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공의 열쇳말 ‘저널리즘·독자·관여’

2016. 8. 1. 13:1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서은영, 서울경제신문 전략기획실 기자


[요약] 2016 제23회 세계편집인포럼(WEF, 6.12~14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참관기



▲ 뱅상 페레뉴 세계뉴스미디어협회 이사장은 독자층 확대를 위해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소속감 △몰입도 높은 콘텐츠 △문제에 대한 해결책

△믿을 만한 정보 등 4가지 핵심 요소를 독자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출처: WAN-IFRA)



#질 높은 콘텐츠가 저널리즘 살린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지난 2000년은 국내 미디어 산업역사에 새로운 페이지가 열린 해로 기록된다. 온라인 경제매체를 표방한 머니투데이가 설립됐고 이듬해 같은 포맷의 이데일리가 창간됐다. 뒤이어 정치 뉴스 전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이 잇따라 얼굴을 내밀었다. 이들은 윤전기로 대변되는 기성 매체의 높은 문턱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광복 이래 단 한 번도 변화하지 못했던 미디어 시장에 균열이 나타났다.


그러나 1세대 온라인 저널리즘의 혁신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온라인의 참신함은 부작용으로 변질해갔다. ‘독자에게 충성한다’는 핑계를 대며 온라인 저널리즘은 페이지뷰를 신흥종교로 모셨다. 디지털 저널리즘의 가장 낮은 단계인 속보 경쟁과 어뷰징[각주:1]이 판치면서 사회 통합을 위해 쓰여야 할 저널리즘이 오히려 그것을 가로막는 장벽이 됐다. 세계 미디어 교과서에 기록될 정도의 온라인 실험을 전개했던 우리의 미디어 산업은 지금도 이렇게 표류하고 있다.


이번 포럼은 행사가 열린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1,300마일(비행기 5시간 거리) 떨어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수십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 지 몇 시간 뒤 막을 올렸다. 포럼에 모인 기자 사이에서도 미국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꼽히는 올랜도 사건은 당연히 이슈였다. 복스미디어의 공동 창업자인 멜리사벨 총괄 부사장은 무대에 오른 직후 이런 말을 했다. 


“참혹한 올랜도 사건을 접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했을까. 언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거듭 고민했다.”


자조가 아니었다. 어떤 기사로 사회에 기여하고 독자에게 충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좀 더 발전적인 물음이다. 순수 디지털 뉴스 플레이어인 복스는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에 따라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설명 저널리즘(Explanatory Journalism)’의 대명사로 꼽히는 매체다. 올랜도 사건 직후 복스는 ‘올랜도 사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들(Pulse gay nightclub shooting in Orlando: what we know)’, ‘동성애자들을 혐오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법안을 반대한 의원 리스트(Here are the members of Congress who voted against protecting gay people from hate crimes)’ 같은 심층 진단 기사를 쏟아내며 반향을 일으켰다. 독자의 눈높이에서 미디어가 어떤 뉴스를 생산하고 사회에 기여할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복스를 포함, 디지털 전환의 성공 사례를 발표한 모든 매체의 열쇳말[각주:2]에는 ‘고품질 저널리즘’이 자리 잡았다. 파산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프랑스 르몽드의 루이드레퓌스 발행인도 “경쟁사 대부분은 인력을 줄이고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기자에게 투자하고 있다. 차별화한, 질 높은 콘텐츠만이 저널리즘을 구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클릭에서 클락으로 바꿔라


물론 저널리즘이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경제의 웹 사이트만 놓고 봐도 저널리즘을 만병통치약으로 내세우기 어렵다. 주요 검색어를 조합해 물건 찍어내듯 만든 기사들이 공들여 쓴 기사들을 짓누르는 현실은 매일같이 반복된다. 하지만 저널리즘이라는 기본 원칙에 충실한 매체만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그들의 충고는 되새겨볼 만하다.


클릭에 연연하지 말라는 조언은 광고에서도 유효하다. 실제로 대다수 미디어 웹 사이트에서 클릭 베이스의 광고 단가(CPM)는 계속해서 바닥을 치고 있다. 독자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뉴스를 소비하고자 애드블로킹(Ad Blocking)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거나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 같은 제3의 플랫폼을 찾게 됐다. 구독료를 제외한 거의 유일한 디지털 수익원이 증발하는 셈이다. 애드블로킹 피해는 아직 없지만 뉴스 페이지에 빈 곳을 허락하지 않는 대다수 국내 뉴스 미디어의 장래도 밝지 않다.


