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련 취재보도의 현실과 문제점

2015. 7. 20.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출처_영화 <뱅뱅클럽>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7월호>에 실린 MBC 논설위원/ 김현경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김정은 호칭은 어떻게 써야 하나요”

처음 북한 관련 뉴스 부서에 배정받은 기자가 흔히 하는 질문입니다. 국내 주요 일간지와 방송의 김정은 호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노동당 제1비서’ 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입니다.


“뭐라고 불러요” 호칭부터 고민


북한 헌법에 따르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우리의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직책입니다. 북한의 최고영도자(100조)로서 국방위원회뿐 아니라 국가의 전반 사업을 지도하며 비상사태, 전시상태 동원령을 선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103조). 하지만 북한 헌법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11조)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북한의 노동당 제1비서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보다 높은 최고직위가 되는 셈입니다. 호칭 문제는 ‘국가원수’와 북한의 ‘실질적 최고직위’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고려해야 될 사항이 또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 노동당을 카운터파트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도 노동당 총비서가 아닌 국가주석, 국방위원장이라는 국가직위로 상대해 왔다는 전통과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최고지도자의 호칭 문제에서 보듯 북한 담당 기자들은 당-국가 체제라는 낯선 시스템에서 벌어지는 북한의 정치 현상은 물론 중앙집권적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는 경제, 엄격한 통제와 편법이 어우러진 사회 현상, 그리고 남북관계 등을 다루게 됩니다.


북한 관련 취재 보도는 온갖 ‘설’속에 ‘아님 말고’식 기사 쓰기의 유혹에 끌리게 됩니다. 지난해에도 “김정은 건강 이상 원인이 에멘탈치즈 때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 사진출처_영국 데일리미러


시청자(독자)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 통일의 파트너이면서도 대치하고 있는 상대 북한에 대해 많은 정보와 쉬운 설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기자들에게 깊은 공부와 강한 내공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북한 문제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공통적으로 정보 접근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남북대화나 교류 등 기삿거리가 다양했습니다. 또 제한적으로나마 방북 취재도 가능했습니다. 물론 북한이 보여주는 곳만 가 볼 수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현장에서 얻는 정보의 의미를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 기자의 방북 취재는 사실상 봉쇄된 상황입니다.


기자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취재원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 강 건너 북한의 모습을 담고 북한을 오가는 사람들을 취재하거나 통신원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위성사진을 집중분석하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북한 주재원이나 여행객이 찍어오는 화면, 그들의 경험담도 취재대상입니다. 더 나아가 북한 내 취재원과 직간접으로 접촉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탈북민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단체를 만들어 정보를 생산합니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이나, 정서, 사회 변화, 시장 동향 등 유의미한 정보가 유통됩니다. 최근 종편채널에 북한 관련 프로그램이 늘어나다보니 북한 정보 시장이 제법 커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취재원과 이들이 전하는 정보의 신뢰도 문제가 심각한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북한 감시원으로 지목된 대한민국 통일부 간부 


2006년 제14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일입니다. 한 일본 TV방송에 출연한 탈북자 A씨가 상봉장 화면에 등장한 인물 중 두 명을 북한 감시원으로 지목했습니다. A씨는 감시원들이 특별 관리대상인 납북자 출신 이산가족을 통제하고 있다면서 그중 한 사람은 자신이 아는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일본 TV방송은 A씨가 지목한 인물에 붉은 동그라미까지 쳐가면서 집중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둘 중 한 사람은 이산가족 상봉 때 마다 나오는 북측의 실무 지원 인력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남한의 통일부 간부였습니다. 북한 감시원으로 지목된 통일부 간부의 황당한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A씨가 왜 거짓증언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믿을 만한 소식통’이 전하는 뉴스가 이후 거짓으로 밝혀지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득문(得聞)’한 것을 충분한 확인 없이 ‘전언’하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닙니다. 하지만 흔히 ‘지라시’로 폄하되는 수준의 ‘설’도 북한 보도 분야에서는 쉽게 뉴스화됩니다. 그 원인 중 일부는 북한의 폐쇄성 때문입니다. 북한은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뻔한 사실도 감추거나 부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북한 관련 소문이 몇 년 뒤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북한이 우리 언론사를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 고발할 리가 없지 않은가요? ‘아님 말고’ 식 기사의 유혹에 끌리게 됩니다.


