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운대> 윤제균 감독이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원천은?

2011. 9. 20. 13:15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한 줄의 광고카피가 주는 매력, 마음을 울리는 시나 소설. 우리는 주변에서 각종 매체를 통해 짧은 글에 감동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이 떠오르고 또 이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라고 느끼며 글을 쓴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 전달의 기법은 마음먹는다고 쉽게 키울 수 없는 능력일텐데요.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내면에 쌓이고 쌓여서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나온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이런 능력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멋진 광고카피를 만들거나 책을 쓰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오랫동안 읽기를 즐겼고, 주변의 다양한 현상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 전달의 묘미는 영화를 통해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관객들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만들고,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영화야말로 스토리텔링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에게도 무척 익숙한 <해운대> ‘윤제균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스토리텔링 원천이 무엇인지 들어봤는데요. 아이디어는 결국 읽기와 쓰기를 통해 완성된다는 그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내가 보고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 이것이 정답


감독님은 워낙 많은 히트작을 제작하셔서 모르시는 분들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요즘 근황이 궁금한데요. 혹시 준비하고 계신 작품에 대해 살짝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올 여름 영화 <퀵>과 <7광구>를 개봉했는데 사실 생각보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요즘 다운돼있는 것이 사실이에요.(웃음) 하지만 앞으로가 중요하죠. 앞으로 제작해야 할 영화들에 대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작 중인 <댄싱퀸>이라는 영화는 촬영이 막바지에 다다랐고요, 직접 연출하는 작품으로는 미국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는 가족이 미스터리한 세계에 빠져드는 가족 어드벤처물 <템플스테이>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독으로서 많은 작품을 연출하셨지만, 각본가로 또 제작자(내 깡패 같은 애인, 퀵, 7광구 등)로 나서서 많은 활동을 펼치셨습니다. 실제 감독을 맡으신 것보다는 제작자로 참여하신 작품이 더 많은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감독, 제작, 각본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제가 제작을 더 많이 맡는 이유는, 작품을 더 많이 만들고 싶긴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감독은 1, 2년에 한 작품 정도 밖에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감독만 해서는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유능한 다른 감독들을 모시고 제가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 제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감독’이란 말 그대로 현장에 나가서 연출을 하는 사람이죠. ‘제작’은 쉽게 이야기하자면 전체 작품에 대해 투자를 받고, 캐스팅과 제작 관리를 하고, 전반적인 책임을 맡는 것입니다. 

감독의 경우 작품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고 할 수 있지만 제작은 작품 외에 그 이면에 있는 다양한 일들을 전반적으로 돌보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프로듀서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또한 ‘각본’은 시나리오만 맡는 것이죠. 감독은 영화 촬영의 아버지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고, 제작은 어머니라고 비유할 수 있겠네요.


직접 연출을 맡으신 작품들을 보면 <두사부일체>를 비롯해, <색즉시공>, <낭만자객>, <1번가의 기적> 등 주로 액션 코미디물을 제작하시다가 2009년 <해운대>라는 스펙터클한 작품을 만드셨는데요. 작품 장르가 이렇게 갑자기 바뀌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해운대 같은 경우는 처음 이것을 영화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2004년 동남아 쓰나미 때였어요. 당시 제가 해운대에 있었는데 한여름에 100만 인파가 모이는 것을 보고 ‘만약 이곳에 쓰나미가 온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니 꼭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운대를 만들고 처음에는 천만 관객이 넘을 거라는 생각조차 못했죠. 그저 저를 믿고 투자해준 사람들에게 손해만 주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너무 잘돼서 놀라웠습니다. 

저는 사실 영화를 만드는 데 장르보다는 관객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을까 보고 싶지 않을까와 같은 기준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장르에 대해 그렇게 크게 고민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보다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라는 것이죠.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것' 스토리텔링의 기본
 


감독님께서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활약하시던 중,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으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출 뿐만 아니라 기획, 제작, 각본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하고 계신데요. 광고, 카피라이터, 그리고 영화 등의 일은 결국 스토리텔링 능력이 기반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감독님의 스토리텔링 원천은 무엇인가요?


