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ile_menu

아버지의 칭찬이 좋아 시작한 세 살짜리 ‘신문 배달부’





걸음마를 갓 뗀 세 살짜리가 신문 배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실화다. 그 아기가 바로 나였다. 세 살이 되자 아버지께서는 새벽마다 신문 심부름을 시키셨다. 나는 뒤뚱 뒤뚱거리면서 아버지께 신문을 가져다 드렸다. 아버지의 칭찬이 너무 좋아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신문배달부’가 되어드렸다. 신문과 친해진 계기였다. 신문을 가지고 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신문을 뭉치면 종이인형이 되었고 북북 찢으면 둥둥둥 소리가 들렸다. 가늘게 잘라 머리에 꽂고 인디언 놀이를 하였다. 다른 친구들이 색종이 놀이를 할 때 나는 신문지와 즐거운 친구가 되었다.

일곱 살이 되자 신문 속의 재미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염소, 풀, 내 또래 아이들이 신문에 들어 있었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고 굵은 제목들도 하나씩 읽어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 천지였다. 그때마다 부모님께서 그 의미를 하나씩 알려주셨다. 덕분에 유치원을 졸업하기 전에 ‘충족하다’, ‘경영하다’ 같은 단어들을 익힐 수 있었다.


 


내가 신문을 더욱 꼼꼼히 읽게 된 것은 학교 대표로 글쓰기 대회에 참가했던 6학년 때부터이다. 그 당시 나는 학교에서도 꽤 알아주는 글 솜씨를 가졌다고 자부했다. 글쓰기 대회가 열리기 전 2주의 시간을 아무런 준비 없이 보냈다. 글쓰기 대회의 주제는 ‘독도’였다. 처음엔 아무 어려움 없이 써내려갔다.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지켜야 한다.’거나 ‘독도는 우리에게 많은 이점이 있다.’와 같은 문장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진부한 내용들만 나열될 뿐 나중엔 더 이상 쓸 것이 없었다. 그저 글자 수를 채우기 바빠 이미 썼던 내용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결국 참가상조차 받지 못한 나는 큰 좌절에 빠졌다. 대회가 끝난 뒤 대회 수상작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상을 받은 글 속에는 독도에 대한 지식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 지식의 해답은 바로 ‘신문’이었다. 비로 나는 신문이 ‘재미’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에 가능하면 2시간씩 신문을 읽었다. 처음에는 꼼꼼하게 읽는 것에 익숙치 않아서 힘들었다.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하지만 신문을 읽는 날들이 지나자 ‘지식을 쌓고 있다.’라는 자부심 때문에 오히려 즐거웠다. 저녁식사 시간마다 그 ‘지식’을 부모님께 자랑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식탁은 토론장이 되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어떤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 지에 대해 가족과 열띤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때로는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신문에서 정보를 얻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신문 속의 ‘세상’을 발견하자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두려움들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교내 글쓰기 대회에서 더 많은 상을 받았다. 말하기 대회에서도 여러 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신문이 내게 가져다 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 신문은 장난감이었다. 그림책이었고 글자 책이었다. 지식의 창고였다. 무엇보다 신문은 내게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가꾸어 나간다.

아버지가 세 살짜리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를 신문배달부로 만들고자 한다. 더 니아가 아이가 친구들과 신문을 가지고 놀고, 읽고, 보고, 세상을 느끼게 하고 싶다. 나는 지금 신문과 세상을 공부하는 중이다. 신문에 정보가 있고 세상이 있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1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모음집>중 동상 중등부 수상작 이하준 님의 ‘세 살짜리 신문배달부, 세상을 나르다’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다독다독




Trackback 0 Commen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