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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같이 몰입하고 창작을 한다면?

출처_ theconversation 



<김중혁이 캐는 창작의 비밀>, 일곱 번째는 ‘어린 시절’, ‘몰입’ 그리고 ‘예술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어린 시절 자신이 하는 행동에 아무런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고, 그것을 닮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자세를 통해 어떤 창작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지금부터 확인해 보세요.


어째서 어떤 아이는 작가가 되고, 어떤 아이는 화가가 되고, 어떤 아이는 가수가 될까요? 무슨 이유로 어떤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희열을 느끼고, 어떤 아이는 색연필을 쥐었을 때 더욱 몰입을 하고, 어떤 아이는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를 때 가장 격렬하게 자신을 표현할까요? 오래 전부터 저는 그게 궁금했습니다. 주변의 환경에 원인을 찾아봐도, 유전적인 이유를 찾아봐도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 


흔해빠진 정의지만 이 말 외에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예술가란 온 힘을 다해서 ‘창조적인 혁신’을 이루려는 사람이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유희에 전념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조차 없이 온전히 창조하는 사람이죠. 이것은 아이들이 노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통장의 잔고를 걱정하지도(어쩌면 세뱃돈 모아둔 게 제 통장 잔고보다 많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자의식도 없으며, 앞으로 이 일로 과연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없습니다. 무작정 그림 그리고, 아무렇게나 노래 부르고, 보이는 대로 읽으며, 온몸을 뒤흔들며 춤을 춥니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런 상태인 것이죠.

 


출처_ [김중혁이 캐는 창작의 비밀] (7) 아이같은 예술가 되기 / 2014.12.22. / 한국일보 (이하 출처 동일)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예술가들은 왜 그렇게 혼신의 힘을 쏟으면서 창조적 혁신에 몰두하는 것일 것.”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이들은 예술가의 에너지나 뇌의 구조를 창의력에 필요한 기업에 이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술과 뜻밖의 창의력을 결합해야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이 예술가를 연구한 결과는 ‘창조성의 동기 부여는 내재적 동기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라고 대체로 말합니다. 이것은 외재적 동기에 의한 행동은 효율성의 사고가 지배하지만, 내재적 동기로 시작된 행동은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대안들을 내놓는다는 것이죠. 참으로 위험한 비유이긴 하지만, 직장 상사가 지시한 일은 대충대충 끝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한편, 회식의 마지막 자리 노래방에서 본인의 흥으로 시작된 노래 부르기는 혼신의 힘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린다는 것이,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의 차이라고 할까요? 한마디로 요약해보겠습니다. ‘무언가 창작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저 역시 아이의 에너지로 예술을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자주 그런데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머리가 텅 비고, 순전히 선에 집중하는 저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한 성취도 필요 없고 보상도 원하지 않습니다. 온전하게 완성된 하나의 선, 제 맘에 쏙 드는 한 줄의 선을 저는 간절히 원하죠. 글을 쓸 때도 그런 순간이 옵니다. 소설가라는 자의식이 사라지고, 글쓰기의 완성도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온전히 매력적인 한 줄의 문장을 간절히 원할 때가 있습니다.


글을 쓰고 가끔 그림도 그리는 사람으로서 두 가지 장르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창작된다는 걸 순간순간 깨닫게 되는데요. 빨래가 끝나 바싹 마른 옷들을 차곡차곡 뇌의 서랍에다 개켜 넣는 일이 글쓰기라면, 서랍의 바닥에 뭐가 있나 보기 위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던 옷을 헤집어 꺼내서 바닥에 던져 놓는 일이 그림 그리기 같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모아야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흐트러뜨려야 하죠.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전혀 다를 수도 있죠. 그래서 이강훈씨를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씨에게서 듣는 창작의 비밀


