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미성년 관련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

2016. 5. 16. 11: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한국외대 언론정보연구소 최숙 연구원의 글입니다.



아동 인권 보도의 호루라기

 

최근 아동학대치사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았. 2015년 말부터 인천 소녀 학대’ ‘부천 초등생 학대’ ‘부천 여중생 학대’ ‘고성 친딸 암매장’ ‘평택 신원영군 암매장 사건등이 연이어 보도됐다. 그리고 보도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선명하게 알 수 없는 뉴스가 연일 생산되고 있다. 실종 당시에는 긴급한 수사를 위해 신원을 공개했다 하더라도 후속 보도에서까지 피해자인 어린이들의 신원을 명백히 알 수 있는 사진이 게재되거나, 가해자의 얼굴은 가려진 채 피해자 어린이의 이름으로 사건이 구별되고, 폭력과 학대에 대한 과도하게 세밀한 묘사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며, 피해자의 미성년 형제자매들의 근황을 흥미위주로 전달하는 등 어린이들의 인권 보호에 어긋나는 기사들을 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국내 언론은 몇 해 전, ‘나영이 사건이나 고종석 사건및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과잉 취재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비인권적인 보도가 [각주:1]횡행하는 현실을 보면 현존하는 국내 어린이 보도에 관한 가이드라인의 현황을 조사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해 보인다. 미디어 가이드를 현장에서 적용하려는 언론인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재진,2013; 심미선 외, 2013)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강령이나 보도준칙 등과 같은 미디어 가이드는 흔히 말하듯 호루라기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원칙에 기초한 합리적 과정으로서 보도 윤리가 정립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보도는 그 자체가 역설적인 상황에서 취재가 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서 어린이 인권보호에 더욱 민감해야 한다. 폭력적 상황에 처해 있는 어린이에 대한 보도는 어린이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현실을 알리려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어린이가 처해 있던 잔혹한 상황이 더 자세히 묘사되기도 한다. 따라서 선정적인 보도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몰이해로 인하여 피해자인 어린이뿐 아니라 피해자의 미성년 형제자매들의 사생활과 인권까지 침해당하기 쉬워진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미디어로부터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수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론권을 행사하거나 명예훼손으로 언론사를 고소하는 등의 과정을 스스로 해내기 어렵다. 따라서 어린이 보도에 대한 바람직한 미디어 가이드를 정립하는 것은 선언적일지라도 최종 결정의 중요한 근거가 되므로 중요하다.

 

 

아동 인권 특수성에 대한 이해 부족

 

어린이에 대한 취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윤리적보도 행태를 규제하는 근거로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실천요강(13조 어린이 보호)과 방송심의규정(6절 어린이·청소년 보호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협력하여 제정한 인권보도준칙’(7장 어린이·청소년인권)이 있다.

신문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과 방송심의규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어린이 보도에 대한 지침은 어린이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와 어린이 인권에 대한 고려가 상당 부분 편중적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과 어린이를 통제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신문윤리실천요강의 경우, 각 조항들은 어린이에 대한 보도에서 신원의 익명 처리나 보호자의 동의에 대해 명시하고 있지만(1~3), 2015년 신문윤리위원회의 심의 결정에서 주의나 경고를 받은 사례들을 보면 주로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4항에 근거한 심의 결정에 치우쳐 있다. 방송심의규정도 유해한미디어를 규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정한 재연 배역으로 어린이가 출연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4절 윤리적 수준, 26, 39조 등)도 역시 어린이들에게 충격적인 유해물을 통제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인권 보호를 제정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인권보도준칙의 제7장 어린이와 청소년 인권[]도 보완이 필요하다먼저, 어린이 인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어린이들이 그들의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 표현의 자유와 능동적으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보호를 지지하는 조항이 없다는 점은 재고해 보아야 한다.


[] ‘인권보도준칙7장 어린이와 청소년 인권

 

1. 언론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인식하는 자세를 갖는다.

. 어린이와 청소년이 어리다는 이유로 그들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 따돌림, 학교폭력, 체벌, 인터넷 중독 등을 다룰 때 어린이와 청소년의 입장을 고려한다.


2. 언론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안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한다.

