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ile_menu

독讀한 만화가 강도하의 책과 연애, 그 험한 밀당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분주함으로 지나갑니다. 그래서인지 2014년이 시작되면서 세웠던 독서 계획을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데요. 이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줄 수 있는 강연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답니다. 바로 올해의 마지막 독讀한 습관 강연인데요. 만화가 강도하 씨가 들려주는 ‘나의 읽기 투쟁기’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책이 멀어지게 된 까닭


지난 12월 4일은 많은 사람이 만화가 강도하 씨의 강연에 빠져든 날입니다. 이날의 사회는 4회부터 7회까지 함께 했던 칼럼리스트 박준우 씨가 다시 한 번 자리를 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강연장을 가득 채우며 들려준 구절은 독讀한 팟캐스트에 올라온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의 한 부분 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 것을 더 두려워해. 우리는 지금의 우리보다 더 큰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 하지만 그렇게 두려워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그 세계로 어떻게 사람들을 인도하겠어? 데이비드,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네! 계속 찾아야 해! 나는 자네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빛을 찾아 나서길 바라네.





낭랑한 목소리에 이어서 소개된 강도하 씨는 첫 시작부터 남달랐습니다. “전 책을 안 읽어요.” 지금까지의 강연자와는 달리 자신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그의 강연이 진행될수록 독서를 통해서 쌓아진 깊이와 풍부한 어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죠. 자신의 강연을 ‘외부적으로는 꽤나 책 좀 읽으면서 작품활동 하겠지라고 오해 받고 있는 한 연애물 전문 작가의 고해 성사’라고 표현했죠. 그러면서 왜 책과 멀어졌는지, 그래도 책과 헤어지기 싫은 이유, 그리고 책과 연애하며, 밀당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선 자신이 책과 멀어지게 된 것은 만화가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설명했습니다. “만화란 1차적으로 글과 그림이 만나는 가장 이상적인 결합이죠. 그래서 만화는 그림만 잘 그려서도 글만 잘 써서도 안 되고 당대성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의 만화가 만들어지는 데는 작가의 시간과 함께 영혼이 담기는 거죠. 예를 들어 볼게요. 만화에서 아주 작은 한 컷이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을 그리는 데 저 같은 경우는 5시간이 걸릴 때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그것을 읽는다고 하면, 0.5초 안에 보고 넘어가요. 부질없죠. 나는 뭐했나. 하지만 그 짧은 0.5초 동안 독자들은 이 사람의 만화가로서의 내공을 정확하게 알고 짚어보면서 넘어가요. 그러니 더욱 시간을 들여서 혼을 담는 것이죠.” 





 그래도 책과 헤어지기 싫다!


이렇게 책을 두 시간, 세 시간 잡고 읽을 수 없는 생활 리듬 속에 살고 있는 만화가 강도하 씨는 이런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능동적으로 책을 선택 해왔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의 환경을 둘러봤습니다. 특정 포탈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곳에서 신문과 글을 읽는 데,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라고 합니다. 이미 1차적으로 선택된 텍스트가 올라오고 그것을 사람들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책을 고르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책을 고를 때 특정한 출판사 브랜드를 선호한다면, 그것도 출판사에서 1차적으로 선택된 텍스트가 전해지는 것이랍니다. 


이렇게 무차별적인 문자텍스트의 공격 속에서도 강도하 씨는 종이책에 대한 미덕을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책 특유의 질감은 사람에게 촉감에 대한 애정을 이어가게 해주는 것들 중 하나이니까요. 이렇게 사람의 감각을 활용했던 마돈나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게 재미를 더했습니다. 


