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까톡 2030’, 젊은 독자를 도발하다

2014. 10. 27. 13: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출처_ [까톡2030] 불금! 핫 플레이스 5곳 / 2014.07.08. / 한국일보



“우리, 까놓고 이야기해봅시다.” 


누군가 이런 말을 던졌다면 대화 분위기는 어떻게 될까요. 묘한 긴장과 함께 논쟁(이라기보다는 말싸움)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설이 오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마음이 상할지도 모릅니다. 복싱으로 치면 빙빙 돌며 아웃복싱 하지 말고, 제대로 붙어보자는 의미일 것인데요. 답답함을 풀자는 것이지만 그만큼 상처도 클 수 있습니다. 때문에 ‘까놓고 이야기해보자’는 건 사실상 상대방에 대한 도발이죠.


한국일보의 ‘까톡 2030’은 도발적인 지면을 만들어보자는 기자들의 생각에서 시작됐습니다. 갈수록 젊은 독자들을 인터넷에 뺏기고 있는 신문 제작 환경의 답답함을 풀어보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독자들에게 도발하고’ ‘우리 스스로를 도발해보자’는 것이었죠. 진실 보도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근엄하게 세상사에 훈수 두는 ‘지사형 기자’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자도 필요하기에, 청년들의 고민을 대변할 수 있는 기사를 써보겠다는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출처_ [까톡2030] 그래서 우린 썸을 탄다 / 2014.09.04. / 한국일보



 응원과 비난 사이


한국일보의 지면은 모든 페이지가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하다고 평가 받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적어도 매주 한 개 면 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까톡’은 ‘까놓고 토크하자’는 의미고, ‘2030’은 20대와 30대의 이야기를 담자는 의미였죠.


사회부, 경제부, 산업부, 문화부, 디지털뉴스부에서 20~30대 막내급 기자들이 한 명씩 모여 팀이 만들어졌는데요. 그동안 신문에서 쉽게 다루지 않았던 소재들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여러 사회현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까발려 보기로 했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도 잠시 접기로 했죠. 있는 그대로의 날것에 가까운 지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답니다. 


그래서 ‘까톡2030’이 택한 첫 번째 아이템은 ‘혼전동거’였습니다.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는 삶의 방식이지만, 색안경을 쓴 기성세대 입장에선 ‘섹스에 굶주린 젊은이들의 비도덕적 일탈’로 폄하되는 동거 문제를 선입견 없이 다뤄보고 싶었죠. 왜 결혼 대신 동거를 하는지, 동거를 통해 일단 함께 살아보면 결혼하는데 더 도움은 되는 건지, 동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섹스 없는 동거는 가능한지, 가난한 젊은이들이 경제적 문제 때문에 동거를 택하는 건 아닌지 등등.



2030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까톡 2030] >




첫 회가 나간 뒤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독자들은 “젊은이들의 동거에 대한 고민을 잘 담은 것 같다” “재미있는 내용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까놓고 토크 한다더니 새로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다 아는 내용 아니냐”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동거가 좋다는 거냐 나쁘다는 거냐”는 혹평이 엇갈렸죠. 회사 안팎에서도 찬반양론이 거셌습니다. “한국일보가 좀 새로워졌다. 젊어지려고 하는 노력이 보인다”는 응원이 있었던 반면, “수준 이하의 선정적인 지면이다” “선데이서울을 만들겠다는 거냐”는 지적도 많았죠.


응원의 글과 악플이 동시에 쏟아지면서 ‘도발적인 지면 제작’이라는 당초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었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기자들은 ‘젊은이들의 삶과 고민을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런 지면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라는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 ‘까톡2030’은 매주 1회 독자를 만나며 적지 않은 주제를 다뤘답니다. 아무래도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는데요. 연애야말로 젊은이들이 고민하고 열광하는, 가장 중요한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2030의 고민과 삶을 담다


‘데이팅 앱을 통한 젊은이들의 만남’에선 친구를 통해 친구를 소개받는 전통적인 소개팅 방식 대신 요즘 유행하는 앱을 통한 만남을 다뤘습니다. 지인을 통한 만남은 불만을 제기하기 어렵고, 책임감 때문에 쉽게 정리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는 게 젊은이들의 생각이었죠. 앱에 등록하면 조건과 취향(심지어 성적 취향까지도)이 맞는 상대를 편리하게 고를 수 있고, 연애 상대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무제한 소개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데이팅 앱’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넓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내거 인 듯 내거 아닌’으로 표현되는 젊은이들의 ‘썸’ 문화도 빠질 수 없었습니다. 연인이란 공식적인 관계가 되면 급격하게 애정이 식어 시들해 지는 것을 경험하거나, 상대에게 구속당하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은 연애 대신 ‘썸’타는 것을 선호했어요. 본격적인 연애를 하려면 적잖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연애를 포기하고 썸을 탈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2030 직장인들의 삶도 단골 소재였습니다.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하루에 풀어버리는 그들만의 ‘불금’ 문화를 조명했었는데요. 특히 불금의 명소로 각광받는 ‘핫플레이스’를 소개한 코너는 반응이 뜨거웠답니다. 어떠한 객관적인 기준 없이 한국일보 2030기자들이 일방적으로 선정한 핫플레이스 다섯 곳에 대해 “좋은 정보 감사하다”는 반응은 극히 일부였습니다. “이미 철 지난 지 한참 된 곳을 뜨는 곳으로 소개한 기자들의 감각과 정보력이 구리다” “도대체 가보기나 하고 쓴 것이냐”는 항의부터, “서울의 명소만 소개하지 말고, 지방의 핫플레이스도 알려 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출처_ [까톡 2030] 新 골품시대…당신의 서열은 어디쯤입니까? / 2014.10.02. / 한국일보



