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을 수가 없다’ 감성·지성·구성 삼위일체 기획기사들

2014. 8. 25. 13: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 flickr by Diego Sevilla Ruiz   



바다거북은 알을 낳을 때 뭍으로 기어 올라옵니다. 해변의 모래를 깊이 파고 그 안에 알들을 낳은 뒤, 다시 모래를 덮어 감춰두죠. 천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바다로 들어갑니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 바다거북들은, 세상과 만나자마자 뭍에서 바다에로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가혹한 운명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바다에서 기다리는 어미를 찾아서요. 안타깝게도 새끼들의 대부분은, 바다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동안 독수리 같은 천적들에게 잡아먹힙니다. 극히 일부만이 살아남아 바다의 어미와 상봉한다고 해요. 


수많은 기사들이 매일같이 쏟아지지만, 과연 그 가운데 몇 꼭지나 정독될까요?(바다거북의 새끼들은 과연 몇 마리나 바다에 당도할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는 옷깃 한 번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지만, 독자와 기사 사이는 제아무리 눈과 헤드라인이 마주친다 한들, 쉽게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인연이 되려면 이쪽은 '읽고' 저쪽은 '읽혀야' 하는데, 읽을 거리도 많고 볼거리는 더 많으니, 독자 입장에서는 기사 하나에만 눈을 두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죠. 


영웅은 난세에서 출현하고, 연꽃은 진창 속에서 핀다 했던가요. 읽히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도저히 읽지 않을 수가 없는 매력적인 기사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감성, 지성, 구성 삼위일체를 이룬 기획기사들이 바로 그러한데요. 지금부터 소개해드릴 세 편의 훌륭한 기사들을 여러분과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출처_ flickr by European Parliament



책으로도 나온 20부작 기획기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너무나 유명한 시죠. 정현종 시인의 「섬」입니다. ‘그 섬 파고다’라는 기사 제목을 읽자마자 이 시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파고다(탑골공원)라는 곳은 어쩌면, 기사 제목처럼 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난해 11월 4일부터 29일까지, 날마다 한 꼭지씩 연재되었던 이 기사는 파고다에서 소일하는 노인들을 담담히 비추며 현 사회의 노인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지면을 필름 삼아, 펜을 렌즈 삼아” 작성했다는 ‘그 섬 파고다’는, 그래서 마치 20부작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프롤로그 격인 1부와 2부는 각각 ‘지금의 나는 미래의 너다’, ‘시간이 멈춘 그곳, 차라리 섬이었어라’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노인문제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며 나이 먹는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늙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을 직시하게 하고, 그럼에도 그 문제에 무신경하고 무관심한 우리의 현주소를 꼬집고 있죠. 부사나 형용사를 걷어낸, 있는 그대로의 파고다라는 ‘섬’. 그 섬은 분명히 우리 가운데에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현종 시인이 노래했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죠. 당신과 나 사이에 말입니다. 


‘그 섬 파고다’ 취재팀은 2013년 ‘제279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 부문을 수상했고, 올해 1월 272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기사를 묶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기사 내용 자체의 우수함뿐만 아니라, 기사가 하나의 콘텐츠로서 출간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사례까지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그 섬 파고다’는 기억할 만합니다. 



출처_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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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기자 출신 소설가의 르포 기사 


기자 생활을 하다 작가로 데뷔한 예는 문학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조한 문체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 현장을 직접 취재하기도 했던 종군기자였죠. 영화로도 만들어진 범죄 소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작가 마이클 코넬리는 ≪LA타임스≫ 범죄 담당 기자였습니다. 2011년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표백>을 쓴 주인공은 동아일보 현직 기자인 장강명 씨였죠.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 출신 소설가를 꼽는다면, 김훈 씨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기자 시절부터 문장가로 불리며 다양한 산문과 문학 관련 기사들을 썼었죠.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 씨는 저서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에서 김훈 씨에 대해 “도식적이고 규격화된 천편일률적인 문학기사가 극히 당연시되던 시절 그가 모 일간지를 통해 선보인 문학기사는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으며 “신문기사가 이렇게 쓰여질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과 이런 글이 과연 객관성과 명료성을 생명으로 하는 신문에 기사로 실릴 수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동시에 자아냈다”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30년간 기자 생활을 했던 김훈 씨가 2012년에 르포 기사를 썼습니다. 일본 동북대지진 피해 지역 취재였는데요. 국내 일간지의 청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습니다. 김훈 씨가 취재 기자로, 시인 겸 여행작가이자 출판사 ‘달’ 대표인 이병률 씨가 사진 기자로 동행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기자정신이 발동했다”라고 소회를 밝힌 김훈 씨는, 지진의 폐허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이재민 가족의 삶을 특유의 담담하고 힘 있는 문체로 담아냈습니다. 그의 르포에는, ‘대지진’이라는 이미 벌어진 명확하고도 거대한 사건에 함몰되지 않고, 콘크리트 틈의 풀과 같은 폐허 속의 ‘사람’을 찾아내려 한 고집이 묻어납니다. 



출처_ 중앙일보 2012.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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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가 남기고, 생존자가 증언하고, 기자는 기록한다 


‘4월 16일, 세월호 - 죽은 자의 기록 산 자의 증언’이라는 기사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두 단어가 ‘죽은 자’와 ‘산 자’였습니다. 사고와 관련한 정부의 이런저런 공식 발표가 아닌, ‘그날’의 현장을 직접 목도했고 경험했던 이들의 기록과 증언 들을 주된 실증으로 삼은 기사이리라 느꼈습니다. 경험하지 않은 이들의 ‘말’이 아니라, 경험한 이들의 눈물과 몸짓에 귀 기울인 기사이리라 짐작했습니다. 


기사 여는 글의 제목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입니다. 잊지 않기 위하여, 이 기사가 쓰여졌음을 알리는 것이죠. 우리가 어떤 사건에 대해 “잊을 수가 없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만큼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잊지 않으려면, 강렬해야겠죠. 강렬하다는 것은, 생생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4월 16일, 세월호 – 죽은 자의 기록 산 자의 증언’은, 생생합니다. 희생자가 남긴 자료와 생존자가 증언한 정황을 토대로, 기자는 충실히 기록했습니다. 단지 글에 의한 기록만은 아닙니다. 침몰하던 배의 공간과 각도를 그래픽으로 표현한 섬세함이 눈에 띕니다. 배가 가라앉는 동안 시시각각 오갔던 선원 및 탑승자 들의 통화 내용과 메신저 대화가, 침몰 진행 시간별로 노출되는 효과를 통해 안타까움을 배가합니다. 읽는 기사이자 보는 기사이며, 또한 ‘느끼는’ 기사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날을 잊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생경함을 생생함으로 바꾸는 힘. 글과 기록의 위력 아니던가요. 


이 기사를 쓴 취재팀의 선임기자는 “시간은 최대한 잘게 쪼개고, 공간은 최대한 좁게, 하나 하나 꼼꼼히. 우리는 기록하는 자들이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올 7월 ‘제286회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 부문을 수상한 이 취재팀, 이 기자들의 ‘기록’ 덕분에, 독자들은 더더욱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날을, 그 사람들을, 그 아이들을 말입니다. 



출처_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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