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뉴스 집착 벗어나면 뉴스의 미래가 보인다

2015. 10. 19.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10월호>에 실린 대구대 박사후연구원 진민정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왜곡되고 뒤틀린 보도들로 인해 ‘기레기’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자성을 요구했던 수많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보도 행태는 여전하다는 평가입니다. 인터넷 언론사의 난립, SNS의 확산, 종편의 등장 등으로 언론의 경쟁이 더욱 심화되면서 조회 수를 높이거나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도를 넘는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김치찌개’가 특종이 되는 세상

오래 전부터 트래픽 지상주의에 빠진 한국의 인터넷신문들은 통신사가 배포하는 뉴스를 손쉽게 편집하거나, 실시간 인기 검색어 중심의 가십성 어뷰징 기사를 양산해왔고, 포털을 통해 유인되는 독자를 상대로 미끼 제목 낚시질에 매진해 왔습니다. 탈미디어적인 뉴스 소비 흐름 속에서 디지털 환경에 제대 로 적응하지 못한 대다수의 주류 언론들 역시 여타의 군소 뉴스 사이트와 다름없는 행태를 보여왔습니다. 언론사들이 속보 경쟁에 내몰리면서 타사의 기사를 베끼는 행위 역시 늘어났습니다. ‘3분 특종’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단독 보도나 특종 보도가 포털 사이트에 기생하는 수많은 ‘유사 언론’에 의해 복제되는 ‘얍삽 저널리즘’이 판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러한 반저널리즘적 행위는 더욱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단독’ ‘속보’ ‘특종’의 남발입니다. TV조선은 “변호인, 성완종 설렁탕· 김치찌개 좋아해”라는 제목의 보도를 특종으로 내보냈었습니다. 이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특히 종편의 단독, 특종 남발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TV조선은 “변호인, 성완종 설렁탕· 김치찌개 좋아해”라는 제목을 특종으로 보도했다. (이미지 출처 - 한겨레)

 

KBS ‘미디어인사이드’가 자체 분석한 결과에 의 하면 지난 4월 1일부터 24일까지 공중파 3사와 종편채널 4개사의 저녁 메인뉴스에서 단독이나 특종 이 붙은 기사는 모두 172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채널A가 56건, TV조선 30건 순으로 종편의 기사가 122건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진정한 의미의 특종과는 거리가 먼 기사들이었습니다. 연예·스포츠 분야의 인터넷신문이 쏟아내는 ‘단독’ 기사도 급증하는 추세로 나타났습니다. 네이버에 기사를 공급하고 있는 57개 연예·스포츠 전문 인터넷신문이 4월 19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 생산한 ‘단독’ 기사는 모두 166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독’ 기사들은 대체로 연예인들의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 출연 혹은 하차 소식, 열애설 같은 신변잡기 적인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조회 수나 시청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특종이나 단독이란 수식이 남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속보, 특종과 결별한 매체들


종편이나 인터넷신문의 단독, 특종 남발은 모든 뉴스 매체로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비윤리적 행위는 콘텐츠를 팔지 못하고 광고를 파는 기형적인 비즈니스 모델에서 기인합니다. 이처럼 심화되는 언론의 반저널리즘적 행위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언론에 대한 신뢰가 한없이 추락하게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또한 어뷰징 기사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우리 언론의 비즈니스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뉴스 사이트들이 끊임없이 쏟아내는 유사한 정보들로 인해 뉴스가 그 가치를 상실하고, 이로 인해 독자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북미와 유럽에서는 기존 인터넷신문들은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과는 다른 방향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유료 웹 기반 뉴스 사이트이면서 특별히 특종을 쫓거나 끊임없는 속보 발행을 하지 않으면서 뉴스의 새로운 프레임과 모델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다양한 매체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시리아 디플리는 속보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뉴스 프레임을 실천하는 대표적 뉴스 사이트다. 시리아 디플리의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시리아 관련 뉴스는 교육 자료로도 활용된다.

 

대표적으로 CBS의 중동 통신원이었던 라라 세 트라키안의 ‘시리아 디플리’를 들 수 있습니다. 시리아 디플리는 시리아에 관련된 사이트로 데일리 뉴스와 다른 매체에 실린 시리아 관련 베스트 기사를 링크하고, 현장 통신원들과의 대규모 네트워크 덕분에 가능한 르포 보도들과 변화하는 시리아 상황을 시각적 데이터를 통해 제시합니다. 대다수의 뉴스 매체가 대략적인 내용을 다루는 데 반해 시리아 디플리가 제시하는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시리아 관련 뉴스 정보는 전쟁과 시리아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교육적 자료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윌리스'(사진 왼쪽), '르카트뢰르'등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이른바 '롱폼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매체들이 등장해, 한 주제에 관한 풍성한 정보와 다양한 서술 방식을 통해 뉴스를 심층화하면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주요 뉴스는 매일 일어나지 않아 프랑스에서는 최근 ‘르카트뢰르’ ‘윌리스’ ‘이즈버그 매거진’ 등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이른바 ‘롱폼저널리즘’을 구현하는 매체들이 앞다투어 등장했습니다. 이 매체들은 대체로 저널리즘스쿨을 갓 졸업한 젊은 저널리스트들이 ‘발로 뛰는 저널리즘을 통해 진짜 이야기를 전달해보겠다’는 열정으로 만든 온라인 유료 매체입니다. 주로 평범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는 이 매체들은 한 주제에 관한 풍성한 정보와 다양한 서술 방식 을 통해 뉴스를 심층화하고 때로는 전망도 제시하면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경쟁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차별적이고 질 높은 콘텐츠만이 독자의 관심을 끄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뉴스가 중요한 이유

언제 어디서든 뉴스를 접할 수 있고, 클릭 수 전쟁을 위해 동원된 의미없는 정보들에 노출되면서 우리는 종종 뉴스의 중요성을 망각하곤 합니다. 알랭드 보통은 저널리스트들이 중세시대 성직자들의 역할, 즉 대중과 사회 전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뉴스 탐닉의 시대에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삶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뉴스의 영향력이 크기에 뉴스 생산에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진실을 전하기 위한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뉴스는 원래의 존재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고품질 기사를 생산하는 것은 기사 표절이나 어뷰징 기사 작성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하지만, 이런 뉴스들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무의미한 기사에 묻힐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언론이 독자의 기호에 맞는 정보만 생산하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미끼질만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널리스트들, 언론사들, 언론학자들 그리고 뉴스를 소비하는 모든 이들이 ‘뉴스가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