신뢰도 높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언론사와 기자가 취재원의 신뢰도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합니다. 자신의 경력을 부풀린 일부 탈북민들의 증언을 더 신중히 검증해야 합니다. 이른바 소식통들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 권력 내부의 소문들에 대해 검증해야 할 책임은 언론사에 있습니다. 저널리즘 윤리나 취재의 기본에 대해 훈련받지 않은 그룹이 생산하는 정보라는 점이 더 깊이 고려돼야 할 것입니다. 과연 취재원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는가? 취재원은 그 정보를 기자에게 전달할 만큼 충분히 이해했는가? 사실과 의견을 구분했는가? 편견이나 이기적 동기가 얼마나 개입됐는가 이 과정에서 기자의 경험과 전문성은 정보의 신뢰도와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보의 편린을 모아 맥락을 구성할 수 있고, 반대로 그럴듯한 스토리에서 허구를 발견해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북한의 선전매체만 잘 읽어내도 행간에 담긴 허구와 진실, 허세와 고민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북한 담당 기자들이 대학원 과정 등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는 것은 반가운 현상입니다.


죄수번호를 받은 기자


북한 담당 기자들 앞에 놓인 또 다른 숙제는 북한과 남북관계의 특수성입니다. 남북은 여전히 서로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군사적 대치와 충돌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3대 세습과 피의 숙청이 현실화되면서 북한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기자들도 이념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2013년 북한의 인터넷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해킹 당하면서 이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한 북한 담당 기자들의 신상 정보가 털렸습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는 그들에게 ‘죄수번호’까지 붙이며 종북 좌파 기자로 매도했습니다. “북측의 주장을 들여다보고 분석해야 할 취재 원천”으로 활용하는 것도 문제 삼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입니다. 기자들의 부담과 고민은 커집니다. 북한 언론 매체의 인터넷 사이트는 차단돼 있고, 취재를 위해 우회망으로 접근해 자료를 보관하는 일도 부담스럽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은 어떻게 발휘되어야 하는가 심층 분석보다 흥미 위주의 기사를 양산하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는 최근 북한 이슈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시청자(독자)들도 점점 복잡한 분석 보다는 흥미 위주의 기사,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집중합니다. 언론사는 동북아 정세를 위협하는 미·중 갈등이나, 북한 핵 능력 강화, 주변국의 대북 정책이나 이해득실, 미래 전략에 대한 깊은 분석보다는 잔인한 처형방법, 숙청, 김정은의 가정사, 심지어 그의 헤어스타일과 건강 등에 관심을 보입니다. 스마트폰 뉴스 시대에는 더 화끈한 한 줄 제목과 짧은 기사가 각광받습니다. 전문기자들의 설 자리도 점점 좁아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북한 관련 뉴스는 전문성과 정보 접근의 어려움, 확인되지 않는 소문,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그로 인한 정파성, 정체성 등이 복잡하게 얽혀 길을 잃고 있는 듯합니다.


정부와 주요 언론사들은 2015년 벽두부터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통일시대를 개막하자고 강조했습니다. 통일 기반을 다지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이벤트’와 ‘구호’도 화려합니다. 통일시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통일 지향의 언론입니다. 북한 문제, 남북관계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되 더 많이 검증하고, 더 깊이 생각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당장의 관심만이 아닌 한반도의 미래도 다루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언론인들에게는 더 긴 호흡과 멀리 내다보는 안목, 부단한 노력과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