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딸을 둔 딸부자집의 독서 방법

2011. 8. 12. 11:19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공부시간 빼앗긴다며 독서 안 하면 바보" 
[일본 현지취재] 집안독서 실천하는 후지타씨 가족 현장탐방 인터뷰

매일 아침 일본의 각급 학교에서 첫 교시 시작 전 실시하는 '아침독서'. 학생들이 아침 책 읽기로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독서'는 이제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2007년 4월 13일 기준으로, 2만 4,394개 학교에서 '아침독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일본 공명신문 4월 26일자). 

'아침독서' 성과를 확인한 일본에서는 이제 그 2탄 격으로 '집안독서'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TV나 인터넷, 게임을 멀리하고 가정 내 책 읽기를 하는 것입니다. '집안독서'의 성과는 '아침독서'만큼이나 대단하다는 평가입니다. 책을 매개로 한 가족 간 의사소통 증대, 아이들의 학업 성적 향상, 정서 함양, 배경지식 확대, 사고력 증진 등….  



<"우리는 독서 가족" 일본 이바라기현 다이고 마치에 사는 후지타 씨(오른쪽 두 번째)

가족 다섯 명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후지타 씨 가족은 <집안독서>를
실천하는 모범 사례로 소문났다. >


 
기자는 실제로 '집안독서'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일본의 한 평범한 가정을 찾아봤습니다. 기자가 방문한 곳은 이바라기현의 다이고 마치 기획과 직원인 후지타 다카노리(43) 씨 자택.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 가량 가야 하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가정입니다('마치'는 한국으로 치면 읍, 면에 해당합니다. 후지타 씨는 읍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보면 됩니다).

후지타 씨 가족은 목련, 개나리, 벗꽃이 흐드러지게 핀 다이고 마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2층 단독주택에서 할머니를 포함해 3대가 단란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다카노리 씨와 어머니 아야코(42) 씨는 슬하에 큰딸 와카코(14, 중2), 유키코(10, 초4), 하나코(8, 초2) 등 세 딸을 둔 딸부자입니다. 

1층 다다미방 한켠에 조상의 위패와 제단을 모신, 전형적인 일본식 응접실에서 할머니가 내온 다과를 앞에 두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집안독서'의 실제 적용 사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후지타 씨 아이들과 부모는 한 목소리로 '집안독서'의 으뜸 효과로 학업성적 향상을 꼽았습니다. 처음부터 성적을 올리기 위해 책 읽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뜻밖에 독서 덕분에 성적이 오르는 경험을 했다며 사뭇 신기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세 딸의 독서삼매경" <집안독서>를 실천하고 있는 후지타 씨의 세 딸이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다.

왼쪽부터 큰딸 와카코(14세, 중2), 유키코(10, 초4), 하나코(8, 초2).>
 

큰딸인 중학교 2년생 와카코 양은 "국어 수업 때도 모르는 단어가 없고, 시험 문제도 잘 이해됩니다"라면서 '집안독서' 효과에 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습니다. '집안독서'를 하면서 수업시간에 선생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시험지를 받아봐도 문제 핵심이 머릿속에서 명쾌하게 정리되더라는 얘기입니다. 또 일본 문화생활에서 필수인 한자도 친구들에 비해 많이 알게 돼 수업시간에 자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둘째인 초등학교 4년생 유키코 양도 언니의 말에 동감합니다. 유키코 양은 "작년에 학년에서 3명 뽑는 교내 독서 대표로 선발됐는데,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라면서 "언니처럼 방과 후에도 책을 많이 읽다보니 몰랐던 한자를 많이 알게 돼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라고 신바람을 냈습니다. 막내이자 셋째인 초등학교 2년생 하나코 양은 "책을 읽어가면서 줄거리가 점점 밝혀지는 게 아주 재미있습니다"라면서 어른스럽게 독서 예찬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집안에서 읽는 도서의 선정도 자유로웠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집으로 빌려와 어머니와 함께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큰딸 와카코 양은 "요즘 읽는 책"이라며 기자에게 <나의 음악 단련 일기>라는 책 표지를 들어 보여줬습니다. 클라리넷 연주가 취미인 와카코 양은 세계적인 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가 쓴 책에 푹 빠진 모습입니다.

