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인 공론의 장을 만드는 필리버스터

2016. 3. 9. 18:2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요약] 2016 2 23일 테러방지법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해 야당에서 필리버스터를 진행했습니다. 1964년 이후 52년만에 진행된 필리버스터는 국민들과 외신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테러방지법 부결에는 실패했지만 민주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필리버스터필리버스터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있었던 제도로 현재 영국과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던 필리버스터(filibuster).

필리버스터는 16세기 약탈자’, ‘해적선을 뜻하는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filibustero)’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의회에서 길고 느리게 연설하여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게 막는 것으로, 주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의사진행을 저지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한국의 필리버스터 역사

 

19646대 국회시절, 자유민주당 김준영 의원이공화당이 일본으로부터 13천만원의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내용을 폭로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5시간 19분간 의사 발언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필리버스터라고 합니다.

 

그 이후 1973년에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필리버스터는 폐기되었습니다. , 의원 발언 시간은 30분을 초과할 수 없고, 최대 45분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다 2012[각주:1]국회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무제한 토론의 실시인 필리버스터가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2016223일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해 진행된 38명 야당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192시간 25분간 진행된 필리버스터는 국민과 외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AP통신,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ABC, NBC 등이 대한민국 국회의 필리버스터에 관해 보도했습니다. 특히, 영국의 타임즈과거 필리버스터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전화번호부나 굴튀김 요리법 따위를 읽는 등 그저 시간끌기를 해왔다. 그러나 한국의 필리버스터는 마치 로마 원로원에서 카이사르에게 맞서서 끝없이 연설하던 카토처럼 예술적인 수사학적 연설 무대가 될 수 있고 논리로 멍청한 법안을 낱낱이 부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라고 명시하며 한국의 필리버스터에 대해 극찬했습니다.

 

5천여 명의 국민들이 방청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찾았고 생중계 사이트에는 35만 명이 넘게 접속했습니다. 많은 관심 속에 진행되었던 필리버스터. 이에 대한 평은 엇갈리겠지만 테러방지법을 공론화시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필리버스터를 관람하는 시민
<출처: 오마이뉴스 남소연 '휴일 반납하고 필리버스터 현장 찾은 시민들' 2016.02.28>

 

 

필리버스터, 로마 시절부터 있었다

 

필리버스터는 로마 시대 때부터 있었던 의회 제도입니다.

기원전 60,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각주:2]가 히스파니아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후 [각주:3]원로원에게 [각주:4]개선식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는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기 때문에 당시 관습대로 원로원에게 개선식을 요구할 수 있었고, 또 마흔이 되었기에 [각주:5]집정관에 취임할 자격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바로 개선식을 치르는 장군은 개선식 이전에 로마에 입성하지 못하는 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집정관 출마를 하기 위해서는 개선식 이전에 로마에 위치한 원로원에 출석해야만 했습니다.
, 카이사르가 개선식을 선택하면 로마에 들어갈 수 없기에 집정관 출마 역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에 원로원에 [각주:6]궐석출마를 허용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카토가 이를 필리버스터로 부결시켰습니다. 당시 로마 원로원 규정에 따르면 모든 원로원 회의는 해질녘에 종료되어야 했는데, 카토는 필리버스터로 이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궐석 출마가 부결된 카이사르는 결국 개선식을 포기하고 원로원에 출석하였고, 집정관이 되었습니다.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세계의 필리버스터


영국 최초의 필리버스터는
1874년 조지프 비거라는 하원의원이 아일랜드 탄압 법안을 막기 위해 진행된 것이 그 시초입니다. 그 뒤 2007년에 정보자유법 적용저지 법안을, 2012년에는 영국의 표준시간을 중부유럽시간으로 변경하는 일광절약법안을 막기 위해 활용되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필리버스터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57년 스트롬 서몬드 전 의원이 흑인들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공민권법에 반대해 24시간 18분 동안 연설한 것입니다. 미국의 필리버스터는 우리나라와 달리 주제와 상관없는 내용을 이야기해도 괜찮기 때문에 스트롬 서몬드 전 의원은 독립선언서와 인권법 내용,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의 퇴임 연설문 등을 읽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필리버스터는 위의 두 나라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바로 연설형태의 필리버스터 대신 엄청난 양의 수정안을 제출하는 것입니다. 긴 연설형태의 필리버스터를 사용하지 않는 까닭은 법적으로 의회에서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프랑스에서 진행되었던 가장 최근의 필리버스터는 2013년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표결에 붙여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우파 야당 측에서 5만여 건의 수정안을 제출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모든 수정안을 검토하는데 최소 2주가 넘는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필리버스터 기록 소유자 스트롬 서몬드 전 상원의원
<출처: 연합뉴스/허핑턴포스트코리아 '미국 필리버스터 기록은 24시간 18분이다(리스트)' 2016.02.24>

 

 

민주적인 공론의 장을 만드는 필리버스터

 

필리버스터가 법안 통과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던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필리버스터 자체가 갖고 있는 의의는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국민들 스스로가 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의견을 표명하는 공론의 장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법안을 막기 위해 고함과 주먹이 오가지 않는 민주적인 국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조금은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활용 기사 : 더팩트, [TF인포그래픽] ‘경신 또 경신숫자로 본 필리버스터 진기록’ 2016.03.03

                 : 영국타임즈, Korean filibuster drones on into sixth day 2016.02.29

                 : 이데일리, [국회키워드] 39년 만에 부활한 필리버스터’ 2016.02.27

                 : 경향신문, [뉴스 깊이보기] 필리버스터, 로마 시대부터 있었다 2016.02.24

                 : 딴지일보, 프랑스는 지금 : 프랑스의 필리버스터 혹은 수정안 전투 2016.03.02




 

  1. 국회의장 직권 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를 통한 법안 처리를 금지하도록 한 법안 [본문으로]
  2.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 [본문으로]
  3. 로마 건국 때부터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국정운영의 실질적인 중심기관 [본문으로]
  4.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군사를 환영하는 기념식 [본문으로]
  5. 로마법에 따라 로마의 통치권을 대표단으로부터 부여 받은 로마의 최고 통치자 [본문으로]
  6. 부재 출마와 같은 말로, 실제로 자리에 참석하지 않지만 참석으로 인정하는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