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상을 녹여낸, 시공을 이어주는 문학작품

2014. 11. 11. 13: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 experience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지향하지만, ‘현재’를 삽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인생,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고 이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작가 또한 자신이 바라본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작품에 담기 마련으로, 굳이 역사서가 아니더라도 각 작품에는 저자가 겪은 시대적 배경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책에는 이런 일들이 설명적인 형태로 기술되어 있다면 소설 등 문학작품에는 은유적 우회적으로 담겨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맥락은 동일하므로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살아온 배경을 짐작해보는 것도 은근한 재미가 될 것입니다.



 부조리로 점철된, 중국 현대사


중국작가 위화의 대표작 <인생>은 우리에게 공리가 출연했던 장예모 감독의 초창기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나 심지어 이름조차 ‘부귀’였던 주인공이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했지만 문화대혁명 기간을 맞으면서 그 덕분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게 되는 상황 등 너무나도 역설적이었던 당시 사회상을 기막히게 교차시키고 있는 작품이지요. 


소중한 아들은 가장 절친했던 친구의 차에 치여 죽기도 하고, 만삭인 딸은 홍위병들에게 시달리면서 계속 굶던 노의사가 만두를 먹다 체하는 바람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어이없이 죽는 등 이 소설은 전쟁보다 더 무서운 부조리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인생>은 모든 상황이 뒤집히고 얼마 안 있어 재차 뒤집혀버리는 사회를 살아온 중국인들이 왜 그리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지 엿볼 수 있는 책으로, 중국 내부적으로도 상당한 논란을 야기했던 문제작입니다. 무엇보다도 21세기 현 시점과 불과 몇 십 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이념이라는 하나의 테제에 갇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살았는지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출처_ 교보문고 (좌) / 네이버 영화 <인생> (우)



한국의 시대적 변화상이 굉장했던 것처럼 ‘대륙’의 변천사 또한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인생>에서 표출된 이념이나 문화대혁명이라는 굴곡을 넘어 20세기말부터는 중국도 시장경제를 본격 받아들였고, 이제 어떤 면에서는 서구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 가파른 변화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 작품은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입니다. <정글만리>에서 작가는 이미 이념은 온데간데없고 바야흐로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21세기 중국의 현실을 거의 논설문에 가까울 정도로 강하게 표현합니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 작품은 현재 한국에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인 중국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소설이라기보다는 픽션이 가미된 일종의 르포르타주에 가깝습니다.


부모 세대는 마오를 경배하고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홍위병들을 보고 겪거나 홍위병으로 살아왔는데 그 자녀들은 그 어떤 시장경제보다 더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게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 가장 인상적인 중국의 변화 아닐까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인생>과 <정글만리>를 읽으면 급변한 중국의 모습을 소설이라는 돋보기를 통해 흥미롭게 간접 체험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_  교보문고 (좌)  / imgsou (우)  



 <백년 동안의 고독>에 담긴 ‘신비성’의 정체 


어렸을 적 ‘아기공룡 둘리’를 봤을 땐 고길동이 그렇게 나쁘게 보였는데 성인이 되어 둘리를 다시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고길동에게 연민을 느끼는 순간 당신은 이미 어른이라고 흔히들 말하지요. 이처럼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처럼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다소 시간이 필요한 작품도 있습니다.


중국의 문학작품이나 드라마도 과장이 꽤 심한 편이지만 남미의 작품들은 단순 과장의 차원이 아닌, 거의 마법 아니면 신비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이런 경향은 특히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전설이나 신화 같은 내용이 현실 속에 어렴풋이 묻혀있기도 하고 꿈과 현실, 현실과 상상을 정확하게 구별하기도 어렵습니다. 



