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한국인의 삶 반영한 ‘푸드 커뮤니케이션’

2015. 8. 31.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8월호>에 실린 한양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 / 김수철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먹방, 쿡방이 대세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먹방, 쿡방이 나타나고 있을까요? 가장 간단하고 직접적인 대답은 높은 시청률입니다. 방송 시장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방송 채널 간의 경쟁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화됐습니다. 사실 과거 요리, 음식 프로그램은 방송에서 주로 정보 전달을 위한 교양 프로그램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고 편성 시간대도 주변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주변 아이템에 지나지 않았던 요리, 음식 프로그램이 지금은 많은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 소재가 됐고 주요 방송사들은 앞다투어 이들을 주요 시청 시간대에 편성하고 있습니다.


시청률 효자 아이템이 된 음식


과거 예능 피디들 사이에서 음식이라는 소재가 시청률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금기시 되는 아이템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현재의 먹방, 쿡방 열풍은 예상치 못한 변화입니다. 또한 먹방, 쿡방 프로그램의 유행은 우리 사회에서 음식, 요리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반영합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음식과 요리에 대한 관심은 몇몇 음식 평론가, 요리 연구가와 같은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SNS나 기존의 전통 미디어를 통해서 요리, 음식, 맛집, 식재료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 이미지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다양한 해외여행의 경험으로부터 외국의 음식, 식재료, 식습관, 식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푸디들(foodies)을 적지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2015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문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또한 어떻게 먹고 있는지의 문제는 언제나 특정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과 연관됩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종종 전문가들의 담론에서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미디어를 통해서도 불거집니다. ‘백종원 신드롬’이 그것입니다.


백종원의 적극적이며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은 많은 젊은 층을 열광시켰다. 백종원 신드롬의 시작을 알렸던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


백종원-새로운 취향의 발견


백종원 신드롬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한국 사회 대중문화 모습 중의 하나는 취향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잉여 아마추어 문화’의 존재입니다. 물론 백종원 신드롬의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다른 사회, 문화적 특징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제 눈에 띈 것은 전문가적 취향과 대립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잉여 아마추어 문화입니다. 백종원이라는 인물이 대표하는 것, 백종원 레시피가 대표하는 것을 둘러싼 취향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은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칼럼이었습니다. “백종원 씨는 전형적인 외식 사업가다. 그가 보여주는 음식은 모두 외식업소 레시피를 따른 것이다.” 백종원 레시피에 대한 황교익의 냉정한(?) 평가가 호들갑스런 일부 미디어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 취향 논란은 이후 백종원 본인의 차분한 반응과는 상관없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황교익의 평가는 소위 고메이(gourmet) 푸드, 혹은 큐진(cuisine)이라고 표현되는 ‘고급진’ 음식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지고 또한 이런 음식에 대한 소비, 요리 능력도 없는 잉여 초보 푸디들에게는 결코 편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는 권위적인 한 전문가의 콧대 높은 코멘트(혹은 디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유명 요리 학교에서 공부하고 유명 레스토랑 셰프로서 화려한 경력을 가진 셰프가 만든 큐진이 값싸고 맛있고, 소위 가성비 높은 음식을 찾는 (그리고 찾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일반 서민들, 음식 초보들의 평범하고 저렴한 취향과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곤궁한 처지들이 서로 오버랩되기도 하고 대립됐습니다. 음식 취향을 둘러싼 문화정치 안에는 때때로 파스타 같은 유럽 음식만을 좋아하고 외국식재료, 와인 등에 대한 해박한 (혹은 그런 척하는) 지식과 세련된 (혹은 그런 척하는) 취향을 은근히 자랑하는 된장녀가 타깃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음식, 음식 문화에 대한 오랜 현장 경험과 보기 드문 지식을 쌓아온 음식 전문가는 마치 유럽의 고급스런 큐진에만 능숙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으로 무장한 잘난 척하는 전문가로 탈바꿈되기도 합니다.



