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와 함께 꽃피운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출판

2015. 6. 1.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르네상스를 품은 도시 국가 피렌체


로마제국을 형성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가 기원전 59년 아르노 강에 식민지를 세울 때, “꽃피는 마을”이란 뜻으로 “플로렌티아”(Fluentia)라고 불리며 피렌체가 시작됩니다. 로마 동북부의 작은 도시였던 피렌체(Firenze)는 11세기 이후 십자군 전쟁과 상업의 발달로 활성화되어 점차 도시국가 형태로 발전하고 13세기에 인구가 3만명으로 늘며 양모 제조업과 귀금속 길드가 발달합니다. 이 기반에서 은행업자들과 상인들이 성공하면서 피렌체는 이탈리아의 매우 부유한 도시로 성장합니다. 당시 피렌체, 제노바, 베네치아 같은 도시국가들은 이슬람 세계, 비잔틴 세계, 서유럽을 연결하는 허브(hub)로서 활동합니다.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도시국가들에는 시민 문화가 형성되고 중세 가톨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지식에 다시 관심을 갖습니다. “재생” 또는 “부활”을 뜻하며 문예 부흥(文藝復興)이라고도 부르는 르네상스(Renaissance)는 14세기에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과학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합니다. 덕분에 유럽은 중세의 막을 내리고, 근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곧 알프스를 넘어 유럽의 다른 국가, 즉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져나갑니다.


15세기 베스트셀러 『뉘른베르크 연대기』(Nuremberg Chronicle)에 담긴 피렌체 풍경. 출처 :위키피디아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년)도 르네상스의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면서 수많은 그리스 학자들이 로마의 문헌들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도망칩니다. 이 과정에서 뛰어난 재주를 지닌 예술가와 인문학자, 사상가들이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피렌체에 모여든 것입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추방되어 떠돌면서 로마의 고전 문학과 중세 가톨릭을 결합하여 서사시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쓴 단테(Dante), 공화주의와 군주 정치를 꿈꾸던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망원경을 스스로 제작하여 지동설(地動說)을 세운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르네상스인의 전형으로 알려진 많은 이들이 피렌체에 나타납니다.


피렌체의 르네상스인의 전형으로 불리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메모들. 출처 :위키피디아


자국어 출판과 구텐베르스 인쇄술에 의한 르네상스 확산   

 

14, 15세기의 필사본들은 르네상스와 자국어 사용의 경향이 확산되면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 시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수도원 도서관에서 많은 고전 작품들이 발굴됩니다. 곧이어 고전 작품들의 문체나 이교적인 내용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서유럽 전역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들에 대한 탐색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인문주의자들이 해설을 덧붙여 교정한 작품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수집 목록 1호였다고 합니다. 


고전 문학과 고전어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씌어진 책들도 등장했는데, 단테,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지오바노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등 독창성을 지닌 천재작가들의 작품들이 출판됩니다. 


지오바노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의 한 페이지.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의 시골 별장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형식이다. 출처 : 위키미디어


문학작품의 출판이 증대되면서 더 많은 독자들이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작가들은 각자의 모국어로 작품을 썼고, 그 결과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층이 확대되어 책이 상업적인 거래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구텐베르크 인쇄기가 1462년경 독일과 유대 관계를 맺고 있던 로마 근교의 베네딕토회(Benedictine Order)의 수도원을 통해 이탈리아에 전해집니다. 상업 도시를 중심으로 인쇄와 출판이 발달하여 1500년경 베네치아에는 150대나 되는 인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르네상스는 구텐베르크 인쇄술과 자국어 출판을 기반으로 문자 해독 계층을 증가시키면서 이탈리아에서부터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나갑니다.


책을 통해 왕의 영광을 높이려던 프랑스


1527년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의 연합군에 의해 로마가 함락되면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는 막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프랑스의 앙리 에스티엔느(Henri Estiene)는 프란체스카 콜로나(Francesco Colonna)의 『폴리피우스의 꿈』(Hypnerotomachia Poliphili)을 접하고는 베네치아로부터 인쇄술을 가져와서 파리에서 인쇄업을 시작합니다. 그 영향으로 프랑스에 로마시대 때 널리 사용되던 세리프체 로만체(roman)가 보급됩니다. 『폴리피우스의 꿈』1499년 베네치아에 처음으로 출판된 책으로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인쇄 수준과 일러스트를 사용한 목판화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폐허의 고대를 배경으로 폴리피우스의 꿈과 폴리아(Polia)에 사랑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앙리 에스티엔느에 의해 프랑스에서 또다시 출판되고 영국에서도 출판됩니다. 


알두스 마누티우스(Aldus Manutius)의 『폴리피우스의 꿈』의 본문 페이지. 출처 :위키피디아


종교전쟁 이후 군주제가 확립되자 파리에 몰려 있던 출판업은 더 활성화됩니다. 1620년 루이 13세는 “유용한 책을 통해 왕의 영광을 높이자”는 취지로 루브르 궁 안에 사설 인쇄소인 왕립인쇄소(Imprimerie Royale)를 설치했고 당시 이곳에서 1,900여명이 일했다고 전해지는데 1640년에는 국가기관으로 전환됩니다. 또한 도서 출판업을 통제하기 위해 1618년의 칙명에 의해 조합회의소(Chambre des Syndicats)를 설립했습니다. 여기에는 왕이 지명한 2명이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졌습니다. 권력층은 종교나 윤리 문제와 정부의 이념과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악서들을 퇴치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1667년부터 장비 판매를 규제라고 감시하였으며 인쇄소들을 수색하여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바스티유 감옥으로 보내집니다. 이 상황은 1678년 루이 16세 시대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1640년 루브르 궁 안에 사설 인쇄소인 왕립인쇄소의 풍경


1692년에 루이 14세는 왕립인쇄소에서 새로운 활자를 개발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고 모든 시대의 알파벳을 연구하게 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새로운 로만체를 사각형에 수학적인 비례를 적용하여 도안했는데 그 결과로서 굵은 획과 가는 획의 대비가 균형잡힌 세리프를 가진 로맹 뒤 르와(Romain dy Roi) 글꼴이 만들어집니다.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의 시대가 본격화된 것입니다. 타이포그래피는 활자 서체를 구성하는 배열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문자 또는 활판(letterpress plate)을 위한 기호를 중심으로 한 2차원적 표현을 가리켰습니다. 오늘날에는 뜻이 확장되어 사진도 첨가한 구성적 그래픽 디자인 전체를 가리킵니다. 서체(書體) 또는 타이포그래피는 일관성 있게 설계된 글자 모양을 이루는 하나의 집합이자 배열인 셈입니다.


그림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The_Renaissance

▪ http://es.wikipedia.org/wiki/Escultura_del_Renacimiento_en_Italia

▪ http://en.wikipedia.org/wiki/Leonardo_da_Vinci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Decameron_V_9.jpg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Hypneroto2.jpg

▪ http://sevicom.free.fr/peda/com/c0203/kd1/imp_roy.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