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3인의 생생한 ‘디지털 단식’ 체험

2015. 7. 6.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7월호>에 실린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장/ 김상연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 연거푸 촐랑거리는 휴대전화 알림음 소리에 ‘카카오톡’을 열어보니 결혼한 여동생이 보낸 사진 세 통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놀러가서 찍은 사진인 모양이었습니다. 사진 외에 별도로 문자메시지가 첨부돼 있지 않은 게 좀 이상했지만, 가족 동향을 가볍게 사진으로 알려주는 의도이겠거니 짐작하고 다른 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다시 알림음이 울렸습니다. 카톡을 열어보니 여동생이 보낸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오빠, OO이가 핸드폰 갖고 놀더니 사진을 보냈네. 기막혀.”


한 달간 스마트폰 금지!


OO이는 생후 40개월밖에 안 된 여동생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만 4살도 안 된 조카가 엄마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혼자 힘으로 이것저것 눌러서 나한테 전송했다는 얘기였습니다. 나는 아연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디지털에 능숙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 4월 1일부터 5월 27일까지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이 총 9회에 걸쳐 보도한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는 이런 작은 에피소드가 모티브가 됐습니다.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게 인간 능력의 진화를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아이들의 지적 성장을 교란시켜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퇴보하게 되는 건지를 규명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아이들뿐 아니라, 날이 갈수록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한 규명이기도 했습니다. 기존에 스마트폰 중독 문제를 다룬 언론보도는 많았기 때문에 차별화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을 악으로, 아날로그를 선으로 도식화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즉, 기획의 지향점이나 결론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무(無)에서부터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정말 무엇이 정답인지 나 자신부터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기획의 제목을 ‘아날로그vs디지털 리포트’가 아닌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당초 나는 취재해 보기 전에는 결론을 알 수 없다는 논리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를 무의미하게 연결시키는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라는 제목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편집부에서 “제목이 주는 의미가 너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아날로그vs디지털 리포트’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나는 극구 반대했고, 격론 끝에 결국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가 절충안으로 채택됐습니다.


디지털 중독 청소년 치료시설인 전북 무주군의 국립 청소년 인터넷드림마을에서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청소년들이 무용과 마임 활동을 하고 있다. 2015.5.13. 서울신문 보도 사진.


본론에 앞서 프롤로그 형식으로 기자들이 ‘디지털 단식’을 직접 체험키로 한 것도 기존 언론 보도와 차원이 다른 기획을 위한 아이디어였습니다. 편하게 사무실에 앉아 전화를 돌리거나 누구를 만나 들은 내용을 보도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생업에 바쁜 독자들을 대신해 기자들이 체험을 해서 기사화하는 것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일반인이 아닌 기자의 체험기는 현상을 깊이 있는 저널리즘적 시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왕 체험키로 한 바에는 제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기존에 일부 방송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루 이틀 정도 스마트폰 안 쓰기 실험을 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오랜 기간 디지털 단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1년은 물리적으로 힘들고 1주일은 너무 짧다는 판단에서 1개월(4주)로 정했습니다.


“징계 받겠다”는 무서운 서약서


다음 문제는 체험의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였습니다. 매사에 의욕적인 특별기획팀 소속 기자 세 명 모두가 기꺼이 체험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각자 다른 조건으로 실험을 진행키로 했습니다. 같은 디지털 단식이라도 조건을 달리 했을 때 ‘금단증상’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를 확인하려는 취지였습니다. 우선 유대근 기자는 한 달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만하지 않고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 등 다른 디지털 기기는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송수연 기자는 SNS는 물론 스마트폰을 일절 사용치 못하게 했습니다. 이두걸 기자는 SNS와 스마트폰은 물론 노트북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를 일절 사용치 못하도록 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못 쓰게 된 송 기자와 이 기자는 대신 피처폰을 쓰도록 했습니다. 피처폰까지도 아예 못 쓰게 하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현대사회에서 휴대전화 없는 생활은 너무 비현실적인데다 이번 기획의 목적이 스마트 기기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것이라는 점에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세 기자가 적극적으로 체험 도전 의사를 밝혔지만, 팀원들이 한 달 동안 불편한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 팀장으로서 미안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기를 일절 못 쓰고 완전히 아날로그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이두걸 기자가 끝까지 잘해낼 수 있을지 마음이 안 놓였습니다. 이 기자의 도전은 데스크인 나한테도 번거로운 일이었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이 기자가 원고지로 기사를 쓰면 그것을 내가 컴퓨터에 일일이 옮겨 적는 과정을 한 달 동안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팀원들의 체험을 내가 옆에서 일일이 ‘감시’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24시간 기자들을 따라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체험의 룰을 어기지 않고 제대로 디지털 단식을 할지는 순전히 양심에 맡겨야 했습니다. 나는 룰을 반드시 지키고 정직하게 취재 윤리를 지키라고 수차례 강조한 것은 물론 서약서까지 받았습니다. “체험 도중 룰을 지키지 못할 경우 그 사실을 즉각 밝히고 바로 체험을 중단할 것임을 서약한다. 만약 약속을 어긴 사실이 확인될 경우 인사상의 징계를 포함한 어떤 책임도 질 것임을 서약한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에 서명을 받은 것입니다.


