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구두 뉴스(oral news)의 역사

2015. 4. 7.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그림 출처_wikipedia_ⓒ Marcus Jeffrey




인류가 영원히 사용할 미디어 ‘말’


‘말(language)’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미디어이자, 인류가 영원히 사용할 미디어이기도 합니다. 인류가 사는 곳이 아무것도 없는 진공의 상태가 된다면 ‘말’은 더 이상 인류의 미디어가 될 수 없을 겁니다. ‘말’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리 기호입니다. 하지만 말은 그 장소 그 시간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도 정보는 말로서 전해졌습니다. 현재에도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오지에서는 여전히 말을 통해 정보와 지식이 전달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자 없는 사람들도 얼마나 빠르게 뉴스를 전달시키는지에 대한 사례가 미첼 스티븐스(Michell Stephens)의 『뉴스의 역사(A history of news)』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19세기 아프리카의 줄루족(Zulu)과 살았던 한 유럽인은 하인이 쓰는 그릇에 악어 고기를 끊여 먹습니다. 줄루족에게 금기시된 일이었지요. 하인은 당장 일을 그만둡니다. 유럽인은 새 하인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유럽인은 아주 먼 곳으로 이주하여 하인을 구할 수 있었는데 그 하인도 자신에게 악어 고기를 먹게 하지 말라는 조건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아침에 벌어진 일을 매우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거의 모든 부족이 알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방식을 구두 뉴스 체계(oral news systems)라고 부릅니다. 줄루족의 구두 뉴스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 대한 최신 네트워크 이론에 기반한 다음 그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 이론은 수천만에 이르는 사람들도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그림 출처_wikipedia




구두 뉴스 체계를 작동시키는 말하고 싶은 충동


구두 뉴스는 말하는 과정을 통해 가치를 발생시킵니다. 전달하는 사람은 뉴스를 자기 나름대로 요약하고 때로는 어느 정도 변형하는 특권을 누립니다. 듣는 사람은 감사와 놀라움을 얻지만 전달하는 사람은 똑똑하고 정보에 밝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으며 뉴스가 공유되고 확산되는 경험도 얻습니다.


선교사의 딸로 줄루족과 함께 살던 새뮤얼슨(L. H. Samuelson)은 1987년 300마일이나 떨어진 곳으로부터 사람들의 입을 통해 줄루족 왕의 서거 소식을 하루 만에 들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곳 유럽인들이 만드는 신문에서 그 기사를 쓰는데 며칠이 걸렸는데 말입니다. 줄루족은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왕의 뉴스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아 왕국의 여러 마을에 왕의 뉴스를 전달하게 했다고 합니다. 


인류학자들은 구두 뉴스 체계의 빠른 전달 속도는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 모닥불 주변, 동네 우물가, 마을 광장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이 움직이면 뉴스로 함께 움직이고 확산되는 것입니다. 시장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시장에서는 상품이 교환될 뿐만 아니라 뉴스도 교환되는 것이지요. 돈을 주고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 뉴스는 더욱 무작위적으로 빠르게 전달되고 확산되면서 스스로 가치를 생산합니다. 흥미롭게도 많은 뉴스들이 상품 거래와도 관련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곳은 가뭄이 들어서 수확이 어렵고, 어떤 작물이 풍년이고, 사냥의 결과는 어떠하며, 누가 만든 물건이 아주 편리하게 사용되며, 누구는 경사가 나고 누구는 어려운 일을 겪었다는 내용입니다.



1903년 줄루족 사진 public domain 그림 출처_ flickr




달려서 뉴스 전하기의 원조, 마라톤


달리기 잘하는 사람이 뉴스를 전달한 역사적인 사례는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의 전투때입니다. 당시 아테네의 병사들은 마라톤 평원에서 전력이 더 뛰어났던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칩니다.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30km 떨어진 아테네에 뛰어가 전달한 후 기력을 잃고 죽은 전령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를 기리는 뜻에서 1896년에 올림픽 육상 경기 종목으로 채택됩니다. 헤로도토스(Herodotos)의 저서에도 아테네가 페르시아군이 마라톤에 상륙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스파르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파견했고, 그는 200Km의 거리를 이틀 만에 달렸다고 합니다.




뉴스 크라이어(news crier)의 활약


달려가서 뉴스를 전달하던 방식은 중세시대에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활동하던 뉴스 크라이어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뉴스 크라이어들은 미리 정해진 경로와 시간에 따라 움직이며 지방 권력자 또는 국왕으로부터 직접 받은 뉴스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의 중서부의 인디언들도 매일 아침 추장 회의를 하여 뉴스 크라이어들을 통해 집회, 명령, 규칙에 대해 알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뉴스 크라이어의 외침은 화려했다고 전해지는데 아마도 뉴스를 듣는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하고 잘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스토리텔링을 하였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리듬과 음조, 높낮이, 강약이 보태졌을 것입니다. 그 사실은 아직도 영국에서 벌어지는 타운 크라이어(town crier) 대회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국왕이나 법원의 명령이나 전쟁과 사건사고 소식을 전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의무교육과 신문, 라디오가 보편화되는 20세기 초반까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1909년 메사추세츠 우편엽서에 나온 타운 크라이어 public domain 그림출처 _wikipedia



확산될수록 커지는 뉴스의 가치 


뉴스는 전쟁의 위협에 처해 도움을 요청하거나 구성원을 규합하는 용도에서부터 재난과 사건사고를 알려서 미리 대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는 누군가의 탄생, 경사, 죽음을 알려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게 합니다. 어느 강 어귀에 연어 떼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올해 옥수수 수확이 좋은 반면에 쌀 수확이 형편없으며 부족이 얼마 전에 벌인 사냥에서 무엇을 많이 잡았는지. 애인의 집을 서성이다 빗물 통에 빠진 이야기에서부터 젊고 패기있는 청년에게 홀려서 도망친 귀족 부인의 이야기, 그리고 국왕의 스캔들까지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깜짝 놀라고 격분하고 슬퍼하거나 즐거워하며 정보를 바탕으로 장사를 하기도 하며 뉴스를 통해 자신의 상품을 널리 알리기도 하고 다가올 어려움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뉴스는 공식성을 띠기도 하지만 흥미성을 띠기도 하며 때로는 수용자들의 놀이감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문자가 전혀 없던 시절이나 문자가 개발된 이후에나 매스미디어가 활성화된 최근까지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사람이 움직이면 뉴스도 움직이고 확산될수록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는 공통된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해스팅스 거리에서 중세시대 복장을 한 남성이 벌어지는 타운 크라이어 2012년의 경영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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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공병훈 박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연구원으로 그리고 협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와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 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콘텐츠 산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그리고 창작과 생산 커뮤니티이다.


그림출처 : 위키미디어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Town_crier,_Kingston,_Ontario,_Canada_-_20090705.jpg

http://en.wikipedia.org/wiki/Network_theory

http://en.wikipedia.org/wiki/Town_cr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