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년 된 글쟁이’를 바꾼 힘-창조적 자신감

2015. 9. 14.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9월호>에 실린 매일경제신문 모바일부 기자 / 손재권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지난 5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2015 세계신문협회총회 현장. 개막 1일차 기조연설자로 마틴 배런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과 스티븐 힐스 워싱턴포스트 사장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마틴 배런 국장은 “디지털화는 거부할 수 없는 핵심 이슈다. 뉴스룸도 기술 변화에 맞춰서 변화해야 한다. 디지털 뉴스 수익률 성장이 폭발적이기 때문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스티븐 힐스 사장도 “제프 베조스가 인수한 뒤 그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우리는 저널리즘이 있다. 기술 회사와 경쟁은 어렵다. 우리가 디지털 기술로 전환하는 데 베조스가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제프 베조스 효과


사실 올해 세계신문협회 총회의 주인공으로 예정된 사람은 뉴욕타임스 아서 설즈버거 회장이었습니다. 지난해 ‘혁신보고서’를 낸 이후 글로벌 미디어 업계에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설즈버거 회장은 ‘혁신보고서 그 이후’라는 제목으로 발표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막 첫날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과 사장의 ‘디지털 전환 성과’에 대한 자신에 찬 발언 이후 이 자리에 모인 신문기자, 발행인들은 워싱턴포스트의 성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온라인 독자가 65% 늘었고 방문자는 100% 늘었다고 공개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6월에는 홈페이지 순방문자 수가 5,540만 명으로 워싱턴포스트 역사상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분기에는 2,978만 명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모바일버전 방문자 수도 같은 기간 1,673만 명에서 3,238만명으로 93%나 늘었으며 독자층도 19~35세 밀레니엄 세대 비중이 37%에 달할 정도로 젊어졌습니다. 영향력도 빠르게 회복, 올해 퓰리처상 국내보도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제프 베조스 / 출처_전자신문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13년 8월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에게 매각돼 충격을 줬습니다. 매각 가격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겨우 2억 5,000만 달러(약 2,90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136년 역사의 워싱턴포스트 가치가 2,900억 원 정도라는 사실에 미디어 업계는 놀랐습니다. 지난 2년간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역시 제프 베조스입니다. 기자도, 편집인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주인만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오너의 지시에 의해 제프 베조스가 편집국이나 회사 경영에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것일까요? 제프 베조스는 공개적으로 “일절 편집국 논조나 편집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조스 효과’ ‘베조스매직’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변화에의 자신감’또는 ‘창조적 자신감’입니다. 


디지털 전환은 신문사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독자가 디지털, 모바일로 뉴스를 읽고 있는 현실에서 ‘종이’란 디바이스가 충분히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디지털 변신은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와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전환이란 명제가 아니라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입니다. 그리고 왜해야 하는가를 내부 임직원들에게 설득해야 합니다. 디지털은 신문사 그리고 기자들이 잘 모르는 영역입니다. 디지털에 대해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지 디지털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디지털 전환이 실패한다면 상처는 되돌리기 힘들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언론사들이 ‘디지털 전환은 숙명’이고 ‘모바일이 미래’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행은 매우 어렵습니다. 워싱턴포스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프 베조스가 인수하기 전에도 워싱턴포스트가 디지털 전환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2009년부터 종이신문 체제와 인터넷, 모바일을 통합한 뉴스룸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아이폰, 아이패드 뉴스 앱도 가장 선도적으로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적자와 감원 소식뿐이었습니다.



“1만 년 투자하겠다”는 자신감


이 같은 워싱턴포스트의 상황에서 제프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디지털 전환의 자신감을 안겨줬습니다. 디지털에의 과감한 투자와 변화가 미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자신감과 확신입니다. 


물론 베조스는 그만큼 투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제프 베조스가 인수한 이후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공격적으로 채용했습니다. 베조스는 136년의 워싱턴포스트라는 낡은 이미지 때문에 일하길 꺼려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실리콘밸리가 아닌 수도 워싱턴으로 향하게 할 수 있는 키워드였습니다. 한마디로 인재를 모을 수 있게 하고 신문사에 가서도 구글이나 아마존처럼 코딩을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했습니다. 


기자의 평균 연봉은 5만 2,000달러지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평균 7만 8,000달러를 받습니다. 신문사에서 기자의 위치와 위상이 가장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신문을 만들어내는 핵심 인재가 바로 기자입니다. 하지만 신문사 내 기자보다 더 연봉을 많이 받는 위치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존재하게된 것입니다. 개발과 설계를 위해 미디어 스타트업이 많은 뉴욕에도 사무실을 내는가 하면 워싱턴 D.C. 입성을 꺼려하는 젊은 엔지니어를 위해 버지니아에도 사무실을 개설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모아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인력만 255명에 달합니다. 스마트폰, 태블릿, 웹 분야뿐만 아니라 종이 인쇄, 인사, 영업, 광고 전 부분에서 엔지니어를 채용했습니다.


출처_워싱턴 포스트 홈페이지


언론사를 넘어 플랫폼 회사로


이 같은 변화는 기사 작성, 즉 저널리즘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서는 기사를 발제할 때부터 기자와 엔지니어가 나란히 앉아서 일을 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기사 발제 단계부터 이 기사가 어떻게 디지털, 모바일에서 보여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결과물은 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종이신문에서만 발행한다는 마인드로 작성하는 것과 어떻게 독자를 유입하고 소통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은 시작부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때론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광고 담당자와도 협업해야 콘텐츠(저널리즘)와 전달(전송)이 일치할 수 있습니다.


변화에의 자신감으로 워싱턴포스트는 이제 ‘신문사’가 아닌 ‘디지털 회사’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언론사를 넘어 플랫폼 회사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다시 ‘쿨’한 회사로 바뀌게 된 것은 주인이 바뀌어서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서도 아닙니다. 물론 제프 베조스 이후에 비전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길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몰랐던 것은 비전이 아니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이었으며 부족했던 것은 돈(투자)이 아니라 ‘변화에의 자신감’이었습니다. 베조스는 이 두 가지를 해결해줄 수 있는 카드였고 그들은 점차 해내고 있다.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으니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하고 디지털 전환에 성공해주세요”란 메시지를 던졌을 뿐인데 대규모 투자 없이도 움직이고 변신에 능동적으로 대처했습니다.


한국 언론에 부족한 것은 ‘디지털’도 아니고 ‘오너’도 아닙니다. 변화해야만 성공하며 방향은 디지털 뿐이라는 신념과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네이버 때문에 안 된다는 변명과 패배주의를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실행’만이 한국판 베조스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