드디어 한 달간의 체험 돌입 전날 오후에 나는 송수연 기자의 스마트폰과 이두걸 기자의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를 ‘압수’해 내 책상 서랍에 밀폐 보관했습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건네는 두 기자는 마치 가족과 생이별이라도 하는 듯 서운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 역시 그들을 이산가족으로 내모는 듯한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차갑고 딱딱한 디지털 기기가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직접 체험과 취재를 동시에


체험기는 1주일에 한 번씩 총 다섯 차례(체험 시작 직전 준비과정 한 차례 포함) 보도하기로했는데, 과연 그만큼 쓸거리가 계속 나올까 하는 점도 우려됐습니다. 다섯 차례 내내 비슷한 체험기가 나온다면 그것만큼 난감한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예상 외로 쓸거리가 많았습니다. 초반 체험기에는 디지털 단식에 따른 불편함과 이로운 점이 교차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체험 종료일이 가까워올수록) 디지털의 유용성에 더 무게를 두는 체험기가 올라왔습니다. 세 기자 모두 공통적이었습니다.


이윽고 4주간의 체험이 모두 끝난 날 오후 책상 서랍에 억류하고 있던 이 기자와 송 기자의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를 석방했습니다. 그것들을 기자들에게 건네줄 때 역시 압수할 때와 마찬가지로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마치 생명을 가진 이산가족을 인도하는 것처럼. 체험기를 쓰는 한 달 동안 팀원들이 아무 일도 안 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본론격인 아날로그, 디지털 생활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본론은 유년기, 청소년기, 성년기 3회에 걸쳐 보도하기로 하고 팀원 3명에게 각자 한 편씩 취재토록 할당했습니다. 팀원들에게는 선입견을 일절 배제하고 취재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예컨대 디지털적 삶을 취재할 때 디지털 중독 사례뿐 아니라 디지털을 이용해 삶의 풍요를 누리는 사례도 적극 취재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가장 관심이 큰 시기는 역시 유년기인 만큼 여기에는 유아들에 대한 과학적 실험을 곁들이기로 했습니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을 섭외해 가톨릭대 심리학과 연구팀과 함께 2~6세 유아 62명과 부모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역시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가 아이들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가톨릭대 연구팀이 작성한 설문 결과 분석 자료에 전문 용어가 너무 많고 설문 결과를 계량화하는 방법이 언론의 방식과 달라 기사화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수치 하나, 용어 하나라도 의문이들거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끝까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습니다. 과학적 실험이 곁들여진 첫편에 대한 반응은 컸습니다. 일부 독자들은 취재기자에게 기사에 익명으로 소개된 아날로그식 교육 방식을 채택한 유치원이 어디인지 알려달라는 문의전화를 해 오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삶, 긍정이야 부정이야?


세 기자의 취재 내용을 종합해보니 유년기는 물론 청소년기, 성년기까지도 대체로 ‘디지털적 생활=부정적’ ‘아날로그적 생활=긍정적’이라는 결론이 공통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았습니다. 디지털이 그토록 인간에게 해롭다면 인류는 갈수록 진화를 역류해 퇴보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디지털의 도움으로 누리는 편리함과 정보의 풍요는 어떻게설명해야 하나.


이에 대한 해답은 마지막 회인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얻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디지털에 대해 극명하게 다른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을 섭외했습니다. “디지털 중독이 이대로 가속화하다가는 인간의 뇌가 파충류처럼 된다”고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와 “스마트 기기는인간을 더욱 똑똑하게 한다”고 주장하는 정보통신학 교수를 인터뷰 한 결과 매우 상반된 견해가 확인됐습니다. 인터뷰에서 이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따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신문에상세히 실어줌으로써 어느 쪽 견해가 더 일리가 있는지의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기로했습니다.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 유아편이 보도된 날 여동생에게 기사 내용을 첨부해 카톡을 보냈다. “읽어보고 OO이 양육에 참고해라”라는 메시지와 함께. 잠시 후 동생의 답신이 왔습니다. “안 그래도 앞으로는 OO이한테 스마트폰 안 주려고.”


그렇다면 이번 기획을 통해 ‘양질의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쪽으로 자제력을 갖고 선용(善用)한다면 디지털은 문명의 이기’라는 결론을 내린 나는 어떤가. 리포트가 끝난 이후 시간이 갈수록 나의 스마트폰 사용 목적은 결심과 달리 오락과 소일의 도구로 회귀하고 있고 잠시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증상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