백종원 신드롬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런 아마추어 문화의 존재는 뚜렷합니다. 예를 들어, 백종원 신드롬의 시작을 알렸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백종원은 소통에 매우 적극적이며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고 이에 수많은 젊은 층의 ‘마리텔’ 시청자들, 네티즌들, 아마추어 푸디들이 열광했습니다. 백종원 신드롬 이면에 존재하는 잉여 아마추어 문화에는 백종원 신드롬을 불러온 우리 사회 환경에 주목하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원재료가 아닌 대체재료, 속성 조리법 등으로 구성된 백종원의 레시피는 초과노동에 지치고 불황에 허덕이는 ‘저녁이 없는’ 삶을 힘겹게 영위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잘 반영한다는 논평이 그것입니다. 여기에는 요리, 음식 이야기가 한 사회의 정치경제, 계급적 불평등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매우 정치적인 문제임을 간파하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음식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 콘텐츠


문화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는 음식은 물질성과 상징성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음식은 사실 매일매일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와서 우리 몸의 일부가 되는 외부의 물질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음식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높은 상징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은 김치를 먹어야하고 인도 사람은 커리를 먹어야 하고 영국 사람은 차를 마시지 않으면 오후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음식은 민족 정체성, 지역을 가장 잘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들 중의 하나입니다. 음식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대표적인 학술 연구중의 하나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취향의 사회학’일 것입니다. 이 프랑스의 사회학자는 ‘취향은 구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분류 체계를 다시 분류하는 게 취향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조와 개인, 주관과 객관의 통합을 지향했던 그의 사회학은 취향을 무엇보다도 계급과 연관지었습니다. 부르디외의 사회학에 따르면 계급에 따라 선호하는 음식의 종류, 평소에 끼니로 먹는 음식에 대한 분류가 가능합니다. 이러한 취향은 사회구조, 계급 관계를 배태하는 운명적 선택이 되어 내 몸의 일부가 됩니다. 따라서 부르디외에게 개인의 몸은 계급적 취향이라는 사회구조가 가장 깊숙이 물질화되어 있는 장소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음식을 어떠한 방식으로 어떠한 환경에서 먹는지는 부르디외의 취향의 사회학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복잡한 측면이 있습니다. 부르디외가 밝혀냈듯이 음식을 먹는 행위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매우 개인적이고 본능적이며 생물학적인 행위이기도 하고 여기에 우리의 계급적 위치에 따라 결정된 취향이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매우 사회적인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우리의 식습관은 이러한 논리처럼 명쾌하지 않습니다. 



점점 다양해지는 푸드 커뮤니케이션 레시피


뒤집어 보면, 우리의 이 바보 같은 식습관은 어쩌면 너무 뻣뻣한 취향의 사회학 그리고 음식에 관한 수많은 클리셰와 일반 상식들이 만들어 놓은 우리의 몸, 입맛, 취향에 대한 논의가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고급진 입맛-싸구려 입맛, 전통 한국의 맛-외국의 맛 사이의 대립이 절대적으로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음식이란 높은 추상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에 때로는 전문 지식, 전통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변치 않고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고 내 몸 안에서 매일매일 벌어지는 실천이자 사건을 통해서 변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푸드 커뮤니케이션 레시피의 비결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비결의 핵심은 음식, 먹는다는 것은 기존의 어떤 것을 확인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늘 주어진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때로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서서히 늘 변하는 그런 것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음식, 우리가 끼니로서 먹고 있는 것들, 음식을 준비하는 방식, 특정 향미에 대한 우리의 선호, 음식을 소비하는 방식, 음식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체계적인 시스템과 인프라에 대한 활발한 논의-백종원 신드롬에서 이러한 푸드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확대됐으면한다-는 푸드 커뮤니케이션 레시피의 필수적인 주재료들입니다. 


여기에 음식, 요리에 관련된 수많은 편견, 전통, 상식, 클리셰들의 전제를 되묻고 도전하고자 하는 태도는 푸드 커뮤니케이션의 맛과 향을 더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특정 시각과 입장-그것이 로컬푸드건, 슬로우푸드건, 비건주의(veganism)이건, 전통 한식이건-을 절대화하고 신성시하는 음식 근본주의는 푸드 커뮤니케이션 레시피에 적절치 못한 재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음식 문화의 숙성과 음식 비평의 풍부한 향미를 돋우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