었던 7, 80년대에도 바캉스에 대한 찬반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피서지에서의 각종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철장사라는 명목으로 바가지 요금을 받는 상인들과 버스와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터미널과 기차역, 피서지에서의 성 문란에 대한 우려와 성추행 등의 사건, 경비 마련을 위한 범죄 등 바캉스와 관련 된 사건과 사고는 매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모처럼의 여름휴가가 온통 짜증으로 얼룩지게하는 등 피서지옥을 방불케 하고 있다. 해수욕장의 시설물 사용료와 물건값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바가지 상혼이 판을 치고…(중략). 피서길의 고역은 차표 구하기에서 시작된다. 하루 2천 3백여대의 고속버스로 10여만 명이 드나드는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경우 3일전 예약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피서객이 몰리는 강릉, 속초 등 일부 노선은 3일전 예약표가 당일 상오에 동이나 버리기 일쑤…(중략). 차표 사기가 어렵게 되자 암표상들의 극성도 대단하다.


-경향신문, 1978. 7. 22 ‘집 나서면 고생… 짜증 속 피서지옥을 벗긴다’ 기사 내용 중



출처_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1978. 7. 22 ‘집 나서면 고생 짜증 속 피서지옥을 벗긴다



건전한 휴가 보내기, 알뜰 피서, 폐안끼치는 여름휴가 캠페인 등 사회정화운동과 자연보호의식 등의 함양으로 전반적으로 행락질서가 크게 개선된 것이 올 여름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건전한 휴가질서와는 달리 일부 피서지에서는 여전히 바가지 요금을 받거나 불결한 환경을 방치하기도 했고, 무분별한 10대 폭력, 풍기문란행위 등이 생겨 바로 잡혀가는 행락질서를 먹칠하기도 했다…(중략) 앞으로 해수욕장, 유원지, 관광지 등의 행락질서는 사회정화운동 및 자연보호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자발적 참여가 있을 때 비로소 확립될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경향신문, 1981.8. 14 ‘쓴맛을 남긴 피서붐’ 기사 내용 중


‘안 가도 후회 가도 후회’라는 말로 대표되는 바캉스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만들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이기도 했습니다. 오일쇼크에 이은 불경기와 90년대 IMF사태까지 국가적 경제적 위험이 찾아와도 새로운 모습의 바캉스 문화를 만들면 만들었지 사라지진 않았던 바캉스는 우리의 삶에 아주 중요한 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출처_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1973. 7. 11 ‘이상 무더위에 원색의 납량’



이렇게 바캉스의 예전 모습은 현재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른 풍경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1년에 단 한 번 있을지도 모를 이날을 바라보며 가족, 친구, 연인과 계획을 세우고 힘들더라도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점이겠죠. 갈수록 무더워지는 요즘,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알찬 휴가로 즐거운 추억 만들며 인상 찌푸리지 않는 여름휴가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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