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 해외시장 진출 위한 다국어 테스트

2015. 7. 13.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7월호>에 실린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 박사과정/ 서수민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지난 5월 초 뉴욕타임스가 2회에 걸쳐 연재한 뉴욕 네일살롱 노동자 관련 탐사보도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최저임금은커녕 하루 10달러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각종 유해 화학약품에 노출되며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는 네일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보도된 직후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일요일인 5월 10일 네일살롱 노동자 보호를 위한 긴급 태스크포스 발동을 발표했습니다. 뉴욕의 여성들은 ‘네일살롱에 가야 하나’는 주제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줍니다”라고 붙여 놓은 네일숍마저 나타났습니다.


‘맥도날드-한인 갈등’ 취재기자


기사 중 1부에서는 미국에서 네일숍이 가장 많은 뉴욕의 네일숍 종사자 임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이들 상당수는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 할뿐더러, 불법체류 이민자들이라, 노예계약에 가까운 초저임금과 주7일 근무 등 미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노동 착취를 당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착취의 결과 미국 평균 매니큐어 가격이 22달러인데,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뉴욕시의 평균가는 10달러에 그쳤습니다. 기사는 동네별, 인종별 네일 업계 내 계층화도 다루었습니다. 맨해튼 고급 네일숍의 80%가량이 한국인 소유이며, 한국계 네일 종업원들은 다른 인종보다 임금을 많이 받는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2부에서는 네일숍 종사자들의 건강 문제를 집중 보도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미용 용품에 들어가는 화학약품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전무하고 사전에 안전성 여부를 검사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 결과 뉴욕 네일숍에서는 유럽연합이 금지한 발암물질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여기에 장시간 노출된 노동자들은 각종 암과 자가면역질환, 유산과 기형아 출산 등 심각한 건강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탄탄한 취재와 문제의식 못지않게 특이했던 점은 기사 전문이 영어뿐만 아니라 한글과 중국어, 스페인어로도 게재됐다는 점입니다. 기사의 주인공인 네일숍 종사자 상당수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인데, 이는 기사의 주목도를 높이고 조회수를 끌어 올리는데 기여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웹 사이트에서 한글판 기사는 전체 웹 사이트를 통틀어 두 번째로 많이 읽은 기사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공익성과 가독성 모두가 탁월한 이 시리즈는 한국과 유독 인연이 많은 젊은 기자의 호기심에서 비롯됐습니다. 30대 초반의 여기자 사라 마슬린 니르는 얼마 전까지 뉴욕타임스의 공식 ‘노는 기자’였습니다. 인턴 시절부터 나이트클럽과 파티 등 뉴욕의 화려한 밤문화 취재로 두각을 보인 뒤, 정규직 기자로 채용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준수한 외모의 니르는 하룻밤에도 여러 곳의 파티에 참석하며 열심히 놀고 취재하는 기자로, 어떻게 보면 탐사보도와는 거리가 먼 기자였습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뒤 니르는 뉴욕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이 살기로 유명한 퀸즈 지역 담당, 서울의 언론사라면 ‘영등포구 담당 사회부 기자’로 발령받았습니다. 새 담당 지역을 맡은 지 얼마 안 돼 니르 기자는 한국계 노인들이 한인 밀집 지역 맥도날드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매장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기사는 한인 사회를 넘어 갈 곳 없이 배회하는 노년층의 문제로까지 불거지며 큰 화제가 됐습니다.


취재 13개월, 4개국어 보도


맥도날드 기사를 쓴 뒤 얼마 후 니르 기자는 한국식 찜질방에 들를 기회가 있었습니다. 손톱 단장을 하러 네일숍 코너를 찾아간 그는 직원에게서 “주7일 일하고, 평소에는 업소 안에서 쪽잠을 자다 일주일에 한 번 개인 숙소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장 이곳을 비롯해 몇 군데만 유사한 사례가 확인되더라도 이야깃거리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네일숍 취재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이슈가 드러났고 니르와 취재팀은 장장 13개월 동안 이 취재에 전념해 보도를 완성했습니다.


니르가 과거 취재했던 ‘맥도날드 한인 노인 사건’ 당시의 교훈이 네일숍 보도에도 적용됐습니다. 기사 보도 뒤 모교인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을 방문한 니르는 당시 한국인들이 뉴욕타임스 사이트에 몰려 왔고, 심지어 기사를 번역기로 돌려 공유하기도 했다고 기억하며, “이런 엄청난 한국발 트래픽을 뉴욕타임스 웹 사이트로 끌어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디어는 니르가 냈지만 회사 차원에서도 엄청난 지원을 했습니다. 본지 1면에 낼 기사가 무려 4일 전에 인터넷판에 노출됐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습니다. 신문은 번역가를 별도로 고용해 한국어와 스페인어, 중국어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용 콘텐츠로 번역한 다음 해당 지역 웹 독자들에게 적극 홍보했습니다. 에디터 엘리자베스 굿리지는 “한국 매체들은 우리가 자국어로 기사를 번역한 것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다”며 다국어 발간에 기인한 ‘입소문 마케팅’이 성공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동시에 이번 사례는, 그동안 해외 시장 진출을 타진해온 뉴욕타임스 국제화 전략에도 잘 부합합니다. 지면 광고 수입이 쪼그라들고 웹 광고 수입은 쉽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살길은 유료 독자인데, 해외에서 뉴욕타임스 사이트에 접속하는 고소득 고학력 독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에 뉴욕 타임스는 2012년 6월 중국어 웹 사이트를 선보이고, 2013년 외국 독자들을 겨냥한 별도 웹 사이트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를 출범시키며 합작사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을 해체하고 국제판 뉴욕타임스로 관련 조직을 통폐합했습니다.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습니다. 중국어판 웹 사이트는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기사로 중국 내 접속이 차단됐습니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개최국인 브라질 특수를 겨냥해 포르투갈어판 발행을 발표한 뒤 결정을 번복했으며, 세계 최대 영어 신문 시장인 인도에서는 IHT 시절 발행하던 종이신문 판매를 유통 비용을 이유로 포기한 상태입니다.


출처_뉴욕타임스 중국어판


해당 국가 문화 이해 필수


제임스 캐리 등 미디어 학자들은 뉴스 소비는 ‘정보 습득’ 외에도 다양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매일 아침 신문을 집어 드는 데에는 콘텐츠의 우수함뿐만 아니라 출근길 기차에서 남의 시선 피하기, 동료들과의 화젯거리 발굴, 폐지 활용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해당 국가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동떨어진 외국 매체는 제 아무리 우수한 콘텐츠라도 국경을 넘어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는 게 미디어 업계의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는 해외 시장에서 소정의 성공을 거둔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등 다른 ‘고급 매체’ 들의 뒤를 따라 꾸준히 타 언어권 진출을 엿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뉴욕타임스는 더이상 뉴욕의 신문이 아닙니다. 웹 사이트 방문자의 3분의 1이 외국에서 접속하고 이들은 유료 독자의 10%를 차지합니다. 특히 해외 독자들은 컴퓨터보다 모바일로 접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2012년 뉴욕타임스 아이폰용 앱을 다운로드한 순위 2, 4, 5위 국가는 영어권도 아닌 중국, 한국과 일본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해외 뉴스 시장에 ‘블루오션’이 있다고 믿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