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치는 파워블로거 등장으로 되짚어 본 미디어

2011. 8. 10. 10:4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무엇이 제대로 된 글인가. 어떤 것이 공명한 기사인가. 기자로서 늘 고민하고 있고, 또 독자들도 그런 고민이 담긴 기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고민이 어떻게 현실로 표출될 수 있을지 한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공정위에서 이른바 '베비로즈 심사지침'이란 것을 내 놓은 것은 지난 달(7월) 중순 일입니다. 온라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니 많은 분들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미지 출처 : 베비로즈 블로그>


사건은 이렇습니다. 네이버 파워 블로거인 주부 현진희(닉네임 베비로즈)씨는 네이버에 `베비로즈의 작은 부엌`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요리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소개하는 이 곳은 하루 방문자만 15만 명에 달하고, 구독자도 13만300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현씨처럼 방문자가 많아 특정 분야에 영향력이 큰 블로거를 파워플로거라는 별칭으로 부르고 있지요.

그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채소와 과일에서 농약 등의 성분을 제거해주는 다기능 살균 세척기의 공동구매를 진행했습니다. 제품당 36만 원에 모두 3,000여 대가 판매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동구매 이후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이 실시한 오존 발생 전기용품에 대한 안전성 조사에서 공교롭게 이 제품에서 국제기준(0.1ppm 이하)을 초과한 오존이 발생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표준원은 이 제품에 대한 자발적인 리콜을 권고했으나 구매자들은 부작용을 호소하면서 현씨와 해당 업체에 전액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씨는 한 대당 7만 원씩, 모두 약 2억여 원의 거액 수수료를 받기로 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온라인에서 파워 블로거의 직·간접적인 상품판매를 관리·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장삿속을 챙길 수 있도록 방치한 포털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상황입니다.


◆누구의 잘못인가 =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제공받은 경우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블로거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알렸다면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에게 돈을 받고 제품 구매 정보를 알린 것이 아닌 만큼 법적 책임을 묻기는 힘들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상대방을 속여 기망할 목적이 '블로그 글과 사진'의 형태로 된 정보인 셈인데, 과연 이 정보들의 의도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는 것입니다.

영리행위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의도된 바에 따라 정보를 만들어내고, 유포하고, 확대 재생산하며 유무형의 의도를 반영합니다.

해외는 이에 대해 엄격한 편입니다. 실제로 지난 2009년 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특정 제품에 대해 대가를 받은 블로거는 해당 사실을 독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2009년 12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 새 규정은 리뷰의 목적으로 블로거나 웹 사이트에 제품을 기증한 경우 해당 블로거는 이런 사실을 공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블로거는 리뷰가 끝난 후 제품을 돌려줘야 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해당 블로거에게 최고 1만 1,0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도 있습니다. FTC의 새 규정은 특히 연예인이나 블로거를 통한 기업들의 마케팅이 활기를 띠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부작용을 예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국세청, 공정위, 정치권 등이 나서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파워블로거들의 수상한 거래에 대해 조사에 나섰습니다.

국세청은 탈세 혐의가 있는 `짜고 치는` 블로거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일명 `베비로즈 법안`도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공정위는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결과를 내놨습니다. 일명 '베비로즈 심사지침' 을 마련한 것입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앞으로 파워 블로거나 인터넷 동호회, 각종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광고주로부터 대가를 받고 추천글 등을 게재할 경우에는 대가 받은 사실을 공개해야 합니다. 공개하지 않고 홍보성 정보임을 숨기거나 기만적으로 표시할 경우, 위법 광고행위로 간주하고 광고주를 제재하게 됩니다. 파워 블로거들은 살아남고, 파워 브로커들의 몰락은 시작된 셈입니다.


◆정보를 다루는 기성 언론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 일부 지능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블로거들이 비판을 받는 위 상황의 주어에 '언론사' 또는 '기자'를 대입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성 미디어를 불신하는 이유도 베비로즈 파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보를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할 플랫폼이 상업적 의도와 맞물려 패가망신하는 사례는 늘 있어 왔습니다.

돈을 받고 기사를 써 주고, 대가를 수수하고 좋은 위치에 글을 올려주는 행위, 또는 물질적인 대가가 없다 하더라도 객관적 편집 방향과 현저하게 달라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미디어 행위에 대해서는 늘 예리한 잣대를 대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이 기사는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드는 글 중 열에 한두 건은 실제로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미디어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이같은 잡음은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어떤 행위를 두고 정보왜곡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온라인 미디어 등 각종 뉴미디어에서는 이러한 미디어 행위를 교묘하게 정보왜곡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은 미디어 시공간에 대한 제약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디지털 어뷰징이 손쉽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어뷰징을 하더라도 기존 미디어 영역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아 쉽게 용인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많은 디지털 공간에 왜곡된 정보 한 건 쯤이야 어떠냐는 생각이 미디어 기업들 사이에 팽배해 있습니다. 블로거든 기자든 비뚤어진 몇몇이 생각하는 방식은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한 정보라는 개념은 이미 ‘신문’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미친 정보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신문 등 오프라인 미디어뿐만 아니라 뉴미디어 정보들은 모두 '의도'를 늘 생각하며 비판적으로 봐야 합니다. 모든 정보는 잠재적으로 그 작성 및 편집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잘 짜여진 각본대로 그러나 정보 플랫폼을 남용하는 신문 기사, 방송 클립, 인터넷 콘텐츠 등은 언제나 숨은 왜곡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내용이 어떠했던 간에 기사 속에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산정하기 힘든 광고 효과를 그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무관심이 얼마나 큰 타격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논란과 별개로 사실의 왜곡은 언론으로서 큰 위기입니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은 뭔가 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디지털 천리안(千里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사를 볼 때, 또는 정보가 담긴 글을 볼 때 '과연 이 정보를 담아낸 사람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으로 시작되었을까'하는 진지한 고민 한번 해 보면 어떨까요. 훨씬 더 흥미 있는 신문읽기가 될 것입니다. 가장 건전한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살아남고, 왜곡을 일삼는 블로거 글이나 언론사 기사가 자연스럽게 퇴출되는 생태계가 조성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공평한 기사를 골라 낼 필요가 없게 될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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