둘째인 유키코 양은 급우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고 있다고 합니다. 유키코 양은 "책 읽기가 싫었던 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고 도리질을 칩니다. 낯선 기자의 질문에 웃기만 할 뿐 주로 엄마 얼굴만 쳐다보던 막내 하나코 양은 "1년에 100권 정도 책을 읽고 싶습니다"라고 말해 기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맏딸 와카코 양이 초등학생 때 1년 간 책 300권을 독파해 학교에서 표창을 받은 적이 있다는 어머니의 설명을 듣자 초등학교 2년생 막내의 '100권 책읽기' 포부가 전혀 허풍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가정 내 독서 습관 확립에는 어머니 아야코 씨의 노력이 컸습니다. 평범한 전업주부인 아야코 씨가 '집안독서'에 신경을 쓴 것은 2년쯤 전부터 입니다. 단순히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보살피는 것 이상으로 이들의 미래에 보탬이 될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 끝에 '집안독서' 유도를 결심한 것입니다.


<"책 읽으니까 재밌지?" 아야코 씨(왼쪽)가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 딸 하나코 양과

책 읽은 소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야코 씨는 자녀들이 읽는 책을 모두 읽으면서
독서 지도를 한다고 밝혔다.>
 

아야코 씨는 아이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면 자신도 자녀들과 함께 그 책을 꼭 읽는다고 합니다. 첫째와 둘째가 각각 한 권씩 매일 두 권을 빌려오면 자신도 이 두 권을 다 읽고 다음날 책을 반납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아이들과 읽은 책을 공통 화제로 삼아 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엄마와 책 읽은 소감을 토론하기 위해 더 열심히 책 내용에 몰입한다는 설명입니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하루 두 권씩 읽는 아야코 씨는 "그나마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 글씨가 크고 그림도 있어 다행"이라며 활짝 웃습니다.

이 가정에는 특이하게도 TV를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가장인 후지타 씨에 따르면 TV를 켜놓기도 하고 특별히 금지하는 것도 아닌데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야코 씨는 "아이들이 TV에 관심이 없어 안 보는 것 같습니다"라며 "가급적 TV 대신 책읽기 쪽으로 아이들의 흥미를 유도하다보니 이제는 TV에 만화영화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이 나와도 잘 보려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후지타 씨는 "사람은 TV를 아무 생각없이 수동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런데 책이란 것은 스스로 의지를 갖고, 의식해서 읽어야만 흡수가 가능한 것이라 TV보다 더 주체적인 매체"이라며 "직장 동료 가운데는 아예 TV가 없는 집이 있는데 그 집 아이들이 공부를 무척 잘합니다"는 말도 곁들였습니다.

후지타 씨도 직장생활로 여유가 많지 않지만, 퇴근 뒤 그림과 도자기에 관한 취미서적을 탐독하며 항상 아이들에게 '책 읽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엄마 아야코 씨에 따르면 아이들이 원래 공부를 잘했던 것이 아닙니다. "둘째 아이는 산수 성적이 안 좋았는데, 책읽기 습관이 생기면서 산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됐고, 첫째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책읽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에 맞춰 학업 성적이 눈에 띄게 올라갔습니다"라고 흐뭇해 했습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아침독서에 이어 '집안독서'까지 습관화한 뒤 아이들 심성이 더 고와지고 차분해졌다는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이들 부부는 '집안독서'의 성과에 관해 한 목소리로 "아이들의 성적 향상 외에 식구들 사이에 책이란 공통 화제를 중심으로 대화가 많이 늘어났습니다"라면서 단란한 가정을 지켜주는 '집안독서'에 고마움을 나타냈습니다.

취재를 마친 뒤 숙소가 있는 도쿄로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가장 후지타 씨는 "서두르지 않으면 도쿄행 열차를 놓칠 수 있습니다"라면서 손수 승용차를 운전해 다이고 마치역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후지타 씨 일가의 행복한 독서 생활과 밝은 표정이 한국의 교육과 책읽기 현실에 중첩되면서 내내 부러운 심정과 착잡한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다음은 후지타씨 부부 일문일답 인터뷰입니다.


왜 <집안독서>를 시작했습니까.


