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의 첫걸음은 분류다

2015. 5. 14.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세상은 분류의 역사입니다. 너와 나, 아군과 적군,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산맥과 평야, 우기와 건기, 동양과 서양, 문관과 무관,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고대 중세 근현대, 선진국과 후진국, 민주주의와 세습독재... 인류 문명의 모든 것이 분류의 흔적들입니다. 새 분류법은 옛 분류법을 대체합니다. 떠오르는 문명이란 새롭게 떠오르는 분류방식의 다른 이름입니다. 아날로그로 분류되던 현상들이 디지털 방식으로 분류되고 융합됩니다.  


편집의 첫걸음은 분류입니다. 분류란 계통을 파악해 종류를 나누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편집 행위란 사건 발생 상황을 파악해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고 해결 방법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상황을 편집하려면 계통을 따져봐야 합니다. 동일 계열끼리 모으고 이질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은 따로 분리합니다. 분류를 하면 목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체 수량은 몇 개인지, 몇 가지로 나눠야 팩트와 본질에 접근가능한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즉 애매하거나 복잡한 것을 가닥 잡고, 유사한 것은 한데 모으는 분류 과정을 통해 편집력은 강화됩니다. 


 

백화점의 와인 코너는 분류의 백미입니다. 먼저 와인은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미국 스페인 등 원산지 국가 별로 나뉩니다. 생산된 국가의 국기가 문패에 부착돼 확연히 식별됩니다. 국가별 와인 매대는 다시 생산 연도 별로 재분류됩니다. 그 와인은 다시 제조 와이너리별로 한데 모이고 가격대가 저렴하면 하단으로, 비싸면 상단으로 배치됩니다. 고객은 분류의 규칙만 알면 수백 가지의 와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가격대의 와인을 쉽게 선별할 수 있습니다. 


버리는 것도 분류 과정을 거치면 부가가치가 발생합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를 버릴 땐 재분류를 합니다. 가구류 종이류 플라스틱 빈병 비닐류 깡통류 음식물쓰레기 등으로 분리되어 재활용업체가 수거해갑니다. 온갖 잡동사니가 섞여있으면 쓰레기지만 분류되는 순간 재활용가능한 자원이 됩니다. 자원 리사이클링의 첫 단추는 버리는 행위를 재분류하는 행위로 개념 전환하는 것입니다. 마구잡이로 버리고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는 소모 위주 단견에서 재분류해 유사한 것들은 한 데로 모으는 환경 배려 리사이클링 마인드가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합니다. 분류를 잘하면 세 가지가 편리합니다. 



첫째, 복잡한 것이 단순화된다. 


사건 주인공과 그 주변부 환경, 안과 밖, 주체와 객체를 재빨리 파악할 수 있게 합니다. 누가 무엇을 했고 액션 이전과 액션 이후 뭐가 달라졌는지부터 따져봅니다. 누구에게 이롭고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지를 진영으로 나눠봅니다. 극단적 단순화의 오류만 피할 수 있다면 모든 이론은 단순화 과정에서 꽃을 피웁니다. 단순화 과정에서 법칙이 발견되고 인간의 지성은 정교해집니다. 분류를 깊이 파고들면 새로운 개념 새로운 차원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립니다. 학문은 분류의 또 다른 명명입니다. 학문은 분류로 발원해 분류를 통해 진화합니다. 인문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응용과학으로 분화하면서 수많은 융합과 통섭을 반복합니다. 



둘째, 분류는 우선순위를 부여해준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당장 급한 것과 덜 급한 것, 핵심과 변방을 구분해줍니다. 동시에 버려도 되는 것, 생략해도 되는 것, 덜어내도 되는 것을 구별시켜줍니다. 삶에서 모든 선택은 우선순위를 가리는 행위입니다. 인생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소소한 차이점의 출발점이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가리는 일입니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할 것인가. 


신문사 편집국장은 신문조직의 꽃입니다.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은 300~400명의 편집국 기자들을 지휘합니다. 하루 수백 건의 뉴스와 분석 기사들의 게재 여부와 편집 순위를 최종 결정하고 최종 책임을 집니다. 어떤 뉴스를 1면 톱으로 올리고 어떤 기획기사를 심층 보도할 것인지를 재빨리 판단해야합니다. 동시에 이 과정은 덜 중요한 기사는 빼고 덜 급한 이슈는 뒤로 미루는 일입니다. 한정된 지면에 최고의 뉴스만 엄선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엄선은 그만큼 내공을 기울여 뉴스를 정교하게 설계한다는 의미이고 그 편집 계획 밖의 자잘한 뉴스들은 과감하게 버린다는 뜻입니다. 


셋째, 분류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공자는 일생을 돌아보며 인생을 몇몇 단계로 분류했습니다. 15세는 학문에 뜻을 두는 지학(志學)의 단계, 30세는 스스로 자립하는 나이인 이립(而立)의 단계, 40세는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불혹(不惑)의 단계, 50세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지천명(知天命)의 단계, 60세는 누가 무어라 해도 흥분하거나 분노하지 않게 되는 이순(耳順)의 단계, 70세는 마음에 따라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종심(從心)의 단계로 의미부여하면서 평생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동양권 인생 경영지침의 영원한 화두입니다. 


장수시대가 앞당겨 오면서 ‘인생 칠십’이란 말이 옛말이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살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을 넘어섰습니다. 3년마다 평균 수명이 1세씩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50년 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100살을 넘길 전망입니다.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한 것. 100세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로 유엔은 ‘호모 헌드레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 1모작’이란 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평균 80세 이상 인생을 영위한다고 볼 때 50대 은퇴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으로 제2의 인생을 꾸려야 합니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길어진 생의 노년이 재앙이 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전 생애를 성찰하고 분류해봐야 하는 절실한 이유입니다.

 

연장된 삶의 기간에 필요한 것들을 무엇일까. 한정된 퇴직금으로 무엇에 도전할 수 있는지, 기존 경력과 새로운 경력을 융합하기 위해선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 것인지, 고정소득이 얼마인데 적정한 노후를 보내기위해선 평균소득은 얼마만큼 유지되어야 하는지, 도전할 것과 집중할 것 위주로 지금까지의 생을 재분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의 주체적 역량이 뛰어나면 인생 3모작까지 가능합니다. 50대까지 인생 1모작을 완료했다면 제 삶을 재편성하여 인생 2모작에 돌입하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분류는 삶의 기회와 선택권을 압축해줍니다. 전반전에 실패했어도 후반전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줍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되는대로 살게 됩니다.  


김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