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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쓸쓸한 날의 연필 테라피

 

내 어린 날의 몽당연필

 

아이의 필통을 열자 손때 묻은 색색의 연필들이 와르르 쏟아졌어요. 크고 작은 연필들이 뒤섞여 있었는데 그 중엔 손에 쥐어질 것 같지도 않은 꼬마 몽당연필도 있더군요. 그걸 본 순간 배시시 웃음이 나면서, 잊고 지냈던 옛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지요. 모서리 반듯하게 접은 콧수건을 옷핀 꼽아 가슴에 달고 새 책가방 메고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인쇄 잉크 냄새 마르지 않은 빳빳한 새 교과서와 새 공책들, 필통 속에 날렵하게 심을 세운 채 가지런히 누워 있던 새 연필들, 그 필통 열어보고 또 열어보던 일곱 살 계집애의 설레는 가슴...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떠오르는 풍경들입니다.

 

아이의 필통에서 나온 크고 작은 연필들이에요. 작은 이름표가 붙은 것도 보이네요.

 

신문지 조각 펼쳐놓고 볕 잘 드는 마루 끝에 앉아 연필을 깎아주셨던 분은 언제나 할머니였어요. 엄마는 밥 하랴 빨래하랴 옷 지으랴, 많은 식구 뒷바라지에 바쁘셔서 그랬던지, 아침마다 머리를 곱게 가르마 갈라 땋아주던 손길도 할머니였고, 소풍날이나 운동회날에 학부모로 오셨던 분도 늘 할머니였지요. 눈을 감으면 할머니의 은가르마가 콧잔등에 닿으면서 이마 가운데로 수직으로 미끄러져 올라갈 때의 그 차가운 감촉이 아직도 선명하게 느껴져요. 사각사각... 연필심이 깎여 나가던 기분 좋은 소리도요. 그렇게 날렵하게 깎인 색색의 연필을 키 순서대로 필통에 가지런히 눕혀 놓으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뿌듯하고 기분 좋았는지요!

 

아이가 갖고 있는 몽당연필 중에 제일 작은 꼬마 몽당연필이에요. 옆에 있는 까만 볼펜 껍데기에 끼워서 쓰더군요.


우리 아이는 조그만 몽당연필도 버리지 않고 써요. 이런 건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니에요. 아이 말로는, 작은 것이 귀여워서 좋고, 또 쓸 만한 걸 버리기가 싫대요. 연필 키가 조금씩 짧아지자 어디서 까만 볼펜 껍데기를 찾아내 끼워서 쓰더군요.


사실 아이의 이런 점, 나를 꼭 빼닮았어요. 그 옛날, 어린 나도 그랬거든요. 닳고 닳도록 쓰다가 마지막에 남은 연필 꼭지의 은색 금속까지 벗겨내고 그 길이의 절반을 가파르게 깎아서 썼을 정도니까요. 학교에서 상으로 받은 새 연필도 여러 다스 있었건만, 새것은 놔두고 친구들이 버린 몽당연필들을 주워서 볼펜 꼭지에 끼워 쓰곤 했어요. 연필뿐만 아니라 공책도 그랬지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오후, 집의 뒷마루에 혼자 앉아 언니 오빠들이 다 쓰고 버린 공책더미를 뒤져서 빈 면들을 뜯어내던 기억이 나요. 모래에서 금을 찾는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모은 낱장들을 풀칠하거나 실로 꿰매 세상에 하나뿐인 재활용 공책을 만들어놓고 엄청 뿌듯해했지요. 의미 없이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안쓰러움, 효용가치가 있는 걸 버리는 데 대한 죄의식, 잡동사니에서 쓸모를 찾아내는 기쁨, 뭔가를 만들어내는 성취감... 어렸지만 마음속에 이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다 들어 있었어요.


언젠가 가까운 후배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뭐든 잘 잃어버려서 제대로 끝까지 써본 기억이 없다고요. 짝꿍이 볼펜대에 끼워 쓰는 몽당연필이 부러워서 연필이 닳도록 부지런히 썼지만, 볼펜대 끼우기도 전에 잃어버렸다나요. 지우개도 늘 끝을 못 보고 잃어버리고, 비 오는 날 우산 잃는 건 다반사였대요. 그 말 들으니 참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사나 봐요. 후배가 볼펜대 끼우기도 전에 잃어버린 몽당연필은 나 같은 애가 주워다 썼겠죠? 어느 덜렁이가 잃어버린 우산도 비 맞는 누구에겐 느닷없는 행운이었을 테고요.


