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마을' 공약으로 내건 와타히키 정장

2011. 8. 26. 12:59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독서 마을' 만든 다이고 마치의 와타히키 정장 인터뷰 

일본 '독서 마을' 다이고 마치(일본 이바라기현, 인구 2만2천 명)까지 가는 길은 정말로 멀고 복잡했습니다. 지난 4월 13일 오전 7시. 도쿄 근교 베르디 가와사키의 호텔을 출발하여 요코하마역에 도착했습니다.

그 다음, JR 도오카이도선(東海道線)으로 요코하마(橫濱)~도쿄(東京)역(27분), JR 게이힌도호쿠선(京濱東北線)으로 도쿄(東京)~우에노(上野)역(7분), JR 슈퍼히타치(Super日立-특급열차)로 우에노(上野)~이바라키현(茨城縣)의 미토(水戶)역(80분), JR 수이고선(水郡線-수동식 개폐문의 디젤차량)으로 미토(水戶)~히타치다이고(常陸大子)역(75분)….

다이고 마치역에 도착하자 활짝 핀 벚꽃과 상쾌한 봄바람이 다가왔습니다. 아침 식사도 거른 채 3시간 넘게 달려왔지만 금세 피곤함을 씻었습니다. 고향에 온 듯한 포근한 분위기에 휩싸여버린 것입니다.


<"벚꽃이 아름다운 독서마을" '독서마을'로 알려진
일본 이바라기현의 다이고 마치는 벚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벚꽃과 봄바람만 기자를 기분좋게 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이고 마치를 '독서 마을'로 꾸민 주인공, 와타히키 히사오 정장(62). 일요일인데도 출근하여 한국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와타히키 정장은 첫 인상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마치'는 한국의 읍이나 면을 뜻합니다. '정장'은 한국의 군수나 면장에 해당합니다).

"독서는 인간 형성의 기본입니다. 또 사회 질서 유지의 바탕입니다.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데 책 읽기가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독서운동을 아예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책읽기 없이 경제성장만 추구한다면 일본은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활자문화를 가까이 하면 사람들이 다투지 않게 되고, (자연스럽게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할 수 있어)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할 겁니다."

기자가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하여 연임하면 '독서 마을'이 완전히 정착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와타히키 히사오 정장은 "정치는 오래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도 이것을 오래하면 부패하기 쉽습니다. 임기가 끝나면 욕심을 버리고 열심히 등산이나 하겠습니다"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와타히키 정장의 모범 사례가 알려졌습니다. 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재단 관계자와 한국 공무원 등 15명이 16일 다이고 마치를 방문 시찰했습니다.

그 순간 '일본 사람 = (우리 민족을 괴롭힌) 나쁜 사람'이란 고정관념이 사라졌습니다. 일본에도 주민들에게 존경 받는, 제 정신 차린 정치인이 있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뉴타운 건설'과 같은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인들과는 정말로 대조되었습니다.


<"독서마을 민원실" '독서마을' 다이고 마치의 청사 1층에 위치한 민원실.
와타히키 히사오 정장은 "이농현상으로 피폐해지고 있는 다이고 마치를 살릴 수 있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주민 독서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와타히키 정장은 이농현상으로 피폐화하고 있는 고향, 다이고 마치를 활기 넘치는 지역으로 되살리기 위한 공격적인 정책으로 주민들의 신망을 받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서마을’을 선포하고 주민들에게 독서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야만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자기 고장을 되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다음은 와타히키 정장과 나눈 일문일답입니다. 
 


문자 중요성을 어떻게 생각하나.


"인간은 항상 학습이 필요한 동물입니다. 체험을 통해서만 학습하면 부분적으로만 지식을 흡수합니다. 하지만 문자를 활용하면 더 많이 챙길 수 있습니다. 독서를 하면서 직접 경험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자는 인간 성장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자를 가깝게 해야 훨씬 더 능률을 올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본의 문자 이탈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정말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내가 젊었을 땐 게임기나 손전화가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책 읽는 게 일과였습니다. 아무리 책을 안 읽어도 일주일에 한 권은 읽었습니다. 요즘은 1년 내내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학생이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일본의 사회질서가 유지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싸우지 말고, 살인하지 말고, 서로 협력하면서 사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독서하지 않으면 이런 질서를 잡기가 힘듭니다. 얼마 전에 '갑자기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실제로 살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을 배우지 못해 그런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원래 이런 가치관은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배워야 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남의 영향을 받는 일이 적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독서교육을 해서라도 사회생활에 필요한 규범과 가치관을 알게 해야 합니다."


문자를 가까이 하면 어떤 효과가 생긴다고 보나. 


"실제로 영국 버밍햄에서 통계를 낸 적이 있습니다. 독서를 많이 한 집단과 그렇지 않는 집단을 비교한 결과 전자가 훨씬 더 성적이 올랐습니다. 입학 후 성적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진 것입니다."


신문 읽기를 어떻게 생각하나. 


"신문은 날마다 읽어야 합니다. 신문을 20~30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문을 읽으면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동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 적응력과 판단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긴 인생을 놓고 볼 때 신문을 보느냐, 안 보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학교의 입학식, 졸업식이나 직원회의에서 신문을 봐야 한다고 자주 당부합니다."


