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읽어야 할까?

2016. 6. 13. 15:00다독다독, 다시보기/기획연재



양정환, 2016 다독다독 기자단


[요약] 한국은 '속독'의 개념이 보편화된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과연 '속독'만이 가장 효율적인 읽기 방법이며 '느리게 읽기로' 얻는 것은 없는걸까? 실험을 통해 속독이 아닌 완독에서 비롯되는 변화와 장점을 찾아본다.


한국을 찾아 처음으로 '빨리빨리 문화'를 접한 외국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느리게 하는 일을 참지 못하고 모든 일을 '신속히', '빨리빨리'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 모습을 처음 마주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울 것이다우리의 이런 문화는 사회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그 중 하나가 '빠르게 읽는 습관'이다. '속독'으로 불리는 읽는 습관은 많은 이들의 생활 속에 깊게 자리 잡았다. 빨리 읽는 습관이 우리의 삶 속에 자리 잡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대학가를 찾아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문장을 보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들이 많다보니 저절로 빠르게 읽는 습관이 들었어요."

"강의를 뒤처지지 않게 따라 잡으려면 교수님께서 제공하신 자료나 서적을 빨리 읽어야 해요."

▲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속독관련 정보, '시간의 효율적 활용'을 강조한 토익 서적



교육 환경에 의해 타의적으로 읽는 습관이 들여진 것은 아닐까?

실제 서점을 찾아가 시험 관련 도서들을 찾아본 결과 대부분의 책들이 문제 풀이를 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빠르게 읽는 법을 강조하고 있었다. 물론 시험의 경우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느리게 읽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읽는 습관이 다른 종류의 글을 읽을 때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속독 그 자체가 현재의 활용도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나중에 고칠 수 없는 습관이 되어 자신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하는 이들이 많았다과연 우리의 '읽는 방식'은 옳은 것일까? 천천히 읽고 이야기 하며 생각을 공유하는 '슬로우 리딩(Slow reading)'의 장점은 없는 것일까? 실험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했다.



#느리게 그리고 빠르게, 일주일의 실험

 

여기 2명의 실험 참가자가 있다. 이 두 사람의 읽기 습관은 확연히 다르다


▲  '빠르게 읽기'를 선호하는 윤현욱(좌)와 '느리게 읽기'를 선호하는 안상훈씨(우)


윤현욱(23)는 '빠르게 읽기'를 선호한다. 대입수능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에서 만점을 맞았던 그는 학생 시절 시험 준비를 하던 당시의 습관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모든 읽기에서 속독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습관은 그에게 큰 고민이다. 매일 아침 신문을 보는데 빠르게 내용을 읽는 것까지는 좋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침에 본 내용 중 전체적인 사건이나 큰 틀만 기억에 남고 세부 내용이나 인명, 용어 등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문제로 강의시간이나 면접 등 막상 알게 된 지식을 써야할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하지 못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반면 안상훈(24)는 '느리게 읽기'를 선호한다. 물론 그도 수능이나 시험을 준비했을 때는 속독을 하기도 했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언제나 느리게 읽기를 해왔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같은 내용을 보아도 천천히 읽는 습관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천천히 읽을 수 있지만, 강의 중이나 글을 읽고 빠르게 답변을 해야 할 순간에는 뒤처 적이 적지 않다.



▲ 실험에 참가한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읽은 기사[각주:1]


실험 시작 전 두 사람에게 간단한 테스트를 했다신문에 게재된 조금은 생소한 중국 경제와 관련된 기사를 읽게 했다. 두 사람이 기사를 다 읽는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132초와 423, 느리게 읽는 쪽이 빠르게 읽는 쪽의 약 3배에 가까운 시간을 사용했다.


기사를 다 읽은 두 사람에게 기사 내용을 토대로 문제를 냈다. 두 사람 모두 어려움 없이 답변을 해냈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기사와 관련된 질문을 다시 했을 때 차이는 컸다. 빠르게 읽은 쪽에서 비교적 잦은 실수가 나왔다. 주로 용어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거나 수치 등의 세세한 오류였다.


두 사람에게 일주일 동안 기존의 읽기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신문과 책을 읽도록 요청했다. 윤현욱 씨는 글 전체를 빠르게 읽기 보다는 페이지를 나누고 문단별 한 줄의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도록 했고, 안상훈 씨는 페이지 한 장을 기준으로 길어도 1분의 시간 내에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일주일 후 과연 그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7일의 변화는 컸다. 느리게 읽기 시작한 쪽에서는 신문을 토대로 질문한 결과 5일 전에 읽었던 기사의 내용까지도 대부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으며 며칠 전에 올라온 기사와 오늘 기사 사이의 연관성 또한 세세하게 설명했다. 같은 글을 읽더라도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게 된 것이다.


빠르게 읽는 쪽은 독서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평소라면 약 일주일의 시간 동안 많아도 2권의 책을 읽는 그였지만 실험 기간 동안에는 3권의 책을 다 읽었고 종료일에는 4번째 책을 읽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실험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는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아쉬움도 토로했다. 안상훈 씨의 경우 "빠르게 읽는 방법이 당장 앞에 있는 과제나 참고용으로는 도움이 되었지만 후에는 생각이 잘 안나 책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며 정말 중요하고 장기적으로 꼭 알아두어야 한다면 느리게 읽는 편이 좋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윤현욱  "아침시간에 신문을 전체적으로 빠르게 읽고 새로운 소식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천천히 읽다보니 신문 읽기에만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 어느 정도의 속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새롭게 알게 된 큰 장점만큼 적지 않은 단점도 마주했다.


읽기에 대한 이번 실험은 실험환경이나 장소 대상 선정부터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아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속독이나 완독 어느 쪽이 더 우수성을 띤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한 가지 읽는 방법으로는 여러 글들을 잘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 자전거를 탈 때 기어를 조절하듯 글도 읽는 글에 맞게 방법을 바꾸자


자전거를 탈 때는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 등 길의 종류에 따라 기어를 변형시키며 효율적인 운행을 해야만 타는 사람이 힘이 덜 들고, 자전거에도 무리가 가지 않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의 종류나 형식이 다양하듯 이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 또한 다양해야 한다. 다양한 읽기 방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는 읽기를 한층 더 성장시키는 원천이며 생각의 폭을 확대시키기 위한 밑거름이다. 효과적인 글 읽기를 위해 새롭고 낯설게 읽어보고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1. 조선비즈, 상하이·베이징서 고전하던 CGV, 중견도시 뚫어 매출 2배로, 2016.05.2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