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가벼운 형식으로 뉴스와 오락 사이 줄타기

2015. 8. 24. 13:57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8월호>에 실린 공주대 영상학과 교수 / 배진아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환경 속에서 방송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장르,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는 시청자들의 관심과 호응을 기반으로 생존해야 하는 방송의 속성입니다. 방송이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장르 결합, 장르 파괴, 포맷의 생성·진화·소멸은 방송 콘텐츠의 발전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그동안 창의적이고 새로운 포맷들이 등장했고, 시청자들에게 유익함과 흥미,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전달하는 좋은 포맷들이 개발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장르가 결합되는 과정에서 각 장르 본연의 기능이 사라지고 공허한 웃음만 남아 장르 고유의 본질이 훼손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됩니다. 새로운 방송 포맷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특히 여러 장르의 포맷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각 장르가 갖는 역할과 기능,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사와 예능의 만남


최근 방송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시사와 예능 장르가 결합된 형태의 프로그램들입니다.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 쉬운 시사정보에 예능 장르의 흥미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방식이 적극 도입되고 있습니다. 시사와 예능 장르가 결합하는 방식은 주로 뉴스 및 시사정보를 내용으로 다루면서 예능 장르의 형식을 빌려오는 것입니다. 뉴스 및 시사정보를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이 예능 포맷을 차용하는 방식은 다양한데, 버라이어티쇼의 형식을 도입한 뉴스쇼 포맷,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용한 포맷, 토크쇼와 결합한 시사토크 포맷 등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국민소통 버라이어티 뉴스왕’(KBS, 2008~2009), ‘시사콘서트 열광’(tvN, 2010), ‘컬투의 베란다쇼’(MBC, 2013~2014) 등은 버라이어티쇼의 포맷으로 시사정보를 전달하려는 시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포맷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졌습니다. 버라이어티쇼의 포맷을 도입한 시사 뉴스쇼들은 이처럼 성공하지 못했지만 종편채널을 중심으로 조금은 단순화된 형태의 시사 버라이어티쇼 포맷이 남아 있습니다. 신문 기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사 이슈를 다루는 ‘신문 이야기 돌직구 쇼+’(채널A, 2013~)가 그 사례입니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용한 포맷으로는 ‘리얼스토리 눈’(MBC, 2014~)과 ‘궁금한 이야기 Y’(SBS, 2009~), ‘SBS 뉴스토리’(SBS, 2014~) 등이 있습니다. 사건 사고를 재구성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의 프로그램으로서 사건 재연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이 더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사교양 장르에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용하여 극적효과를 높이고 좀 더 쉽고 흥미롭게 사건 사고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제작 방식입니다.


최근 종편채널을 중심으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시사 프로그램은 이른바 정치토크 혹은 시사토크로 불리는 프로그램들입니다. 시사 이슈를 선정하여 관련된 사안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전문가 등이 스튜디오에 출연하여 해당 이슈에 대해 해설과 논평을 하는 포맷으로서, 뉴스와 토크쇼를 결합시킨 방식입니다. ‘장성민의 시사탱크’(TV조선, 2012~), ‘직언직설’(채널A, 2012~), ‘쾌도난마’(채널A, 2011~)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썰전’(jtbc, 2013~)과 ‘강적들’(TV조선, 2013~) 역시 이와 비슷하게 시사 장르와 토크쇼가 결합된 방식이지만, 토크쇼의 속성이 더 크게 반영된 포맷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원탁 형식의 단순한 무대에 출연자들이 둘러앉아 특정 이슈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격식 없이 풀어내는 방식을 적용합니다. 특히 시사 전문가들뿐 아니라 비전문가들과 연예인 등이 다수 출연하여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시사평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제작비도 아끼고 시청자도 잡고


