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만큼 추억으로 가득한, 서울의 근현대로 떠나는 여행

2014. 12. 22.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벌써 12월의 시간도 열흘 남짓 남았습니다. 누구나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1년이란 시간과 추억을 정리하는 시간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도시에도 고스란히 남는데요. 특히 서울에는 쌓인 시간만큼 사람들과 호흡했던 공간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50년 가까이 서울의 근현대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 속으로 다독다독과 함께 겨울 문화 여행을 떠나볼까요?



 세월이 묻은 책들의 향기, ‘공씨책방’에서


“책방을 연지는 한 63년쯤 됐나? 그러고 보니 오래했어.”


여행의 첫 시작은 헌책방이었습니다. 신촌역에서 5분 정도를 걸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공씨책방’이었죠. 초록색의 간판에 흰 글씨로 써진 간판과 유리창 너머 보이는 차곡차곡 쌓여있는 책들의 모습. 일반 서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헌책방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가득했던 진한 책 향기로 반겨줬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서점주인 할머니는 보고 있던 책을 잠시 덮으며 눈인사를 하셨죠. 작은 공간에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의 책장과 책장 사이 길로 책들을 빼곡히 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책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있을 때, 먼저 와서 책을 고르던 중년의 아저씨가 할머니와 책값을 흥정합니다. “조금만 더 깎아주세요.” “에이, 이천 원 빼줬잖어.”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신기하게 다가왔죠. 할머니에게 여쭤보니 자주 찾는 단골인데, 매번 저렇게 책값 흥정을 한다고 하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이번에는 책을 팔러 온 모양입니다.

“할머니, 값 좀 더 해주세요. 작년에 나왔던 책이에요.” “이 정도면 아직 더 봐도 되는데, 벌써 팔려고?” “이사를 가게 돼서 짐이 많아서요.” 


이렇게 ‘공씨책방’에서는 책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책방 한쪽에는 음악 CD부터 LP판까지 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가수들의 앨범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잔잔히 흐르는 노래에서 추억을 만날 수 있답니다. 


▶ 위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로 51 


 



 시인 이상이 머문 자리 – 이상의 집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시인 이상의 호흡을 만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바로 ‘이상의 집’입니다. 처음 이곳을 마주하면, 주변의 화려한 카페들과 달리 조용하고 엄숙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들어가도 될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죠. 미닫이로 되어 있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소박한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한쪽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와 판매하는 엽서가 있습니다. 이상의 삶의 대부분을 머물렀던 집터에 마련된 공간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답니다. 




 

작은 테이블이 있는 곳에 자리해서 박물관처럼 보관된 ‘날개’와 그의 친구였던 시인 김기림이 엮은 ‘이상선집’을 볼 수 있는데요. 왠지 모를 신비함에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시선을 돌리면 한쪽에는 커다란 철문이 있습니다. 호기심에 문을 열면 이상에 대한 영상이 스크린을 채우는 ‘이상의 방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호흡이 담긴 시도, 그리고 그가 걸어왔던 문학의 길도, 잔잔한 영상 속에 녹아있었습니다. 일상의 호흡에 바쁘고 지칠 때, 가만히 찾아가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잠시 쉬었다고 돌아오면 좋을 장소였죠.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18


 



 문방사우를 만나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장소 - 동헌필방


‘이상의 집’을 나와 걷다보면, 쉽게 경복궁 담을 만납니다. 큰 도로를 따라 지나는 자동차의 소란함도 시간을 멈춘 듯 서있는 담을 넘지는 못하는 느낌입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방향으로 조금 더 걷다가 지하철 1호선 종각역으로 걸음을 옮기면, 작은 필방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동헌필방’입니다. 주위의 건물과 다르게 유일하게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필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반겨주십니다. 마치 문방사우를 겹겹이 모아 놓은 풍경은 작은 공간에 이리도 많은 물건이 자리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안 남았지만, 내년이면 이곳에서 50년째야.”


사장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희한하게도 처음 들어왔을 때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던 붓과 종이를 다시 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50년 동안 한 곳에서 같은 가게를 운영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더욱 신기했죠. 지금은 실제로 서예를 쓰는 사람들도 찾아오고, 예술가들이 재료를 찾아서 들린다고 하는데, 사람마다 찾는 붓이 모두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사장님께서 했던 말 중에 문방사우는 만드는 사람부터 쓰는 사람까지 혼을 담아서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담담하지만, 진솔한 필방이야기를 들으러 ‘동헌필방’을 찾아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36


 



 카페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더 깊은 커피 향이 배어있는 곳 – 학림 다방


마지막으로 추억을 찾아 간 곳은 지하철 4호선 혜화역 근처에 있는 ‘학림 다방’입니다. 수많은 극작가와 시인, 소설가들이 머물면서 자신의 꿈과 미래를 그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곳으로 유명하죠. 일단 찾아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카페들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문에 새겨진 ‘학림’이란 글씨는 마치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온기가 느껴집니다. 문 옆에는 학림 다방을 위해 바친 황동일 시인의 헌사가 있어 더욱 오래 전으로 거슬러 가는 느낌이랍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복도에 끝에 나무계단이 있습니다. 삐걱 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가득 채워질 때면, 그때부터 시간 여행을 하러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계단 끝에 있는 나무 문을 여는 순간, 이미 다른 세상과 시간에 들어가니까요.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80년대 다방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빛바랜 외국 배우들의 사진이 걸려 있고, 넓은 테이블에 놓인 소파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특이하게 카페 안에 다락방 형식으로 2층이 있어서 각 층에서 느끼는 감성이 사뭇 다릅니다. 





이곳은 자리에 앉으면 직원이 주문을 받아서 직접 앉은 자리까지 가져다줍니다. 마치 실제 다방을 온 것 같은 느낌인데요. 커피 값을 미리 계산하고 자신이 가지러 가는 일반적인 카페와는 색다른 기분이 들었답니다. 커피 값도 나가기 전에 계산하기 때문에 더욱 특이했습니다.


아래층보다는 위층의 첫 번째 자리를 추천하고 싶은데요. 그곳에서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차들과 현대적인 카페와 다방 안의 풍경을 함께 보는 것은 더욱 매력 있습니다. 창 너머 세상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데, 이쪽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멈춰진 시간 속에 자신이 머물러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죠. 이곳에 앉아 LP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보는 일은 행복 그 자체였답니다.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19


 



추억을 머금고 있는 공간으로 떠나는 여행은 추운 날씨에도 가슴 깊이 온기를 전해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함께 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그 여행에 여러분도 한 번 몸을 맡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2014년이 다 가기 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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