연필을 좋아하는 가족

 

아이에게 연필을 깎아주었어요. 긴 연필, 짧은 연필, 몽당연필 다 모아서요. 무뎌지고 부러진 연필들을 모아 하나씩 하나씩 날렵하게 깎아나가는 기분이 얼마나 상쾌한지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나는 연필 깎는 기계를 쓰지 않아요. 깎인 연필의 모양이 너무 균일해서 심미적으로 아름답지 않고, 연필심이 부러져 다시 깎으려 하면 자꾸 헛도니 기능적으로도 모자라다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직접 손으로 깎는 결정적인 이유는 ‘사각사각’ 깎아가는 손맛(!)을 포기할 수 없어서이지요.

 

아이가 제 손으로 깎은 연필이에요. 울퉁불퉁 못생겼지만 나름 귀여워요.

 

엄마가 연필 깎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자기도 해보겠다며 칼을 들고 나섰습니다. 칼 잡은 손의 자세가 어설프고 서투르지만 내버려두었어요. 이런 일의 익숙함은 말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몸으로 반복해야만 얻어지는 거니까요. 아이는 요모조모 칼질 끝에 연필 두 자루를 오밀조밀 깎아냈습니다. 아이처럼 귀여운 연필이 되었어요. 뿌듯해하는 아이에게 칭찬을 듬뿍 해주었습니다.


엄마랑 아들이랑 연필 깎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아빠가 말합니다.


“나도 회사에서 연필 깎아서 써. 연필 쓰는 게 좋아. 어렸을 때 생각도 나고... 회사에서 연필 쓰는 사람 나밖에 없을걸?”


부드러운 나무의 느낌, 뾰족하게 세운 심지의 촉감을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집에 또 한 사람 있었군요.

 

회사에서 연필을 깎아 쓰는 그를 눈여겨본 거래처의 어느 분이 “연필 깎을 때 쓰세요.”라며 희고 작은 단지 하나를 주더래요. 작은 단지 뚜껑을 열고 연필을 깎는 그의 손놀림이 가볍고 상쾌합니다.


 

사각사각... 연필을 깎는 고요한 시간

 

이른 아침, 바깥에 나가 화목보일러에 불을 지피고 들어왔습니다. 겨울에는 불 지피는 일 외에는 바깥일이 거의 없어요. 밭도 뜰도 동면에 들어갔으니까요. 한가로운 겨울 오전, 햇살이 거실 안으로 쑥 밀고 들어오니 집안에 온기가 돕니다. 해 잘 드는 유리문 앞에 등 돌리고 앉아 등허리에 닿는 따뜻한 햇살의 온기를 즐기며 뭉툭해진 연필들을 깎습니다. 연필 깎는 동안의 고요한 집중이 참 좋아요. 어수선하던 마음이 차분하게 비워집니다.


연필을 깎을 때는 칼등이 있는 문구용 칼을 써요. 적당히 둥근 칼등이 칼날을 감싸고 있어서 손가락으로 싸악 싹- 밀기가 좋아요. 흔히 쓰는 커터칼은 종이 자르기나 편할까, 연필 깎기엔 너무 불친절해요. 맨 칼날을 여러 번 반복해 밀다 보면 금세 손가락이 아파오지요. 

 

오래 써온 접이식 칼로 연필을 깎았어요. 사각사각... 향나무가 기분 좋게 깎여나가고, 뭉툭한 연필심이 날렵하게 일어섭니다.


내가 연필 깎을 때 애용하는 칼은, 아주 오래된 칼이에요. 이 칼이 언제부터 내 곁에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십수년도 훨씬 넘었지 싶어요. 살짝 녹이 슬긴 했지만 아직도 쓸 만합니다. 칼에는 ‘평화’라는 글자가 찍혀 있고, 부리에 나뭇잎 물고 날아가는 비둘기도 새겨져 있어요. 접이식 칼날이 쌍둥이 형제처럼 두 개나 들어 있어서 연필 깎는 노고까지 분담하는 다정한 칼이지요. 이 칼이 마음에 들어서, 문구용 칼로서 고유한 효용이 끝나는 그날까지 곁에 두고 사랑해줄 생각이에요. 칼이든 뭐든, 손에 익숙하고 마음에 맞는 물건은 오래 낡아도 안 버려져요. 반면 아무리 값비싼 새 물건이라도 내 삶에 잘 쓰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연필을 깎는 과정도 즐겁지만, 다 깎은 연필을 늘어놓고 보는 뿌듯함과 개운함도 그에 못지않아요. 이 맛에 ‘뭉툭해진 연필 어디 또 없나?’ 집안 구석구석을 매의 눈으로 뒤지게 됩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날의 연필 테라피
 