 



“마돈나 아시죠? 마돈나가 엘범을 낼 때마다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씩 했는데요. 에로티카 앨범도 그 중 하나에요. LP로 음악을 들을 때였는데, LP를 올리고 바늘을 놓는 순간, 마돈나의 포로가 됐어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바늘이 지나가는 자리에 마돈나 본인이 직접 쓰던 향수를 발랐기 때문이죠. LP가 돌아가야만 그 홈을 따라 바늘이 향수를 긁어서 잠제 되어 있던 향수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당시에 이미 마돈나는 눈으로도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노래로도 귀를 사로잡았었죠. 그런데 후각까지 사로잡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책도 그런 느낌으로 보고 있어요. 어차피 읽는 책, 이 책이 선물하고 싶었던 촉감과 이 책이 시각적으로 안착되고 싶었던 어떤 형태, 책을 넘길 때 나는 소리, 그리고 특유의 책 향기가 있으니까요.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체험하려는 욕구가 있는데, 종이책은 오감에 계속해서 체험을 안겨주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읽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강도하 씨는 집 곳곳에 책을 뿌려 놓는다고 해요. 그래서 아주 잠깐 1분 정도의 시간이라도 등을 기대고 쉬다가 ‘응? 책이 있었네. 에휴’ 하면서 읽고, 화장실 가서도 ‘어? 책이잖아’ 이렇게 만날 때마다 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책 속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분절되고 파편화된 텍스트를 만날 수 있다고 하네요. 그렇게라도 책과 헤어지기 싫었던 것입니다. 





 책과 연애 그 험한 밀당


만화가 강도하 씨는 트위터에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올렸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벌어지는 무궁무진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연애는 전쟁’이다라는 내용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 연애에는 무수한 밀당이 오고 가는데요. 때로는 밀고 당기는 균형이 적절해야한 더 친밀해 지기도 하고 더 멀어지기도 하는 것처럼 책과도 그런 식의 밀당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책은 어때야 한다.’라는 것을 독자와 만드는 사람 모두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가 중요한데요. 강도하 씨는 자신이 전기나 에세이를 능멸하고, 경멸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전기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에다가 그 인물이 어떻게 사건을 개입했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숨겨진 여자가 사촌 여동생이더라 라는 식의 충격을 주어서 그런 것이 싫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소설이니까 그냥 받아드리고 모든 표현을 즐기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책과의 험한 밀당을 이렇게 정리했다고 합니다.


“책으로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책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부터 저는 책과의 밀당 속에서 능동적으로 책을 읽게 되었답니다. 천 원짜리 책이건 찌라시를 모아놓은 책이건, 그런 책을 읽어라라는 것이 없어요.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 내려앉은 엄숙주의를 타파하는 것은 굉장히 경계없는 책 읽기가 길이죠.”





 만화가 강도하가 추천하는 책, 그리고 유쾌하고 깊이 있는 관객과의 대화


강연을 마치면서 강도하 씨는 3권의 책을 추천했습니다.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는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근로자들의 투쟁기인데요. 당대를 같이 호흡하는 사람들이라면, 때로는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겪고 있는지 알아야 하기에 아프지만 읽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종석 씨가 쓴 <문장>이라는 책은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고, <히치콕>은 굉장히 두껍고 어려운 내용이지만, 히치콕이란 서스펙트 스릴러의 거장이 필름이 다른 매체로 변해가는 과정동안 어떻게 그것들에 자신의 언어를, 자기 영상미학을 담아내고 안착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서 읽어보면 많은 것을 남길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답니다.


강연이 마치고 이어진 자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이 올라갔습니다. 쏟아진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던 강도하 씨는 깊이가 있는 말들을 많이 남겼답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모아봤습니다.





