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이 언론·인터넷에 끼칠 영향

2016. 7. 25. 11:46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구본권, 한겨레신문 사람과 디지털 연구소장


[요약] 인터넷에 자신이 쓴 글을 삭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인터넷의 다양한 상황으로 인해 이를 구현하기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있다. 방통위 가이드라인은 이런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와 도입이 본격화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인터넷 게시물 삭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6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한편 언론중재위원회는 기존 언론중재법에 ‘잊힐 권리’ 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을 반영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마련을 2015년 위원회 중점 과제로 설정하고 개정안 초안을 작성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세미나와 정책 토론회를 여러 차례 개최해 개정안에 대한 여론을 수렴해오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른바 ‘잊힐 권리’가이드라인이 지난 6월 1일부터 시행 되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 3월 25일‘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가이드라인(안)’ 세미나를 열고 가이드 라인을 공개한 바 있다.

<저작권자©뉴스1코리아, 무단복제 및 무단사용 금지>


#자신이 쓴 글만 삭제 가능


2014년 5월 유럽연합 사법재판소에서 내린 구글(Google)의 특정 검색 결과에 대한 링크 삭제 판결이 ‘잊힐 권리 판결’로 불리며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의 판결로 ‘잊힐 권리’는 현실 법제 안으로 들어왔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권리에 따른 검색 결과, 삭제 범위가 구글프랑스를 넘어 구글 전체로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구글은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이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잊힐 권리’는 인터넷과 언론 환경에 끼칠 영향이 심대[각주:1]하지만, 그 개념과 구체적 법익이 모호하다. 더욱이 오랜 법적 논의 끝에 판결이 나온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관련 논의와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잊힐 권리’가 자신에 관한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서 삭제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라는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국내에서 논의 중인 ‘잊힐 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게시물과 언론 기사를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방통위 가이드라인은 이런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방통위가 예시한 상황은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타인의 댓글이 달려 자신의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는 경우, 회원 탈퇴나 회원 정보 분실로 인해 이용자가 자신의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는 경우, 인터넷 사업자가 사이트 관리를 중단했거나 게시물 삭제 권한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이럴 때 이용자가 삭제하고자 하는 게시물을 특정해 자신이 작성자임을 입증하면, 사업자는 게시물에 대한 노출을 중단해 일반 이용자들이 해당 게시물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게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다.



자율성·역차별 논란 예상


삭제를 요청하거나 삭제된 게시물이 검색 사업자의 검색결과에 계속 노출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 검색 결과에서도 삭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가이드라인에서 검색 사업자가 특정한 검색 결과에 대해 이용자의 삭제 요청을 수용하도록 한 것이 ‘잊힐 권리’ 판결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불이행 시 제재 규정이 없는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이지만 검색 사업자로서는 조건을 충족한 이용자의 삭제 요청을 바로 처리해야 하는 압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인터넷에는 사이트 관리자가 없어졌거나 방치된 웹페이지가 무수히 존재한다. 현재도 사이트 관리자가 있는 경우 대부분 자신의 글을 삭제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이용자의 삭제 요청이 결국 검색 사업자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고, 이는 실질적으로 검색 사업자들에게 새로운 부담이 된다. 더욱이 검색 엔진의 기능은 갈수록 개선되고 강력해지고 있다. 그동안 검색 사업자는 이용자의 검색 요청을 받으면 알고리즘에 따라 존재하는 모든 웹페이지를 검색한 결과를 보여주는 서비스를 해왔으나, 앞으로 방통위의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 시행에 따라 ‘특정 결과 제외’라는 별도의 업무 부담을 지게 될 전망이다.


기존 정보통신망법의 임시 조치 규정은 이용자가 포털 사이트 등 인터넷 사업자에게 자신에 관한 제3자의 글을 명예훼손이라며 피해를 주장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삭제(블라인드)할 수 있도록 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방통위의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 따라 다양하게 운영되던 게시물 관리 방침에 획일적 지침으로 작용하게 돼, 향후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와 자율성과 관련해 새로운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신청인이 작성한 게시물인지 확인되면 삭제할 수 있도록하고 검색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애초 게시물에 아무리 많은 댓글이 달려도 요청만 있으면 삭제할 수 있다. 이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별로 게시물과 댓글 삭제 정책을 다양화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가 된다. 이용자 간의 상거래가 활발한 ‘뽐뿌(Ppomppu)’사이트는 사기 행위를 막기 위해 자신의 글도 6개월간 삭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향후 이처럼 고유한 게시물 정책을 채택하는 서비스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또 해당 가이드라인은 글로벌 서비스에 대한 적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국내 기반 사업자에게만 작용해 역차별 논란을 부를 수 있다. 국내 사무소가 없는 외국 검색 사업자거나 국외 사업자가 방통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국내 업체만 규제받을 수 있다.


