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레슬러, 헐크 호건! 명예 회복을 위해 링에 다시 오른다!

2015. 10. 1.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프로레슬링 하면 헐크 호건이지!


전 국민이 지지하던 한국 프로레슬링은 1980년대에 들어서며 프로 야구, 축구, 씨름의 등장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레슬링은 순간 "무주공산"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에 영국 락 밴드가 로카빌리와 락앤롤 장르가 잠시 주춤한 사이 미국에 연이어 진출해 음악 시장을 석권했던 일을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라고 부릅니다. 1980년대 후반 프로레슬링 무주공산이던 한국에 '세계레슬링협회(WWF) 인베이전'이 일어납니다. 


WWF의 흥행 원인은 비디오(VCR)의 보급이 있었습니다. 기계와 함께 늘어난 대여점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미국의 WWF 비디오가 전세계에 붐이 일었고, 자막도 대충 만들기 쉽고 , 분량은 얼마든지 있어, 무주공산은 완전히 미국 수퍼스타에게 점령당해버렸지요.


WWF 시절의 헐크 호건


하지만 어설프게 만든 자막에, 별다른 정보원도 없다보니, 수퍼스타에 대한 정보는 정확하게 전달된 게 없고 죄다 민화나 전설 마냥 이상한 소문만 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여러분에게 1980년 대 에서부터 90년 대 프로레슬링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면들을 프로레슬링 팬 경력 25년인 제가 여러분께 전달해드릴 생각입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배경이나 문화 코드를 함께 읽어볼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테리 볼레아에서 이치반을 넘어 헐크 호건이 되기까지


프로레슬러로 성공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1) 화려한 언변

2) 격렬한 감정표현

이 두 조건은 관객의 감정을 북돋기 위해서입니다. 잘생기거나 근육질이면 더욱 좋지요.


헐크 호건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국의 상징이자, 프로레슬러, 영화배우,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특징적인 외모와 거대한 근육, 스타성 강한 성격으로 팬을 매료시켜왔지요. 화려한 언변과 격렬한 감정표현을 갖추고 있었고, 대머리지만 잘생긴 외모에 거구의 근육질로 키가 2미터에 알통이 24인치나 되었죠! 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했습니다. 


헐크 호건이 “헐크”가 된 데에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지역 토크쇼에서 ‘원조 헐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두 얼굴의 사나이(The Incredible Hulk)>의 초록 거인 ‘헐크’ 역을 맡은 보디빌더, 루 페리뇨였습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그를 왜소하게 보이게 만들 만큼, 헐크 호건의 체격은 커다랬습니다. 그 날로 테리 “더 헐크” 볼더라는 별명을 붙이게 되고, 헐크 호건이 되었습니다.


‘테리 “더 헐크” 볼더’ 의 링네임 시절의 헐크호건


1953년 생인 그의 본명은 테리 볼레아로, 언변이 뛰어난 두 수퍼스타를 보며 자연스럽게 프로레슬러가 될 꿈을 키웠습니다. 한명은 보디빌더 출신으로 헐크 호건의 모델이 되었던 악역 ‘수퍼스타 빌리 그래험’과 그의 라이벌이자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유연한 몸놀림과 카리스마로 원조 ‘인민의 챔피언(people’s champion)’이라 불린 ‘더스티 로즈’입니다. 두 선수의 요소를 헐크 호건은 모두 갖추었지요. 테리는 보디빌딩과 지역 록 밴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다, 우연한 기회로 히로 마츠다의 트레이닝을 받게 됩니다. 유명한 트레이너이자 가혹한 훈련으로 유명한 그의 훈련을 받다가 테리는 첫 날 부터 다리가 부러지고 맙니다. 그런데 치료를 끝내고 다시 도장에 찾아오자, 근성에 감복한 히로가 제대로 훈련을 시켜줍니다. 그래서 헐크 호건은 미국에서는 미국식 쇼맨 스타일을 구사하는 한편 일본에서는 히로 마츠다에게 배운 데로 관절기나 서브미션을 사용하는 격투기스러운 스트롱 스타일을 구사합니다. 이런 능숙함이 스타가 되게 한 비결이지요.


영화 <록키 3> 에 “썬더 립스” 역으로 출연한 헐크 호건


1977년 중순 데뷔 한 이래, 헐크 호건은 1979~80년 동안 WWF의 스타 선수가 되었고, 영화 <록키 3>에 출연하기 위해 탈단 후 1983년까지 메이저 단체인 AWA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약하며 수퍼스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립니다. 1983년 WWE에 복귀하면서 1985년까지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오가며, 30대 초반의 나이로 전 세계 프로레슬링의 정점에 섭니다. 우리가 본 비디오 테입 속 헐크 호건은 1988~1992년 사이 최전성기의 헐크 호건이지요. 이후 헐크 호건은 라이벌 단체 WCW로 이적하고, WWE가 된 WWF로 돌아왔다 TNA로 갔다, 다시 돌아와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됩니다.


아무리 헐크 호건이라도 인종차별은 안 돼


그러나 헐크 호건의 삶은 흔들립니다. 단란한 가족과 금슬을 과시했었는데, 알고보니 사치와 과소비에, 아들은 아버지 차를 몰래 타고 나갔다가 사고를 내 조수석의 친구를 죽여 복역 중이고, 딸은 가수가 되겠다고 하다 3류 가수로 불발하고, 심지어 딸의 학교 친구랑 오랫동안 불륜 관계에 오랜 친구의 아내와 불륜을 벌이던 현장이 동영상으로 유출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이혼까지 당해 재산을 다 날렸고, 아내도 아들 친구와 바람을 피웠습니다. 헐크 호건도 딸 뻘인 여자와 결혼해 빈축을 샀습니다.


2014년 두 번째 부인 제니퍼 맥다니엘과 함께 한 헐크 호건


이중 가장 최악은, 2015년 7월 벌어졌습니다. 과거 유출된 불륜 현장 동영상에서 그가 딸이 흑인과 관계를 가진다며 절대 해서는 안되는 흑인 비하 용어인 “nigger”를 연발했다는 사실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쓰는 것도 금기여서, 완곡하게 N-word라고 표현할 정도의 말입니다. 이 발언을 이유로 그는 WWE와 계약이 해지되었고, 영구퇴출되어 명예의 전당 헌액 취소에 모든 상품도 판매가 중지되었습니다. 헐크 호건과 함께 성장해왔고, 그로 상징되는 WWE가 그를 완전히 지워버린 것입니다.


과연 그가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요? 미지수입니다. 그의 몰락은 자업자득이거든요. 이제 환갑이 넘은 그는 다시 프로레슬링에 나섰습니다. 추억으로 응원하기에 그는 너무 변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