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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역사적 사건, 종이 제조법의 발명


출처_문화재청


디지털 기술이 종이를 대체할 것이라는 수많은 예상에도 불구하고 광고, 책, 사진, 신문, 포장지, 지폐, 휴지에 이르기까지 종이가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생활의 도처에서 거의 모든 사회적 활동에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일들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종이는 어떤 과정을 통해 발명되었을까요. 어떻게 전세계에 확산되어 구텐베르크 인쇄기와 운명적 만남을 할 수 있었을까요.


종이 발명 이전에 사용된 재료들


종이 발명 이전에는 돌, 금속, 찰흙 외에 동물의 가죽이나 뼈, 나무껍질, 나무, 대나무 등이 기록 재료로써 사용되었습니다. 이 재료들 중에서 종이와 가장 비슷한 것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였습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파피루스 줄기를 얇게 저며서 가로와 세로로 맞추어 놓고 끈기가 있는 액체를 발라서 강하게 압착한 후, 잘 건조시켜 기록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방법이 고안된 것은 BC 2500년경이라고 추측됩니다.


하지만 파피루스를 종이라고 정의하기는 힘듭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 기술을 개발하고도, 종이 만드는 방법까지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풍부한 노예 노동력을 통해 파피루스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시대의 신비스러울 정도의 찬란한 문명을 이루고도 신흥 로마에 의해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종이 발명 전에 중국에선 대나무 조각(簡)과 나무 조각(牘)을 다듬어 사용하였고, 이 조각들을 가죽이나 끈으로 연결하였습니다. 붓이 발명되면서부터는 비단이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BC 10년경 전한(前漢)에서는 풀솜 찌꺼기를 늘려 만든 것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불편하고 복잡한 방법으로 서적, 공문서, 편지 등을 만들고 읽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규모가 커지고 경제 활동 범위가 늘어나면서 기록 재료에 대한 필요성 또한 더 절실했을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종이 제조법, 타파


하지만 종이 제조 기술은 인도네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 수천년 전부터 사용해오던 타파(打破) 기법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무 껍질을 끝이 뭉뚝한 몽둥이로 빻아서 물에 담그면 끈적한 액체 섬유가 나옵니다. 그것을 모아 납짝하게 누르면 낱장들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 방법은 네팔에서 아직도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껍질 안쪽 부분을 빼서 얇은 조각으로 만들어 나무 잿물에 익힌 다음에 망치 같은 도구로 두드려서 나무의 섬유조직을 부서뜨립니다. 그것을 물에 용해시켜서 섬유질 반죽을 체 위에 펼쳐 놓습니다. 이 낱장들을 햇빛에 말려서 종이를 만드는 겁니다.


따라서 많은 고고학자들은 채륜이 효율적이며 편리한 종이 제조법을 발명하기 이전에도 종이 제조법은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채륜의 시대보다 300년 정도 전인 서한(西漢) 종이 유물이 둔황 지역에서 발견된 것도 그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종이 제조법의 효율성과 성과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당나라에 채륜을 신처럼 떠받드는 데서 알 수 있다.출처_위키피디아