이처럼 시사정보 콘텐츠에서 장르 결합 및 장르 파괴가 적극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송사들의 노력의 결과라는 점입니다. 기존의 정통 시사정보 프로그램은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정형화된 스튜디오에 기자와 평론가, 전문가 등이 넥타이를 매고 등장하여 어려운 이야기들을 그들만의 전문용어로 풀어가는 형식이 일반적입니다. 매체와 채널이 다양해지는 방송 환경 속에서 이러한 정형화된 형태의 시사정보 프로그램으로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우며, 좀 더 적극적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예능 장르의 흥미와 재미 요소들을 차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 제작의 효율성을 들 수 있습니다. 장르 파괴 시사 프로그램들은 주로 5~6명의 출연자들이 등장하며 스튜디오 안에서 제작됩니다. 별도의 제작비가 요구되는 요소들이 없기 때문에 제작비가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제작 과정이 간편하다는 장점을 갖습니다. 셋째, 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듯이 격식을 차리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따라서 시청자 확보에 용이합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종편을 중심으로 적극 편성되고 있는 시사토크 포맷의 경우 작은 규모이지만 충성적인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이 이러한 장르 파괴 시사 프로그램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사 이슈에 대해 연성화된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기존의 딱딱한 시사정보 프로그램과 달리 시청자들이 좀 더 친근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오락 장르와 같이 즐겁게 시간을 때우는 프로그램이지만, 방송을 보고 난 이후 시사 이슈에 대해 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됐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편채널에서 주로 방송하고 있는 시사토크 프로그램들은 특히 사람들의 주목을 끌 만한 화젯거리들을 양산하기 때문에 대화 소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입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의 장르 파괴는 종편채널의 적극적 수용에 힘입어 이제 일반적 현상이 되고 있습니다. 방송사에게는 단순한 제작 방식과 저렴한 제작비로 일정 규모의 시청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며,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친근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시사 이슈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긍정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의 장르 결합, 장르 파괴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문제들을 더 많이 유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긍정보다 부정적 효과 더 커


가장 큰 문제는 시사 프로그램에 요구되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감성적이고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예능적인 분위기에서 즐겁게 웃고 떠드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면 시사 이슈를 다양한 각도에서 냉정하고 차분하게 돌아보고 판단할 여유를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출연자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시사 버라이어티쇼나 시사 토크쇼의 경우 출연자의 캐릭터와 입담에 의존해서 프로그램의 개성과 색깔이 정해지는 포맷을 추구합니다. 그러다보니 방송사들은 시청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스타 이야기꾼을 물색하게 되며, 이슈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출연자의 상품성이 더 중요한 캐스팅 기준이 됩니다. 출연자들은 이러한 방송사의 캐스팅 의도에 부응하듯 방송이 지켜야 할 품위의 선을 넘나들면서 아슬아슬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정치 및 시사 이슈에 대해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비평을 하기보다는 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거침없이 개인적인 사견을 풀어 놓습니다. 세 번째는 정치적 편파성입니다. 예능 포맷이 도입되면서 프로그램 안에서 정치적 균형을 갖출 수 있는 형식적 장치들(예를 들면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진 패널이 고루 출연하는 것, 출연자들에게 동등한 발언 기회를 부여하는 것, 사회자가 정치적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 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이에 따라 정치적으로 편향된 내용이 무분별하게 방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밖에 예능장르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선정적 형식과 자극적 내용의 자막이 여과 없이 적용됨으로써 전반적인 프로그램의 품격과 품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장르 파괴적인 시도들은 새로운 장르의 시사·예능 포맷을 개발하는 데 긍정적인 기여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독창성과 실험성을 구현하기보다는 적은 제작비로 쉽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근시안적인 방편으로 개발된 포맷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시사와 예능 장르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예능의 껍데기만 남고 방송 저널리즘의 본질적 기능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기존의 정통 시사 프로그램들이 품격을 갖추면서 공적인 매체에 걸맞은 방식으로 점잖게 시사 이슈들을 풀어나갔다면, 장르를 넘나드는 새로운 포맷의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사적인 방식의 신변잡기, 수다, 심지어 술자리에서나 있을법한 화법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슈의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기보다는 주변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며,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사안을 분석하기보다는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시장지향적 저널리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방송사들은 저렴한 제작비와 시청자 확보 등 당장의 근시안적인 성과에 급급하기보다는 방송 저널리즘의 가치 구현을통해 좀 더 장기적으로 시청자들의 신뢰를 쌓고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