 


"많이 읽고 써라” 이 말이 정답이에요. 제가 작가출신인데요. 모든 시나리오를 쓰고 작업을 할 때에는 항상 제가 읽었던 것들이 다 소재로 들어갔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읽었던 것들이 다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를 내더라구요. 제가 처음 썼던 시나리오가 ‘신혼여행’이라는 시나리오였어요. 그 시나리오는 단체 신혼여행을 갔던 신혼여행단 안에서 벌어지는 내용이죠. 

그냥 단순히 신혼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수 없으니 어떤 내용을 담을까 생각했는데요. 당시 제가 읽고 있었던 것 중에 문국진 박사의 ‘지상하’라는 책이 있었어요. 법의학 관련 서적이었는데 그 안에 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신혼여행이라는 시나리오에 섞었는데 내용이 좋아서 당선이 됐었죠.

그리고 두사부일체의 경우 학생과 조폭이 결합된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제가 영화를 통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1993년도에 있었던 ‘상문고 사건’ 이었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회적으로 상당히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었죠. 

그 사태를 통해 신문과 방송의 자료들을 보고 이 영화 안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만든 작품이죠.

이처럼 결국은 많이 읽고 경험한 것들 중에서 아이디어가 나오더라구요. 절대로 무에서 유가 창조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신문이나 책 안에서 모든 걸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분을 참고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다양한 분야를 많이 접하고 읽고 쓰는 것이 결국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기본이니까요.

어려서부터 책을 읽다보니 그냥 재미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에는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었고, 텔레비전이 있는 집도 많지 않았죠. 그래서 책을 통해 저만의 세계를 항상 그리고 있었어요. 지금은 너무 매체가 많잖아요. 이렇게 많은 매체가 있지만 그래도 대학생들이나 젊은 세대는 책이나 신문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 SNS... '읽기'아닌 '놀이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쉬워
 


이번 9월 21일 <리더스 콘서트> 춘천 특강에서 ‘모든 크리에이티브의 출발, 읽기’ 라는 주제로 강연하실 예정인데요. 말씀하신대로 많은 창작능력이 ‘읽기’에서 비롯됨에도 불구하고 요즘 젊은이들은 신문이나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을 통한 인스턴트식 정보 흡수가 우려되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리더스 콘서트를 통해서 단순하게 “책을 많이 봐라, 신문을 읽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데 이게 사실 설득력은 없어요. 하지만 분명히 저 같은 경우 아침마다 신문을 읽고 항상 책도 많이 보면서 느낀 것은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읽기에 편식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더라구요.

신문을 읽다보면 정치 전문가들이 말하는 내용들이 편향적인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많이 읽으면 결국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꼭 신문이나 책만 봐야 한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인터넷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아요. 매체에 관계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는 인터넷을 ‘읽기’의 대상 보다는 ‘놀이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겠죠.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읽고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요즘 소위 말하는 SNS, 소셜 네트워크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경향이 많으니까 그것은 조금 문제겠죠.

소셜 네트워크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이 있겠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적은 글들과 의견들을 많이 읽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넷이 이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요즘은 또래들끼리, 친구들끼리의 친목 모임으로만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이렇게 하면 결국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정보밖에 습득하지 못해요. 결국은 보고 싶고 읽고 싶은 것만 고르는 거죠. 편식은 정말 좋지 않은데 말이에요. 

하루에 5시간 동안 인터넷을 한다면 일부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 나머지 반은 나와 관계없고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글도 접하고 읽는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에 좌파와 우파가 나뉘어서 싸운다는 것만 알고 나도 둘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그 둘의 의견과 생각을 알고, 열린 입장에서 많은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만들어야지 한가지 시각으로만 만들면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야말로 궁극적으로 다양한 의견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다수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영화감독을 꿈꾸는 모든 젊은 세대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생활화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고 있는 그는 당장 앞의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10년 뒤 혹은 그 후를 바라보고 미래를 그리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의 인생에 빗대어 이야기했습니다. 

항상 역지사지의 정신을 마음에 품고 있는 윤 감독은 그래서 작업을 할 때 모든 스태프들의 이름을 외워서 불러주는 것이 그의 가장 중요한 소통법이라고 했는데요. 

또한 그는 가끔씩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직접 찾아가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함께 영화를 보며, 자신의 영화로 인해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감독이었습니다.

수익과 관객수에 연연하는 감독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메가폰을 잡아, 우리영화를 전세계에 빛낼 수 있는 명감독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