아야코: "무엇보다 학교에서 실시한 '아침독서' 영향이 컸습니다. 저학년 때에는 책을 별로 안 읽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점점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물론 부모로서 독서를 권장하고 적극 유도한 측면도 있지만, 학교에서 진행하는 '아침독서' 덕분에 아이들이 책읽기에 흥미를 느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집안독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집안독서'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아야코: "초등학생 아이 둘이 학교 도서관에서 날마다 책을 한 권씩 빌려 옵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다음 날 반환해야 하는데 엄마인 나도 꼭 읽습니다. 두 아이가 가져오는 책이 두 권이기 때문에 나도 날마다 두 권씩 꼭 읽는데 그것이 규칙이 됐습니다. 거기서 찾은 공통 화제를 중심으로 독후감을 서로 얘기합니다. 막내는 한 학년 동안 50권, 그리고 둘째 애는 100권을 읽고서 둘 다 학교에서 독서상을 받아왔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아이들이 독서를 많이 하는데 학업 성적은.


아야코: "막내는 글씨를 읽게 된 것 자체가 큰 자신감으로 이어진 경우입니다. 원래 산수를 잘 못했는데 독서를 통한 독해력 향상 때문인지, 시험 문제가 요구하는 핵심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돼 산수 성적이 부쩍 올랐습니다. 둘째 아이는 한자검정시험에 도전할 만큼 어려운 한자도 잘 읽어내 주위를 놀라게 합니다. 물론 중학생 첫째는 성적이 아주 좋습니다." 


<"공부와 독서를 병행해야">
 

한국의 경우, 워낙 대학입시 준비가 벅차다보니 '책읽을 시간이 있으면 참고서 한 번 더
      보라'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야코: "나도 처음에는 그것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서를 하면서 정보 수집력이나 감정 표현 능력이 커지는 것을 확인한 지금은 공부와 독서를 양립하는 것이 더 상승 효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쉽게 말하면, '책을 읽는 바람에 공부할 시간을 빼앗긴다'고 보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이야기)."


독서가 학업 성적 이외에 자녀 교육에 어떤 보탬이 됩니까.


다카노리: "'아침독서'나 '집안독서'를 안 한다면 우리 아이들도 책을 멀리 하고, TV 많이 보는 아이들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TV나 인터넷에서 얻는 지식과는 달리 책에서 얻은 지식은 개개인의 상상력과 사고능력을 키워줍니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독서습관이 생긴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밖에 '집안독서'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다카노리: "뭐니뭐니해도 우리 가정 내 의사소통이 원활해졌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책을 중심으로 한 공통 화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
엄마 아빠의 독서지도 후지타 씨(뒷줄 왼쪽)와 아야코 씨 부부가 둘째 딸
와카코 양(앞줄 오른쪽)과 
셋째 딸 하나코 양의 책 읽기를 지도하고 있다.>
 

책읽기와 같은 활자 문화가 왜 중요하다고 보나.


다카노리: "원래 TV라는 것은 말과 영상이 그냥 흘러나와 시청자들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문자는 읽는 사람이 각양각색이고, 정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일본어에는 한자가 있는데, 한자 하나하나마다 용도가 모두 다릅니다. 또 같은 말이라도 의미가 완전히 다른 경우가 있고, 표현이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습니다. 곧 활자를 알아야 이해가 된다는 점입니다."


일본에 활자문화 진흥법이 생겼는데 이 법을 알고 있는지. 


다카노리: "솔직히 이런 법안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학교의 아침독서와 가정의 집안독서를 확산시키는 좋은 법안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독서를 열심히 하는데 어떤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까.


다카노리: "큰딸이 클라리넷 연주를 아주 즐겁게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프로 연주자가 됐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것과 연관된 일이라든지 취미라도 좋으니까 계속 클라리넷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추상적인 얘기지만 일에 쫓기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일 외에도 취미 생활을 즐기고, 타인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아야코: "감수성 풍부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세 딸 모두 감정 표현이 풍부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바랍니다. 공부도 잘 하고, 자신이 열중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평생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책 열심히 읽겠습니다." <집안독서>를 실천하고 있는 후지타 다카노리 씨 가족이

자택 현관에서 취재를 마친 기자를 배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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