 만화를 읽는 것과 글을 읽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만화는 종류가 참 다양해요. 그래서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화로 설명하자면, 만화는 일종의 체험이에요. 왜 그런 친구들 있잖아요? 징글징글하게 표정 변화 없고 바디랭귀지도 제로인데, 조근조근 말해서 들을만한 친구 말이죠. 그런데 어떤 친구는 말하는 내용을 텍스트로 옮겨 놓으면 별게 없는데, 입만 열었다하면 사람들이 빠져들어 듣게 되는 사람도 있죠. 만화는 후자에 가까운 측면이 많아요. 글은 ‘아! 오늘 춥다야!’라고 끝이지만, 그림에서는 바깥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럼 어떨까요? ‘오늘 춥다’라는 말과 함께 그림이 합쳐지면서 우리가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는 겨울 풍경을 떠올리게 해주죠. 춥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던 맑은 하늘, 그리고 두꺼운 소매보다 더 두껍게 내려 반짝이던 눈, 이런 건 소설이라면 모두 글로 서술해야 하지만, 만화는 이미 보여주잖아요. 


 만화를 참 좋아하는 팬입니다. 만화를 그리시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마감이죠. (관객은 모두 웃었다.) 진지하게 이야기한 건데 다들 웃으시네요. 만화의 공정은 작가마다 달라요. 하지만 갑자기 번개를 맞듯이 강태공이 낚시를 하듯이 작품을 시작하는 작가는 없어요. 그건 졸업 작품이나 그렇게 하는 거죠. 최소한 프로라면, 별 거 아닌 것에서 매의 눈으로 잡아내서 흥미롭게 풀 수 있어야 돼요. 그런데 시작부터 1년이면 1년, 2년이면 2년, 연재가 끝날 때까지 매주 성실함을 요구하죠. 가장 자유로워야 하는 만화가들에게 가장 성실함을 요구하는 족쇄 같은 거예요. 그래서 가장 힘든 점은 마감입니다.


 



 슬럼프가 없을 거 같으신데, 혹시나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슬럼프요? 있죠. 누구나 있어요. 저는 농담을 해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사람이 죽을 때는 죽을 것 같으면서도 온갖 이야기를 다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울고하면서 난리를 치면서 사람이 죽잖아요. 그런데 초등학교때 봤던 미국 전쟁 드라마에서는 달랐어요. 거기서 죽음을 앞둔 병사가 “미국 텍사스에서는 말이야.”하면서 농담을 하는 거예요. 거기다 그걸 받아주는 다른 병사도 더 심한 농담으로 받아주고요. 어차피 죽는다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데, 농담을 한다는 것이 너무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어렵고 일이 꼬이면, 농담세포가 올라와요. 그러면 의외로 위기에서 탈출하더라고요.


 사진은 처음에 예술로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예술로 인정받아요. 만화도 예술이 되는 방법이 있을까요?

  우리가 ‘예술이다.’라는 말을 언제 쓸까요? 청국장이 너무 먹고 싶은 날, 집에 딱 들어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어머니가 딱 끓여주신거에요.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는데, 그때 “아, 예술인데.”라고 말하죠. 그것처럼 모든 장르의 작품들이 예술이라고 인정받지 않아요. 만화도 정말 쓰레기같은 작품도 있고, 예술도 있어요. 하나 생각해보면, ‘유효하다’라는 말이 정답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의미가 연인관계에서 잘 보이는 데, 서로에게 유효하지 않은 남녀는 사랑을 이어갈 수 없어요. 만화가와 독자도 비슷한 관계죠. ‘당신은 아직 내게 유효해’라는 말이 정말 큰 힘을 주는 거니까요. 아마도 만화가 유효할 수 있게 끊임없이 생활 속에서 남는다면, 만화는 사랑을 받고 예술이 될 수 있겠죠. 저도 계속 유효한 만화를 그리도록 노력하고요.





만화가 강도하 씨는 자신의 책 읽기 노하우를 통해서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은 강연을 들은 많은 사람에게 전해져 또 다른 읽기 노하우를 낳겠죠. 올해에 독讀한 습관 강연은 이제 마무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읽기 문화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실천은 계속될 것입니다. 내년에는 더 좋은 독讀한 습관을 기다려 봅니다.


ⓒ 다독다독





 
 


Trackback 0 Commen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