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을 찾아 카페로 향하는 사람들

2015. 10. 19.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아메리카노 한 잔에 공간을 빌리세요!


  

"멀쩡한 자기 방 나두고 왜 카페에서 저러는 거야?" 하고 불만을 투덜이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고 주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자기 방이 없어서 카페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상당수의 사람이 "자기만의 방"이 없어서 카페로 나옵니다.


(왼) 여성의 자유를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 버지니아 울프. / (오) 파리에서 명작을 집필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카페를 자주 방문했다.



부동산과 집값이 비싸고, 소득이 낮고 같은 누구나 다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니까요. 사무실이든 작업실이든 독서실이든 회의실이든, 무언가 일을 진행하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공간이 너무 비쌉니다. 고로 카페로 갑니다. 과거 1990년대 일본에서도 높은 집값과 좁은 공간 때문에 카페를 "거실"이나 "응접실" 삼아 사교적인 행위를 하는 현상이 일어났었습니다. 그 전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카페를 작업실 삼아 일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 파리에 "잃어버린 세대(the lost generation)"의 예술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거트루트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같은 사람들도 카페나 비스트로에 모여 교류를 나누고 작업을 했습니다.

 

카페는 "세미 퍼블릭"한 공간?

그러나 이 논리에는 한 가지 빠진 근거가 있습니다. 왜 굳이 카페인가? 커피에는 특별한 마력이라도 있어서 독서실이나 고깃집에서는 얻을 수 없는 편리함이 있는 걸까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카페가 독서실처럼 공간을 팔면서도 동시에 "세미 퍼블릭"한 공간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세미 퍼블릭은 일본의 연극 연출가히라타 오리자가 만든 조어로, 연극의 배경이 되기 좋은 공간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도 있고, 사람들의 입출입이 자유로운 "반쯤 열린 공간"이 세미 퍼블릭한 공간입니다.


공간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독서실"과 "룸 카페"가 있습니다. 둘 다 카페처럼 공간을 제공하지만 서비스의 목적이 직접적으로 공간 제공에 있기에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점이 있습니다.


독서실은 "세미 프라이빗"한 공간입니다. 독서실은 여러 사람이 모여있지만 마치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양 자기 만의 일에 몰두합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해서 사담을 나누는 사교행위나 학습과 관계가 없는 다른 행위가 제한됩니다. 보통 미리 이용기간을 정해 정액제로 사용하기에 급할 때 어디서나 이용하기도 어렵습니다. 한편 룸 카페는 "프라이빗"한 공간 대여 서비스로, 각종 편의시설과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사실상 경량화 된 호텔 서비스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엄격하게 입출입 시간을 체크해 요금을 받습니다.

 

카페의 비밀은 카페가 어디까지나 음료를 제공하는 곳이고 공간은 부수적이라는 점에 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카페는 공간이용의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실제로는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 사용한다 하더라도, 표면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음료를 제공하는 곳이고 공간 이용은 암묵적이고 부수적입니다. 대신 그 만큼 퍼블릭한 공간이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이용가능합니다. 음료 가격에는 공간 입장 및 이용료가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고양이 카페 같은 특수한 카페도 마찬가지로 입장 및 이용료를 대신해 음료를 구입해야 합니다. "테이크 아웃"은 공간을 이용하지 않기에, 가격이 더 싸집니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모든 공간을 사유화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가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우리는 어느 공간에서도 마음 놓고 쉴 수 없습니다. 카페는 세미 퍼블릭한 공간이라 입출입도 사용도 자유롭습니다. 따라서 급한 일이 있을 때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습니다. 카페는 모두를 위한 "자기만의 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시사오늘)

  

"자기만의 방"? "모두의 방"!

최근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카페가 공공장소임을 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굴거나, 카페 이용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몇 시간 동안 아메리카노 한 잔만 시켜놓고 앉아서 전기를 마구 훔쳐가는 전기도둑.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수다쟁이. 무리한 요구를 해대며 손님의 권리만 주장하는 진상손님. 다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책이며 프린트를 잔뜩 늘어놓고 연구실을 차려놓은 척척박사. 보험 판매를 하는 사람. 이어폰 없이 영화 보는 사람. 이 모두가 카페 공간 이용이 부수적이라는 점과 세미 퍼블릭한 공간이라는 점을 악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카페는 "자기만의 방"을 저렴하게 제공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퍼블릭한 "모두의 방"이기도 합니다. 카페가 쾌적한 공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카페를 위해 재주문 없이 너무 오래 앉아 있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카페도 땅 파먹고 장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