.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충격을 줄 우려가 있는 선정적 ·폭력적 묘사를 자제한다.

. 주변의 도움이나 후원을 받는 경우 얼굴, 성명 등 신상 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 범죄사건을 재연할 경우 아동을 출연시키지 않는다.

.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익명성을 보장하고 피해상황과 관련한 사진과 영상은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또한 어린이들의 특수한 권리에 대한 조항의 신설이 필요하다. 유니세프 산하기구에서 출발한 어린이 인권보호 네트워크 CRIN(Child Rights International Network)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기반으로 [각주:2]어린이들이 가지는 특수한 권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인권은 인간의 기본권을 기반으로 하지만 어린이이기에 어른들과는 다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성장 중에 있고 사회적 약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보호자의 책임과 의무, 가족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 등도 취재·보도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미국·영국: 지침보다 교육과 실천

 

2015년 국내 인도적 지원 및 개발협력 사업을 하는 한국 개발 NGO들의 협의체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에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바탕으로 한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이 가이드는 특히 열악한 환경의 아동을 위한 기부 및 기금 조성 사업의 홍보 및 취재에 임하는 언론 관계자들이 아동의 권리 보호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제정된 것이다. 어린이가 보호의 대상이자 권리의 주체임을 강조하고 선의를 기반으로 한 보도 및 홍보자료 일지라도 보호 대상인 어린이의 권리를 도리어 침해하는 경우가 문제시되어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국내 어린이 보도 가이드로 다소 부적절한 부분도 있지만, 사진 및 동영상 촬영 시 준수사항, 빈곤/학대/인도적 위기 등의 상황별 가이드라인 등을 볼 때, 현재 국내에서 적용되고 있는 어린이에 대한 보도 가이드에서 참고해야 할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이 보호에 대한 의식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경우 어린이의 사생활 보호에 적극적이며 어길 시 이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으나 어린이 보도에서의 미디어 가이드는 강력하고 구체적이지 않다. 전문기자협회(SPJ) 윤리규약이나 라디오텔레비전뉴스책임자재단(RTNDF)의 윤리규약과 직무상 행동지침, 미국신문편집인협회(ASNE)의 윤리강령에도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취재와 보도에서 세심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짧게 언급되어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강력한 법적 제재나 구체적인 조항이 없는 이유가 국내 상황과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 어린이에 대해서, 자녀 양육에서도 민주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어길 시 강력한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높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각주:3]영국의 경우 IPSO(Independent Press Standards Organization)에서 제시하고 있는 윤리강령의 어린이 조항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성문제 관련 어린이조항(Children in Sex Cases)’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으며, ‘incest(근친상간)’라는 단어를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도 있다. 보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각주:4]오프콤도 2015년에 어린이에 대한 방송심의규정을 대폭 보완하여 구체화했다. ‘성 및 기타범죄행위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규정이 기존보다 강도 높게 신설됐다

어린이 인권 보도 가이드에 관한 미국과 영국의 사례에서 우리가 주시할 부분은 보도 가이드의 조항들 자체보다는 취재 과정에서 어린이들을 대하는 것에 대한 세심한 지침을 언론인 교육에서 간과하지 않고 있다는 점과, 실천에 대한 의지라고 하겠다. [각주:5]뉴스랩(News Lab)이 제공하는 어린이를 인터뷰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라든가, 포인터연구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각주:6]미디어 윤리에 대한 자율적 활동 웹 사이트가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4월호


 


  1.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함. [본문으로]
  2. https://www.crin.org/en/guides/introduction/what-rightsare-unique-children [본문으로]
  3. 미국에서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논의는 국내의 그것과 사뭇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최근 미국 어린이인권에 대한 논쟁 중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동성애와 종교에 대한 어린이들의 주체적 결정에 대한 인정 논의라는 점을 보아도 그러하다. http://www.hrc.org/explore/topic/children-youth [본문으로]
  4. http://stakeholders.ofcom.org.uk/broadcasting/broadcastcodes/broadcast-code/protecting-under-eighteens/ [본문으로]
  5. http://www.newslab.org/2009/12/17/how-to-interviewchildren/ [본문으로]
  6. http://www.poynter.org/category/ethics/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