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집단지성이 없을까

2015. 12. 10.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설치 해 놓았지만 소모적인 논쟁, 소문, 험담 등 생산적이지 못한 곳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넷 맹신론자들은 집단 지성을 이야기하지만 과연 인터넷이 어느 나라보다 활성화 된 우리나라가 왜 생산적인 집단지성 문화가 부족한지 고민하며 반성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포탈 사이트의 선정적 운영,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인터넷 업체들의 철학의 부재가 가장 큽니다. 국내 업체들이 집단지성을 위해 사용자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은 대부분 경품을 내 걸은 이벤트입니다. 하지만 이벤트를 통한 사용자 참여 유도는 경품 사냥꾼들의 먹이감만 될 뿐 순수 일반 이용자 참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생산적으로 사용자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고학력,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어떻게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 너무나도 유명해 진 리눅스와 위키피디아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리눅스는 현재 약 500만명이 참여를 해 OS 발전 시키고 있으며 위키피디아 역시도 비슷한 수의 참여자가 인터넷 백과사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대부분은 20~30대 젊은 남성이며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입니다. 아무런 보상도 없는 자발적인 열정으로 사용자 혁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리눅스와 위키피디아가 성공한 것은 단순히 소스를 공개 했거나 편집 권한을 공개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지 출처 - www.flickr.com)



고학력, 지식 노동자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참여하는 이유는 프로젝트의 명분이 이들의 가슴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이들 프로젝트는 사용자의 참여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는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국내 사용자 참여 사이트들이 대부분 1차원적인 재미와 편의를 홍보하며 경품을 걸고 참여를 독려하는 것과 비교 되는 부분입니다. 고학력의 지식 노동자들은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가 있기에 이벤트 경품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과 타인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리차드 스톨만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리눅스와 위키피디아에 참여하는 것은 이런 욕구를 충족 시켜줍니다. 9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시장을 잠식 했으며 인터넷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자 사람들은 위기를 느꼈습니다. 리눅스 토발즈는 리눅스를 소스까지 완전 공개하며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초기 리눅스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에릭 레이먼드는 보는 눈만 많으면 어떤 버그도 잡을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시장과 성당’이라는 명문을 인터넷에 올려 초기 리눅스 확산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리차드 스톨만은 저작권을 상징하는 Copyright에 반대해 누구나 사용 가능한 copyleft라는 재미 있으면서 철학적인 단어로 많은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리눅스는 정보 공유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언론들은 ‘리눅스 VS 마이크로소프트’를 ‘선량한 다윗 VS 비열한 독점주의자’로 자주 묘사했습니다. 리눅스에 참여하는 것이 정보를 독점하려고 하는 MS에 맞서는 ‘정보 민주주의 운동’으로 포장 되면서 수 많은 고학력 지식 노동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습니다.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 그리고 비슷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은 참여자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큰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역시도 대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대표인 지미 웨일즈는 인간은 옳은 일을 하는 존재라고 강조합니다. 위키피디아는 가난한 나라 어린 아이들도 무료로 이용 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이기 때문에 교육의 평등을 통해 꿈과 희망을 심어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위키피디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옳은 일이라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했기에 성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생산적인 집단지성이 부진한 이유는 그 동안 국내 인터넷 업계가 사용자들을 지나치게 상업적인 활용의 수단으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들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국내에도 이에 호응하는 사용자는 많을 것입니다.


'집단지성'은 일반 대중들이 모였을 때 전문가 수준의 높은 지적 능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는 아직 완벽히 검증 되지 않은 이론이며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치열합니다. 초등학생들이 아무리 모여도 대학생 수준의 수학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처럼 일반 대중들이 아무리 모여도 전문가 수준의 지성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의도적으로 특정 개인과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의견을 몰아가거나 객관적이지 못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정보에 일반 대중들의 감정적인 판단이 들어 갈 경우 집단지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집단지성을 표방하는 사이트는 신뢰성 문제로 많은 공격을 받습니다. 누구나 편집 할 수 있는 인터넷 백과 사전인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는 누구나 편집 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영어 위키피디아만도 500만개 이상의 항목이 등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신뢰성의 의심 때문에 뉴욕타임즈 등 주류 언론에서는 위키피디아를 통한 취재 및 인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지식인 집단인 대학에서는 참고 자료로 위키피디아보다는 전통 매체인 신문과 백과 사전을 인용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신뢰성에 끊임없는 의심을 받자 위키피디아는 자료를 공개하며 집단지성의 이미지를 벗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13,000명 이상의 회원이 참여 해 콘텐츠를 생산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0.7%의 전문가들이 콘텐츠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고 공개를 한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핵심적인 내용을 모두 채워 놓으면 일반인들이 부수적인 내용을 채우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단지성은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협업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협업으로 집단지성을 만들어 소중한 생명을 구한 경우가 집단 지성의 대표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집단지성이란 단어가 생기기 훨씬 이전인 1995 년 중국의 추링이란 여대생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중국 의사들이 원인을 파악하지 못 해 치료를 멈추자 친구들은 추링의 검사 결과를 정리해 인터넷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한 달도 안되어 18개국 2000 명의 사람들이 해결을 위한 회신을 보내 주었다. 이 중 70% 는 관련 분야 전문가인 의사들의 조언이었고, 나머지 30%는 추링의 회복을 바라는 일반 대중들의 회신이었습니다. 이 과정 속에 이 분야 최고 전문가였던 UCLA의 조지 박사가 참여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수 많은 토론 끝에 추링은 ‘탈리움’ 중독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탈리움 중독은 흔한 병이 아니어서 중국에서 치료제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를 찾기 위한 일반 대중들의 노력 끝에 적절한 치료제를 찾았고 이를 통해 추링은 회복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감동적인 과정은 UCLA 홈페이지에 실렸고 전문가와 일반 대중의 협업에 대한 수 많은 토론을 만들었습니다. 집단지성은 일반 대중들만의 참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대중들 속에 전문가들이 포함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들과 일반 대중들의 협업을 통해서만 참다운 집단지성을 완성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는 일반 대중들의 참여는 활발한 편이나 전문가들의 참여는 부족합니다. 선진국들처럼 전문가들의 참여를 사회에 대한 지식 기부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정착 되어야 합니다. 전문가 집단은 그들이 가진 지식이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며, 일반 대중들은 온라인들에도 그들이 가진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정착 되어야 참다운 집단지성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