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4000명 당 하나 꼴로 들어서 있는 건물은?

2011. 8. 4. 13:2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독일에 온지도 벌써 4주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남편이 일 때문에 3개월 동안 독일에 가야 한다고 했을 때 따라가야 할 것인가 나는 한국에 남을 것인가 아주 잠깐 고민을 했었죠.

사실 3개월이라고 하면 가족들이 따라가기도 애매하고, 남기도 애매한 기간이라 얇아질 통장을 생각하면 잠시 떨어져 살면서 지내는 게 맞겠지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기도 했고, 또 줄어드는 통장 잔고와 반비례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함께 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돈 외에도 제가 고민을 했던 이유는 한가지 더 있는데요. 그건 바로 책이었습니다. 지독한 활자 중독인 저는 눈 떠서 잠들기 직전까지 늘 책을 끼고 사는데 외국에 나가자고 생각해보니 책을 못 읽는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요즘은 전자책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편리하면서도 폼나게 책을 볼 수 있는 시대라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그런 첨단 디지털 장비로 책을 읽는 것이 내키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글이란 종이에 인쇄된 것을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감을 안고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는 재미가 있는 법인데요.

작은 화면에 깨알같이 나열된 글자를 읽다 보면 집중도 안되고 눈도 쉽게 피로해져서 도저히 정이 안가는 것이에요. 트렁크 안에 책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고 싶어도 머무는 기간이 길다 보니 짐이 많아져서 도저히 책을 들고 올 수 있는 처지가 안되었습니다.

트렁크 안에 넣었다 뺐다 하길 수십 번 끝에 결국 모든 책들을 고이 놓고 오는 수 밖에 없었는데요. 결국 최근에 가장 마지막으로 읽은 한글은 비행기 안에서 읽은 신문이 됐답니다.

한동안 책을 못 읽을 걸 생각해서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어찌나 열심히 읽었는지 아직까지 기사 내용이 기억이 날 정도랍니다. (영어책을 읽으면 되지 않겠냐는 질문은 사절하겠습니다. ^^;)

지금까지는 새로운 경치와 문화를 즐기느라 정신없이 보내서 그런대로 버텼지만 슬슬 한글로 된 책이 읽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던 차에 며칠 전 방문한 한인 마트에서 한글로 인쇄된 신문을 발견했는데요. 한국에서 발간되는 신문은 아니고 유럽 통신 같은건데 그래도 한글로 적혀있는 신문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덥석 집을 수 밖에 없었죠.

그러고 보면 독일 사람들은 책을 참 많이 읽습니다. 지하철이나 기차에서도 항상 뭔가를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도시의 빌딩 숲 사이에서나 한적한 공원의 그늘 아래서도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 국민 일인당 평균 독서량이 일년에 5권도 안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독일의 독서량을 보면 그 이상이면 이상이지 그보다 적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2010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성인 10명 중에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인구가 3.5명이나 되고, 이 숫자는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우리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책을 안 읽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깝게 살펴보면 제 주변 사람들만 해도 책 읽는 사람들이 정말 드문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 부족도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곳은 독일 남서부인 ‘헤센주’인데요. 이곳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인구수가 어느 정도 된다 싶은 마을에는 마을 도서관이 꼭 있습니다. 큰 도시에 나가봐도 시립 도서관이나 국립 도서관이 시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민들이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았죠.

혹시나 해서 찾아봤더니 도서관 1관 당 인구수가 독일은 3,971명인데 반해 한국은 114,230명이라고 합니다. 이게 2000년도 자료이니까 아무래도 오차는 있겠지만 10년 동안 우리나라가 열심히 도서관을 지었다고 해도 독일이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았을 테니 지금도 격차는 어마어마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국민 1인당 도서관 장서 수가 무려 3배나 되니 애초에 독서 환경에서부터 차이가 있는 것이죠.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제 주변에도 책 값이 너무 비싸서 책을 못 읽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위해서라도 공공 도서관 설립이 꼭 필요한 복지 정책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서관을 세워주면 책이 비싸서 못 읽는다는 소리는 못하겠죠… ^^;


다른 사람들은 한국을 떠나면 일단 먹을게 가장 그립고 생각나서 노트에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빼곡히 적어내려 가면서 그리움을 달랜다고 합니다. 제 노트에는 한국에 돌아가면 읽고 싶은 책 목록이 적혀 있습니다.

떠난 지 한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읽고 싶은 책 목록이 노트 한 장을 넘어가죠. 이래서는 절대 다른 나라에서 길게는 못살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도 임시방편으로 한인 마트에서 신문을 사서 읽어야겠어요. 한 자 한 자 되새김질 하듯 꼼꼼하게 읽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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