출처_ yes24 



그렇다면 마르케스가 현실이긴 한데 전혀 현실 같지 않은 환상적인 내용을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스페인의 남미대륙 침략 시점부터 끝없이 이어진 약탈과 식민지배로 얼룩진 콜롬비아의 역사가 이 작품의 내면을 흐르고 있는 배경입니다. 현대에 접어들어서도 바나나 공장 같은 플랜테이션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현지인들이 노동력을 한없이 제공해야 하는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수십 년도 아니고 수백 년에 걸쳐 압박을 받으면서 누적된 민초들의 고통은 거의 주술이나 원시마법에 가까운 환상적 수사가 아니면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에서 <별그대>가 굉장한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우리를 위시하여 아직도 중국인들에겐 판타지적 탈출구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중국의 작품들에 왜 과장이 많고, 남미 작품들에는 왜 마법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지 그 시대적인 맥을 짚으면서 작품을 감상하면 감상의 흥취가 배로 늘겠지요. 또한 그런 배경을 반드시 알지 않더라도 <백년 동안의 고독>은 은유와 묘사를 통한 ‘마술적 리얼리티’라는, 논설문이나 설명문과는 다른 문학작품이 추구해야할 미덕이 잘 담겨있는 굉장한 수작입니다.



출처_ eltoque  



 한강의 기적과 도시화 과정 속 한국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수백 년에 걸쳐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져온 해외 몇몇 국가들의 적응과정이 현대 한국에서는 불과 50년 만에 대부분 구현되었습니다. 시간의 지평을 백년으로 살짝 넓혀보면 한반도는 왕정부터 시장경제•민주주의까지 수많은 시스템을 전부 경험한 셈으로, 극히 짧은 기간 내에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해낸 한강의 기적은 놀라움으로 가득한데 이런 급격한 변화에 따른 아쉬움들을 어루만져주는 소설들도 각 시대마다 우리 옆에서 조용히 동행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황석영 작가의 단편 <삼포 가는 길>은 주인공 정씨가 고향으로 내려가던 중, 기억 속에 남아있던 고향은 사라지고 이미 공사장으로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추억의 상실’을 안타까워하는 수작입니다. 종로 피맛골 등이 하나씩 재개발되면서 현대적인 음식점들이 입점하는 동시에 옛 맛을 자랑하던 전통 가게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만들어진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도시가 화려해지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꼭 반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삼포 가는 길>에서 고향을 상실한 정씨는 그저 공사장 일자리를 잡기 위해 삼포에 가는, 삼포가 원래 고향도 아닌 동행인 영달 씨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입장이 되고 맙니다. 



출처_ 네이버 영화 <삼포가는 길>  



1960~70년대 머나먼 삼포의 부두도 공사판으로 변하듯 산업화가 진행되면 도심은 거대 메트로폴리탄으로 급성장합니다. 일련의 도시화 과정은 변화에 잘 적응하는 이들에게는 큰 기회를 제공하지만 변화에 무딘 사람들에게는 물가가 오르면서 삶이 어려워지고 비자발적으로 밀려나는 계기가 되어버리는데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은 1980년대 부천시 원미동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잔잔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작은 원미동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은 매우 약소하지만 실제로는 개개인 모두에게 나름 치열한 현장이자 현실입니다. 이 작품 속에는 발전한 현대사회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 치인 슬픔과 어두움이 은연 중 깔려있으나 그것이 절대 어떤 불만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으며 조용하지만 리얼한 삶의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그만큼 <원미동 사람들>은 도시화 과정 중 소외된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동시에, 큰 변화의 흐름 속에서 각기 제 갈 길을 가는 서민들의 애환과 일상의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매우 힘차게 그려내고 있기에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일 것입니다.



출처_ 교보문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문학


우리는 각자의 시선, 누구나 자기만의 프레임을 갖고 이 세상을 바라봅니다. 다양성이 확보되고 인정받게 된 현상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쉬이 인정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도 있겠지요. 살아온 배경이 다르면 다른 사람이 무슨 연유로 그런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기 어렵기 마련인데 문학작품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 간 시공의 격차를 메워줄 수 있는 도구로서도 여전히 그 존재감을 강력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역사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책을 통해 어떤 시간과 장소를 어루만져볼 수 있고, 독서는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소통의 창구가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를 보듬어주는 어떤 멋진 작품이 나올지, 기대되지 않으시나요? 우리가 읽으면서 깊게 공감할 수 있고 미래의 세대가 그 작품을 보면서 다시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명작의 출현을 절로 기다려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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