                    <"제가 '독서마을' 정장입니다." '독서 마을'을 조성하여 일본 전역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바라기현 다이고 마치의 와타히키히사오 정장.>
 


일본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독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일본 경제가 성장한 배경은 활자문화 발전에 있다고 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활자와 문자를 가까이 하면 사회질서를 유지하기가 쉽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익혀야 할 지식을 공유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독서를 활용하여 좀 더 능률적으로 지식을 흡수하고 전달하는 과정이 쌓이면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밑거름이 독서력․언어력에 있다고 분석하는 것입니다. 사실, 국제적으로 활자문화를 키우면 (자연스럽게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할 수 있어) 전쟁 억제 효과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 국회가 2005년에 제정한 활자문화진흥법의 의의를 말한다면.


"현재 일본은 예전처럼 책을 많이 읽지 않습니다. 그래서 활자문화진흥법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법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찬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활자문화를 부흥시키려고 관심 갖는 게 속상한 것입니다. 굳이 이런 법을 만들어야 문자, 활자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현실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대국이 되려면 정신이 빈곤하면 안 됩니다. 일본에는 천 년 전부터 ‘겐지모노가타리’라는 세계적인 고전문학이 있었습니다. 이런 고전을 다시 읽어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경제성장에만 집중하면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들에게 독서운동을 펼치는 게 신기한데.


"독서운동을 벌여 ‘독서마을’을 만드는 것은 나의 선거 공약이자 다이고 마치의 정책입니다. 독서를 활용하여 폭넓고 상상력이 풍부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에서 이것을 시작했습니다."


공약을 소개해 달라.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활기 넘치는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내 공약입니다. 이를 위해 첫째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둘째는 주민 스스로 활력을 기르는 일을 펼치는 것입니다."


주민 스스로 활력을 기르는 일은 무엇인가.


"'전통 춤추기 축제', '여름 불꽃놀이축제' 등 여러 가지 행사를 치르는 게 그 예입니다. 또 젊은 세대의 주택마련 지원하기, 다자녀 가장의 급식비 지원 등 아이들을 육성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그 다음, '독서 마을' 선언도 있습니다. 어느 중학교 교사가 ‘집안독서운동’을 제안하여 아예 정책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독서운동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주민들이 독서를 열심히 하면 지역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독서의 중요성을 설명한다면.


"독서는 인간을 형성합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죽인다든지,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라 동거인으로 전락한 실정입니다. 인간관계가 희박해지는 데 그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아기 때부터 그림책으로라도 독서 습관을 들이게 하고, 가족과 친구, 생명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의미의 '세뇌교육'으로 출발했다고 보면 됩니다."


독서의 효과를 실감한 적이 있나.


"이바라키현의 공무원으로 일할 때 독서의 효과에 대해 느낀 적이 있습니다. 독서를 즐기는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은 생각하는 폭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교양이 늘고, 사고력이 좋아져 업무 능률도 오릅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독서운동의 방법을 소개해 달라.


"우선, 유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운동이 있습니다. 아기들이 건강진단을 받으면서 모자수첩을 만들 때 엄마에게 책을 선물하고 아기들에게 읽어주게 권장합니다. 이것은 해외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북 스타트 운동'입니다. 아기 엄마들에게 '책 읽어주는 방법'을 지도하는 강좌도 엽니다. 봉사단체 '책 읽어주기회'에서 지도교실을 여는 것입니다. 취임 직후부터 이것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어떤 프로그램이 있나.


"보육원과 유치원에서도 책 읽어주는 시간을 늘리도록 장려합니다. 이것은 독서습관을 길러주려는 목적에서 시행하는 것입니다. 덕분에 현장에서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다이고 마치 자체적으로도 추천도서를 선정하고, 학부모들의 추천도 받아 권장도서 목록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없지만 우리 지역의 만 4~5세 유아들에게 책을 무척 많이 읽어준다는 소문이 나서 화제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독서교육의 효과를 확신하고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초, 중, 고교에서는 어떻게 하나.


"우리 지역의 모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아침독서'를 100%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집에서도 온 가족이 독서할 수 있도록 ‘집안독서운동’을 장려합니다. 문부과학성의 어린이독서도시 추진사업의 일환으로 예산도 지원받고 있습니다. 학교 단위로 100권씩 한 달 간 단체대출도 해 주고 있습니다. 초-중-고의 독서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도서구입 예산을 확보하여 책을 많이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고교생 중에서 책 읽어주기 자원봉사자도 모집 중입니다."



학생들이 아닌, 성인 독서교육도 하나. 


"다이고 마치에 공민관이라는 모임 장소가 있습니다. 이곳에 도서 코너를 만들어 놓고 책을 대여합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강연회도 엽니다. 유명 배우를 초청하여 독서를 장려하는 강연회도 개최합니다. 2007년 말에 연 강연회에는 약 400명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관내 홍보지에 성인들의 독서를 장려하는 정보도 싣고 있습니다. 문화교류센터를 만들어 도서실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올 가을에 착공합니다."


주민 반응은?
 
"아주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6개월 사이에 도서관 이용자가 50%나 증가했습니다. 특히 부모와 자녀가 같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인근 도시에서 다이고 마치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으려고 한다던데.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굉장히 많이 문의해 옵니다. 5월에는 돗토리현 요나고시에서 독서운동에 대한 강연회를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독서마을 운영방법을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본따 독서운동을 선포하는 도시가 있다는 게 반갑습니다. 다이고 마치가 시초라는 게 영광스럽습니다.

이번 취재 요청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무척 반갑고 영광스러우면서도 당혹스러웠습니다. 외국에서 취재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와타히키 히사오 정장은 누구?> 

와타히키 히사오 정장은 바로 다이고 마치 출신으로 명치대학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바라기현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한 뒤에 이바라기현 의회 의원, 이바라기현 의회 환경상공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2007년 1월에 다이고 마치 정장에 당선했습니다. 20년 전에 하버드에서 유학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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