채륜, 종이 제조법을 발명하다


종이의 발명자인 채륜(蔡倫)은 농경 대신이었다고 하고 궁중의 용도(用度) 관계 장관과 수공업 분야의 주임직을 겸하고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 시기에 궁중에서 채륜의 업무가 수공품을 조달하는 것이었으므로 비능률적인 재래방법에 대하여 연구하여 제지술을 발명한 것입니다. AD 105년 중국 후한(後漢)에서 채륜은 행정와 종교 문서를 보급할 목적으로 종이를 개발하여 황제에게 보고하여 포상을 받습니다.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나무껍질, 헌 어망, 비단, 낡은 헝겊 등을 절구통에 찧어 물을 이용하여 종이를 만드는 것으로 지금의 초지법(抄紙法)과 같습니다. 기존의 방법과 달리 다른 재료들을 혼합하여 사용하였으며 초지를 위한 편리한 도구들을 개발하여 종이 제조 비용을 확기적으로 낮추고 방법을 대중화시킨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한(漢)나라가 재건된 후 50여 년이 지났기 때문에 통일 왕조로서 기초가 다져진 때였으므로, 정치적, 문화적으로 기록 재료가 많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 종이 제조법의 효율성과 성과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7~9세기의 당나라 시대에는 앞의 그림에서 보듯이 채륜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었던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채륜의 종이는 황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고 그가 넝마와 낡은 그물망으로 만든 점착물(粘着物)이 수도로 운송되어 황제의 보물로 관리되었다고 합니다. 원료는 거의 폐물을 이용하여 많은 양을 값싸게 생산할 수 있다는 놀라운 방법이었고 사용하거나 휴대하는 데에도 기존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했던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종이 제조법을 그린 명나라 시대의 그림. 출처_위키피디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종이 제작 기술의 전래


중국 당나라는 종이를 서방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당나라와 사라센 제국 사이에는 실크로드를 둘러싼 전투가 탈라스(Talas) 지역에서 있어 왔습니다. 포로로 사로잡힌 타슈켄트(石國) 왕이 처형된 것을 계기로 다시 전쟁이 벌어지고 당나라 현종(玄宗)은 751년에 정벌군을 일으켰으며, 사라센 제국 역시 군대를 일으켜 맞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751년 4만 명의 아랍-투르크 군대가 당나라 영토로 진격했으며, 오늘날의 키르기즈스탄(Kyrgyzstan)에 있는 탈라스 강에서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군대와 맞섰습니다. 당나라군은 주로 보병이었으며 아랍-투르크 기병에 허를 찔렸습니다. 당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여 겨우 몇 천 명만이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라센 기록에 따르면 투르키스탄 지방 탈라스강 근처에서 벌어진 이 ‘탈라스강 전투(Battle of Talas)’의 많은 포로 중에 포함되었던 제지 기술공들이 아라비아인들에게 제지술을 전파하였습니다.


탈라스 강 전투 시절인 700년 경 서쪽 지역으로 확장되어 있던 당나라의 영역. 출처_위키피디아


처음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진 곳은 757년 지금의 우즈베크 공화국의 사마르칸트(Samarkand)였습니다. 제지공장 건설로 중국에서 수입하던 값비싼 종이가 아라비아에서 직접 생산되었습니다. 사마르칸트에서 최초로 종이가 생산되자 “사마르칸트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마르칸트에서 제조된 종이의 원료로는 아마(亞麻)와 다른 초목의 섬유과 넝마 등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795년에는 페르시아의 바그다드에 제지공장이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사마르칸트 종이가 명성을 얻게 되자, 이에 대항하여 페르시아의 왕이 중국에서 직접 제지공을 초청하여 세운 것입니다.


900년에는 이집트에, 11세기에는 아프리카의 북부와 지중해 연안에까지 제지술이 전해졌습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초지법에 의한 종이의 제조가 이루어진 것은 에스파냐에서였습니다. 1150년 당시 에스파냐를 점령하고 있던 무어인(人)이 하디바, 트레드, 바렌샤 지방에 최초의 제지공장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유럽에 제지술을 전파한 것은 무어인(Moor)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89년에는 프랑스 에로에 에스파냐의 도움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졌는데, 프랑스는 이 제지공장을 근간으로 하여, 그 후 중세 최대의 제지공업국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채륜이 개발한 종이 제조법과 쿠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술과 결합하여 중세를 무너뜨린 지식 혁명의 불씨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사진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Cai_Lun

▪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paper

▪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Talas


참고문헌

Biasi P. (1999). Le Papier: une aventure au quotidian, Gallimard. 


글 : 공병훈 박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연구원으로 그리고 협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와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 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콘텐츠 산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그리고 창작과 생산 커뮤니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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