이강훈씨는 (제가 알고 있는) 국내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소설가 김연수씨와 함께 쓴 ‘대책 없이 해피엔딩’의 일러스트 작업을 이강훈씨가 맡기 전부터 저는 그의 작품을 잘 알았고, 좋아했습니다. 그의 색과 선을 부러워했죠. 그가 작업한 표지도 좋아하며 시사주간지에 실리는 그의 일러스트 또한 늘 감탄하며 봤습니다. 그는 또한 ‘나의 지중해식 인사’ ‘도쿄 펄프픽션’의 저자이기도 한데, 심지어 글도 무척 잘 씁니다.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언젠가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작정하고 만난 그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한 데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어요. 좋아하는 걸로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꾸준하게 수입이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그림을 좋아해주는 분들도 많이 있고, 그래서 꾸준히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이게 맞나 싶더라고요. 말하자면 ‘예술병’에 걸린 거죠(웃음).


‘예술병’이란 단어가 중요합니다. 이강훈씨는 이 단어를 말하면서 겸연쩍다는 듯이 웃었지만 뉘앙스는 좀더 복잡합니다. 일러스트레이트는 대체로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답하는 예술이죠. 어떤 요청 속에서 상상력을 작동시켜야 하고, 틀 안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일러스트레이트 역시 예술의 한 분야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사람은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순수한 예술의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하며, 또 어떤 사람은 온전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반 정도만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강훈씨가 예술병이란 단어를 말하는 순간 예술이라는 단어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예술병에 걸렸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한 묘사 역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답니다.


 

출처_ 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 egloos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을 가면 스케치북은 잘 안 들고 다녀요. 그런데 2013년에 보름 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제 그림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어요. 방콕의 조그마한 박물관 앞에서 서양 여자애가, 아마 10대였을 것 같은데요, 배낭여행 중인 거 같았고 반바지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금발의 그 여자애가 불량스러운 자세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그 장면을 너무 그리고 싶은 거예요. 사진으로라도 찍으면 좋겠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러기도 힘들었어요. 기억하려고 했죠. 계속 보고 기억해서 숙소에 돌아온 다음 그 아이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왜 그리고 싶었는지는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얼마 전에 시인들의 낭독회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만난 첫 번째 시적인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아, 그 여자애를 본 게 나한테는 시적인 순간이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데일리 드로잉’을 시작했어요. 특정한 주제나 대상 없이 그냥 빈 종이 앞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계속 그리다 보면 그림의 끄트머리에서 다음 끄트머리로 연결되는 거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어요.


그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그릴 수 없는 날도 있고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선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색에서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형태에서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선에서 시작합니다. 그의 스케치북을 보고 있으면 ‘선에서 시작한다’는 게 어떤 뜻인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이강훈씨는 선을 처음으로 그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서, 왜 내가 그림을 그릴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간을 앞으로 돌리고 계속 돌려보니까 처음으로 제가 그림 그리던 장면이 기억나더라고요. 다섯 살 때인가 여섯 살 때인가, 12색 사인펜을 앞에 두고 전쟁 장면을 거침없이 그리던 제가 보였어요.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정말 즐거운 일이었구나 싶었고, 그때처럼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글의 앞으로 돌아가서 함께 질문을 해보게 됐습니다. “우리는 다시 아이처럼 예술을 대할 수 있을까? 아이의 에너지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출처_ gumtree 



이강훈씨는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도 무척 좋아해서 자신의 고민을 짧은 픽션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화가의 이야기인데요. 자고 일어나보니 무엇인가 잘못 돼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정확히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캔버스 앞에 앉았는데, 도무지 선을 그을 수 없는 화가의 이야기는, 자신이 계속 해오던 일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했던 이강훈씨의 이야기고, 아이의 에너지를 잃어버린 채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이야기고, 매일매일 선을 잃어버리고 매일매일 자신의 새로운 선을 찾아내야만 하는 모든 예술가들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 다독다독


위의 내용은 한국일보에 연재 중인 김중혁 작가의

<김중혁이 캐는 창작의 비밀>을 옮겨온 것입니다. ▶ 원문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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