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마녀사냥’, 인기 방송 트렌드는 유료방송 채널이?

2014. 12. 31. 11: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출처_ The New York Times   



2010년, 한 유료방송 채널(케이블) 프로그램이 지상파 3사의 시청률을 넘어섰습니다. Mnet ‘슈퍼스타K’ 시즌2. 허각, 존박, 장재인 등 대중적 스타를 배출하며 18.1%의 최종회 전국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유료방송가구 기준)을 기록했습니다. 케이블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었죠. ‘슈퍼스타K’의 스토리텔링에 시청자가 열광하자 지상파 3사는 앞다퉈 일반인 음악 오디션 장르를 가져왔습니다. ‘슈퍼스타K’의 성공은 유료방송 채널 프로그램이 지상파 프로그램을 압도한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쫓는 자 신세 된 지상파 3사


서서히, 그러나 빠르게 유료방송 채널은 방송가의 트렌드를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tvN은 군대시트콤 ‘푸른거탑’을 흥행시키며 20대 남성 시청자를 사로잡았습니다. 1년 뒤, MBC에서 연예인의 좌충우돌 군 생활을 관찰하는 ‘진짜사나이’가 등장했습니다. 군인이 흥행하자 SBS에선 ‘심장이 뛴다’를 내놨습니다. 연예인인 소방관이 되는 콘셉트였죠. 

2009년 등장한 tvN ‘화성인 바이러스’는 시즌을 거듭하며 시청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세상에 저런 사람들이 있나 싶었죠. 2010년, ‘화성인 바이러스’의 공영방송 버전인 KBS 2TV에서 ‘안녕하세요’가 등장했답니다. 



출처_ tvN  



2013년, 이순재, 신구 등 원로배우 4명과 짐꾼 이서진이 해외여행을 떠난 tvN ‘꽃보다 할배’가 대히트를 쳤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KBS 2TV에서 김용림, 김수미 등 원로 여배우 4명과 짐꾼 이태곤이 여행을 떠나는 ‘마마도’가 편성됐습니다. 당장 ‘꽃보다 할배’의 할머니 버전 아니냐며 표절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현재 방영 중인 SBS ‘룸메이트’는 올리브TV에서 방영된 ‘셰어하우스’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셰어하우스’는 가수, 배우, 패션 등 각 분야 유명인사 10인이 한 집에 모여 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지난 4월 시작했습니다. 한 달 뒤인 5월, 12명의 스타가 한집에 지내며 벌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룸메이트’가 등장했으니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올만합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비슷해도 너무 비슷했습니다.



출처_ 방송가는 지금 포맷 전쟁 중…‘장르적 유사성’ 어디까지 통할까 / 2014.02.28. / 한국경제



 PD는 떠나고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 지상파의 위기


이렇듯 현재 지상파는 종합편성채널의 트렌드를 쫓아가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첫 종편 출범 당시만 해도 종편을 무시했던 지상파가 어쩌다가 유료방송 채널의 프로그램 트렌드를 쫓아가기 바빠진 것일까요?


유료방송 채널은 2010년을 기점으로 지상파와 차별화된 질 높은 콘텐츠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지상파 콘텐츠를 반복 재생하는 재방송 채널의 이미지였지만, 이제 성격이 바뀌며 오리지널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마트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가능해졌습니다. 2010년부터 한국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본격 도입되면서 다양한 시청 플랫폼이 생겼죠. 그 결과 유료방송 채널과 지상파 플랫폼의 차이는 느낄 수 없게 됐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이 생기다 보니, 콘텐츠 시장은 KBS 드라마, MBC 예능이 아닌 ‘응답하라 1994’, ‘무한도전’과 같은 콘텐츠 그 자체로 시청자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것을 유료방송 채널을 적절하게 이용해 전략을 바꾼 것입니다. 거기에 2011년 개국한 종합편성채널 4사까지 콘텐츠 경쟁에 가세하면서 지상파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지상파 3사가 오랜 플랫폼 독점의 달콤함에 안주하며 변화에 소극적이었던 시간 동안, 도전자인 JTBC와 tvN은 지상파 PD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며 프로그램 제작 수준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지상파는 순식간에 자신들의 지위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출처_gadgehit 



지상파 PD들의 영입으로 유료방송 채널은 새로운 콘텐츠를 시도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됩니다. tvN의 경우 KBS에서 영입한 PD들이 연출한 콘텐츠가 연달아 성공하고 있는데요.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응답하라 1994’, ‘미생’ 등은 이름만 들어도 10~40대까지 폭넓은 시청자를 사로잡아 이슈가 됐던 방송들입니다. JTBC의 경우 가장 많은 지상파 PD를 영입하면서 ‘비정상회담’, ‘마녀사냥’, ‘히든싱어’ 등과 같은 예능프로그램으로 지상파 방송들의 입지를 크게 흔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지상파 방송이 큰 위기에 맞닿아 있음을 알려줍니다. 지금처럼 지상파만의 콘텐츠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욱 지상파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죠. 특히 2013년에 강호동이라는 스타를 앞세워 새롭게 방송됐던 ‘달빛 프린스’, ‘맨발의 친구들’ 등의 프로그램이 연이어 조기에 종영되면서 이제 더 이상 스타 1인만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사실까지 보여줬습니다. 



출처_ tvN (좌)아시아경제 (우)



 모험을 하되 시청률 강박부터 벗어나야 – 지상파 살아남기


결국, 지상파는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혁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금껏 지상파는 큰 틀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데요. 지금도 정규편성의 절반 이상은 장수 프로그램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게다가 해외에서도 보편화된 시즌제조차 없습니다. 시청률이 나오는 기존의 안정적 포맷을 포기하지 못해서죠. 


지상파가 기존의 낡은 시청률 집계방식에 매달리며 젊은 층을 놓치고 트렌드를 놓치면, 결국은 영광스러웠던 플랫폼 독점시대를 뒤로하고 유료방송 채널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1박2일’ 같은 예능프로그램이 10% 시청률로 곤두박질쳐도 지상파는 이를 과감히 폐지하고 새로운 예능을 시도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그 포맷이 아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제작 책임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실적에 모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도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상파가 새로운 시도를 포기할수록, 능력 있는 PD들은 계속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_ bookdb



모든 유료방송 프로그램들이 지상파보다 참신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MBC ‘아빠 어디가’의 경우 육아예능의 트렌드를 주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지상파의 영향력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지상파보다 유료방송 채널 프로그램들의 새로운 포맷과 끝없는 도전이 눈에 띄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현재의 TV 시청률 집계로는 지상파 프로그램 시청률이 높지만,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 또는 비실시간으로 시청하는 행태를 포괄하기에는 현재 시청률 개념의 한계가 명확합니다. 사실상 반쪽자리 지표인 셈이죠. 지난 14년간 TV 시청률 변화를 보면 40대까지 시청률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는 반면, 30대 이하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지상파는, 살아남기 위한 모험을 위해, 무엇보다 기존 TV 시청률에 대한 강박에서부터 벗아나야 합니다.


ⓒ 다독다독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12월호>에 실린 

정철운 / 미디어오늘 기자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