연필과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에 관한 탁월한 성찰이 담긴 책 <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에서 작가 정희재는 “연필은 종이와 마찰을 일으켜 영혼에 불을 지피는 도구”라면서, “손아귀의 힘과 근육을 사용해 연필로 쓰면서 세상을 온몸으로 더듬어 파악해가는 것, 거기에는 어떤 과장도 허욕도 없”다고 말합니다. ‘몸을 움직여 마음을 되찾는 도구’인 연필에 관해서 이만한 사유를 건져 올린 책은 다시 나오기 힘들 듯합니다.

 

 

“내가 필기구꽂이를 좀 더 세심하게 자주 살폈더라면 원목 연필의 가치를 좀 더 일찍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처럼 이미 지니고 있는데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이 얼마나 많을까. 둔했기에, 무심히 보아 넘겼기에 알아차리지 못한 내 안의 보석을 생각한다. 쉽게 힘들다고, 권태롭다고, 불운하다고 말하기 전에 우선 내가 무엇을 지녔는지부터 돌아볼 일이다. 마음의 눈과 귀를 열면 손때 묻은 연필 한 자루 속에도 경전이 들어앉아 있다.”

 

 

“위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연필 깎는 소리나 도마질 소리, 또는 바느질이나 뜨개질 같은 일상적인 모습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혼자서 아파 누워 있을 때 다정한 친구가 찾아와 옆에서 책을 읽거나 부엌에서 먹일 만한 걸 만들기 위해 또각또각 도마질을 할 때, 그 속에서 일상의 다정한 속삭임을 발견하고 안도하곤 한다. 그것은 삶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응원가였다.”

 

“다른 존재가 되고 싶지도 않고, 그 누구도 될 수 없다. 연필이라는 뗏목 위에서 나는 나 자신이었다. 오직 그 사실만이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내가 붙잡고 있는 유일한 밧줄이었다.”

 

 - 정희재, <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예담) 중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순간의 연필 테라피’라는 부제가 붙은 정희재의 책은, 만나는 사람마다 건네주고 싶은 사랑스런 책입니다. 이 책을 만난 뒤, 내게는 좋은 사람들한테 망설임 없이 드릴 선물 하나가 생겼지요.

 

연필과 짝을 이루는 선물을 만들었어요. 적송목 자투리 각재를 잘라 구공탄 같은 연필꽂이를 만들고, 문구점에서 산 파버카스텔 연필과 문구용 칼, 그리고 정희재 작가의 책을 함께 포장했지요. 고마운 이들에게 ‘연필 테라피’를 선물하는 마음이 행복했습니다.

 

눈 뜨면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 속으로 빨려 들어가 타임라인 위로 빠르게 미끄러지는 현대인들의 일상은 숨차 보입니다. 내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속도에 밀려 마음이 멋대로 내달려 갈 때, 잠깐 멈춰 숨을 고르고 연필을 손에 쥡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말을 종이 위에 물 흐르듯 써내려가기도 하고, 읽고 있던 책에서 마음이 공명한 구절을 옮겨 적기도 하지요. 종이에 연필로 뭔가를 쓰는 행위는 자판을 두드리거나 손가락을 액정화면 위로 밀어 올리는 것과는 달라요. 종이와 흑연이 마찰하며 빚어내는 질감과 향기를 아날로그로 느끼면서, 비로소 마음의 속도가 몸의 속도와 일치하는 느낌에 안도합니다.


몸과 마음의 아득한 공백을 여미고 접착시켜주는 시간, 악머구리 떼처럼 아우성치던 마음 속 천 마디의 말들이 비로소 종이 위에 차분히 내려앉으며 잠잠해집니다. 그러고 나면 갇혀 있던 슬픔도, 회한 같은 그리움도, 떠도는 마음도, 하나씩 제 자리를 잡아요. 그런 후에 깃드는 나른한 평화가 좋습니다. 상처 많은 날들을 건너가는 작은 뗏목, 이미 지니고 있는 내 안의 보물, 연필 테라피... 치유의 도구는 이미 내 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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