‘클릭에서 클락(Clock, 시간)’으로 미디어의 마케팅 언어가 변신을 꾀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후안 세뇨르 이노베이션 마케팅그룹 대표는 “페이지뷰 기반의 광고는 양질의 뉴스와 양립할 수 없다. 콘텐츠 소비 시간과 재방문율을 함숫값으로 하는 관여(Engagement)를 기반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성공의 또 다른 열쇳말은 ‘독자’와 ‘관여’다. “어째서 언론사들이 콘텐츠 공급자로 전락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뉴스 플랫폼에 진출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우문(愚問)이 돼버렸다. “그곳에 독자가 있다.”는 현명한 대답이 언제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세계편집인포럼 일정 중 하나인 구글 주최 조찬 간담회에서

구글 관계자가 AMP, 프로젝트 쉴드, 뉴스랩 등

구글의 미디어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WAN-IFRA 제공)




#독자를 향한 끊임없는 구애


에밀리오 가르시아 루이즈 워싱턴포스트 디지털 부문 편집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기사를 읽는 독자가 2년 만에 60%에서 20%로 뚝 떨어지고 유통 플랫폼을 통해 유입되는 독자 비율이 반대로 60%로 올라선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게 조직을 정비했다. 앞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입되는 독자 비중은 80~90%까지 높아질 것이다. 구독 모델을 세분화해 소셜 미디어로 유입된 독자를 유료 독자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도 대전제가 있다. 끊임없이 미디어의 브랜드를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컨설턴트인 마리오 가르시아 박사는 “굳이 홈페이지로 접속하지 않아도 모든 뉴스 페이지를 볼 때마다 미디어 브랜드를 인지하도록 로고와 브랜드 색채 등을 적극적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플랫폼만 바라보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댓글을 분석하고 독자와 대화하는 일은 미래 전략을 짜는 바탕이다. 자사 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플랫폼에서 최대한 긁어모은 독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독자가 우리 매체를 다시 찾고 꾸준히 뉴스를 소비하는지 분석하라는 충고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사적 커뮤니케이션 공간인 ‘메시징 앱(Messaging App)’은 매체와 독자의 관계를 굳건하게 하는 도구로 화려하게 변신하고 있다. 메시지 자동 폭파 기능을 갖춘 채팅 앱으로 10대들의 전유물로 치부됐던 스냅챗이 주요 뉴스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진지한 저널리즘의 대명사인 르몽드마저 오는 9월 스냅챗 서비스 출시를 예고했다. 고품격 경제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쿼츠가 지난 2월 선보인 대화형 뉴스 앱 외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메시징 앱 가운데선 와츠앱(BBC·가디언), 텔레그램(폴리티봇) 등이 대화형 뉴스 플랫폼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강연 도중 흥미를 느껴 구독을 신청한 폴리티봇(Politibot)[각주:3]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묻고 있다. 스페인 총선에 대해 알고 싶은 뉴스가 있느냐고. 간단한 문답인데도 생소한 스페인어를 사전까지 찾아 해석하며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쌓이는 친밀감은 덤이다. 물론 이 덤은 쌓이고 쌓여 브랜드의 자산이 될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21세기 뉴스노믹스를 이끄는 두 가지 키워드는 How와 Why라고. 이것이 저널리즘의 바탕을 이룰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더는 What을 묻는 독자는 없는데도 What을 확대 재생산하기만 한다. 독자는 저널리즘에 묻고 있다. 왜 그런지.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 저널리즘이 답할 차례다.




[참고 자료]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6년 7월호



  1. 어뷰징(abusing) : 사전적 의미로는 「오용, 남용, 폐해, 학대」 등을 뜻하는 말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통한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중복·반복기사를 전송하거나 인기 검색어에 올리기 위해 클릭 수를 조작하는 행위 [본문으로]
  2. 열쇳말 : 키워드(keyword)라는 단어를 순우리말로 바꾼 말 [본문으로]
  3. 폴리티봇(Politibot) : 6월 스페인 총선을 겨냥해 기자·개발자 등이 개발한 챗봇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