‘직장상사들에 대한 뒷담화’에선 사무실에서 마주치기조차 싫은 진상 상사들의 민낯이 까발려졌습니다. 부하 직원을 노예처럼 취급하는 상사, 후배의 공을 가로채는 상사, 능력 없고 무식한 상사, 잘난 척 하는 상사, 성희롱하는 상사…. 이 소재에 대한 기자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워낙 평소 공감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취재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고, 짜증나는 부장, 차장, 1진 선배를 떠올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서 썼다.”





‘월급님이 로그아웃 하셨습니다’에서는 직장인들 월급 통장의 속살을 들여다봤습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사표를 던지고 싶은 유혹을 견뎌가며 받는 월급이지만 다음 월급날이 돌아오기도 전에 잔고에 ‘0’이 찍히는 경우가 다반사죠. 대출 이자, 카드값, 보험료, 각종 공과금, 통신료에 적금이라도 한두 개 들면 마이너스 인생이 되는 셈입니다. 젊은 직장인들은 다음 월급날까지 궁핍한 삶을 살아야 하는 기간을 보릿고개에 빗대 ‘월급고개’라 부르며 카드 돌려막기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까톡2030’에서 조명한 ‘일코’ 현상도 관심거리였습니다. ‘일반인 코스튬플레이’의 줄임말로 연예인과 만화 등에 빠져 있지만, 사회적 지위나 남들의 시선 때문에 ‘광팬’임을 드러내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뜻합니다. 남성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면서도 ‘주책스럽다’는 시선 때문에 은밀히 팬 활동을 하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전문직 여성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답니다. 전문가들은 “무언가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비정상이라고 취급하는, 연예인에 열광하는 것은 미성숙한 짓으로 보는 우리 사회가 문제”라며 “자신의 취미를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지적했습니다.



 조로했던 막내 기자들의 회춘


‘까톡2030’ 기사 출고에 참여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막내 기자들로 구성됐지만, 이들도 입사 후 급속히 ‘노령화’되는 현상 때문에 젊은이들의 톡톡 튀는 감각을 따라잡는 건 쉽지 않았답니다. 때문에 ‘까톡2030’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도 했는데요. 


“불금이라고 해야 퇴근 후 치맥과 발동 걸렸을 때 강남의 번화가 술집에서 ‘죽도록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던 한 기자는 “불금에 블루스 파티를 즐긴다는 취재원을 만나러 갔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함께 갔던 20대 여기자는 외국인이 즉석에서 춤을 청해 엉겁결에 블루스 파티에 동참하게 됐는데요. 그는 “춤이라곤 춰본 적이 없었는데 외국인의 리드에 몸을 맡기다 보니 음악에 빠져들게 됐다”며 “나중에 꼭 블루스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내 불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힙합을 통해 금요일을 보내는 청춘들이 아주 신선해 보였는데 꼭 취하도록 먹고 마셔야 불금다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출처_ [까톡 2030] 불타는 금요일/ 2014.07.08. / 한국일보



 출항 4개월 ‘까톡2030’의 미래는?


‘젊은이들의 썸’을 취재한 기자는 “취재원들로부터 연애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간접 연애를 하는 것처럼 가슴이 설렜다”고 털어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썸’은 사귀기 직전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는데 요즘은 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죠. 취재 결과 썸을 타는 것도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번듯한 직업, 남성적 매력, 언변, 외모 등 4가지가 갖춰져야 요즘 트렌드처럼 2~3명과 동시에 썸을 탈 수 있다고 합니다. 썸에 중독된 한 젊은이는 “썸이란 게 설렘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연애보다 훨씬 짜릿하다”며 “도저히 끊을 수 없다”고 말했죠. 


그러나 연애이든 썸이든 이성과의 만남 자체를 기피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의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 이성을 만날 시간과 여유가 없거나, 취업을 하지 못해 이성과 만나는 것 자체를 사치라고 여기는 청춘들이죠. 썸을 취재한 또 다른 기자는 “썸을 사치라고 말하는 대학생을 보면서 나도 비슷한 처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는데요. 대학생과 달리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썸을 탈 수 있는 상대조차 없어 박탈감은 더 심했다는 게 해당 기자의 푸념이었습니다.


‘까톡2030’은 뜨거운 찬반양론 속에 4개월째 독자들과 만나고 있지만 모든 게 순조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까톡2030’에 참여하는 기자들은 코너 특성상 편집국에서 가장 ‘젊은 피’에 속하지만, 각 부서별 막내라는 위치 때문에 과도한 평시 업무에 까톡 취재까지 더해져 극심한 업무 부담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민란’ 수준의 반발을 달래느라 노심초사하기도 했는데요. 결국, ‘까톡2030’과 관련해 가장 두려운 것은 이런 말입니다. 


“선배,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 이러십니까? 우리 까놓고 이야기해볼까요?”



위의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10월호>에 실린

한준규 한국일보 사회부 차장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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