가이드라인은 삭제 요청 게시물이 공직자나 언론인이 공적 관심사에 관해 올린 글 등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는 삭제 실행의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향후 이 기준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하다.



걱정되는 언론 중재법 개정안


언론중재위원회가 2015년 10월 공개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인터넷 게시물이 아닌 언론 보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법될 경우 언론 환경에 끼칠 영향이 심대하다. 개정안은 2013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사이버상에서 인격권 침해배제청구권을 도입해 기사 삭제를 명문화하려는 시도다. 2013년 대법원 판결은 인격권 법리를 동원해 기사 삭제 청구권을 인정했다. 언론중재위가 내놓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언론 보도 기사를 인터넷과 데이터베이스에서 없앨 수 있게 기사 삭제 청구권 조항이 들어 있다.


현 언론중재법상 언론 피해 구제 수단으로는 정정보도, 반론보도, 추후보도 청구권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환경에서 피해를 구제하는 수단으로는 미흡해 기사 삭제와 수정 청구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정보통신망상의 인격권에 기한 침해배제청구권’ 조항을 신설해 인터넷에서 허위 언론보도 또는 사생활 침해 보도로 피해를 당하는 경우 기사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청구권을 신설했다. 또 언론 보도 이후 사정 변경으로 현저히 부정확한 보도로 드러나 인격권이 침해당한 경우 언론사에 해당 보도내용을 수정하도록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신설했다. 개정안은 침해배제청구권의 행사 시한을 청구인이 침해 행위를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1년으로 규정해, 보도이후 6개월로 되어 있던 정정 보도 청구 시한도 사실상 폐지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보도물에 직접 적용된다는 점에서 방통위의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 라인과 달리 언론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법안이다. 언론중재위원회는 개정안 해설에서 기사 삭제 청구권의 조건을 오보로 판명된 경우와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로 한정해 언론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추진하는 기사 삭제 청구권은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언론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높아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보도된 언론 기사를 삭제할 수 있도록 청구권이 설정되어 있다는 것은 문제다. 오보도 이미 보도 된 이상 그 자체로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역사적 기록이 되는 것인데, 이를 추후의 사정 변경 등으로 인해 삭제한다는 것은 언론 자유와 보도 기능에 중대한 제약 조건이 될 수 있다. 언론 보도는 시간의 제약과 취재 조건의 한계로 인해 오보가 될 수 있다. 오보나 부정확한 보도가 인터넷에서 계속 전파되어 광범하고 지속적인 피해를 가져오는 것은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일이다. 정보통신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롭게 생겨난, 언론으로 인한 피해 상황일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시도로 ‘잊힐 권리’가 등장한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새로운 유형의 언론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시도를 언론에 적용하는 데는 주의가 요구된다. 광범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하고, 민주사회에서 언론이 갖는 고유한 속성을 충분히 고려해야한다.



기사 보존과 접근성은 분리해야


2014년 유럽연합 사법재판소가 내린 ‘잊힐 권리’ 판결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판결은 스페인 신문이 인터넷으로 서비스하고 있는 과거 지면의 내용을 삭제하라고 하지 않았다. 구글에서 특정인의 이름으로 검색했을 때 노출되는 검색 결과 화면에서 특정인 관련정보로 연결되는 링크만 삭제하도록 했다. 즉 인터넷에서 부정확하거나 불충분한 보도를 언론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검색 결과 링크만을 삭제하도록 한 판결이다. 국내 언론중재법도 언론사가 서비스하고 있는 원본 기사나 데이터베이스를 유지하면서 오보나 부정확한 보도로 인한 언론 피해를 실질적으로 막을 방안을 모색하도록 해야 한다. 기사는 언론사 데이터베이스나 서버에 그대로 보존하고, 인터넷 검색에서만 링크를 제거하거나 차단하는 형태의 방법이 가능하다. 기사의 보존과 기사의 접근성을 분리하는 방법이다.


뉴욕타임스는 2003년 5월 촉망받던 기자 제이슨 블레어(Jayson Blair)가 써온 기사 대부분이 조작·날조되고 베낀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신뢰도에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오보를 넘어 완벽한 날조 기사이고 자신들의 치부이지만 뉴욕타임스는 해당 기사를 삭제하지 않았다. 지금도 뉴욕타임스는 해당 기사를 인터넷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제이슨 블레어가 쓴 문제의 기사마다 안내글이 첨부돼 있다. “이 기사는 제이슨 블레어가 날조한 기사입니다”라는 글이다. 뉴욕타임스의 날조기사에 대한 태도는 ‘잊힐 권리’ 적용에 앞서, 언론이 인터넷 환경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앞으로 ‘잊힐 권리’ 논의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참고 자료]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6년 7월호



  1. 심대(甚大)하다 : 매우 크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