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ile_menu

‘여성과 언론, 자유와 평등의 횃불을 드높이다’


서현정, 2016 다독다독 기자단


[요약]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여성언론사를 표상하는 언론인과 이야기하는 여성과 언론, 자유와 평등의 횃불을 드높이다라는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척박한 사회 분위기 속 고군분투했던 여기자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2016,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이라는 화두가 뜨겁게 오고가는 나날이다. 그 나날들 속에 여성사 박물관의 건립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여성의 역사, 대한민국 미래를 품다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고 있는 여성사 박물관 건립 추진운동은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역사를 바라보며 이를 대중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박물관의 한 칸에는 여성 언론인들의 기록이 담길 예정이다.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불모지로 일컬어져 왔던 언론계에서 살아남았던 이들의 업적과 활동은 한국 여성사를 정립하는 데에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건립에 앞서 여성언론사를 표상하는 언론인들이 모이는 포럼이 마련됐다. 지난 2일 국회의사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여성과 언론, 자유와 평등의 횃불을 드높이다에는 홍은희 명지대 교수, 권태선 한겨레 전 편집국장, 김효선 여성신문 대표, 채경옥 한국여기자협회장, 그리고 조선일보의 추계 최은희 기자의 아들, 이달순 전 수원대 총장 등이 자리했다. 회의실 안 공기는 진중하고 묵직했으며 이따금 나오는 최은희 여사의 회고 기록에 다함께 웃음 짓기도 했다


왼쪽부터 김효선 여성신문대표, 이달순 전 수원대총장, 홍은희 명지대교수, 권태선 전 한겨레 편집국장,
채경옥 한국여기자협회회장. ([()역사여성미래/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제공)



포럼은 이원복 대표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나경원, 조배숙 국회의원의 축사에 이어 이달순 전 총장의 유물증정식 순으로 진행되었다. 2부는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안으로는 불평등한 사회 [각주:1]인습과 싸우며 밖으로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여 평등한 삶을 누리게 하려는데 앞장서온 이들이라며 여기자들의 활약상을 한 마디로 축약하며 여기자가 해왔던 일들을 언론의 민주화와 사회적 약자의 권익보호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했. 첫째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해고사건과 같이 한국의 민주화와 직결되었던 언론의 민주화 실천 운동에 투쟁하고 희생당했던 여기자들의 기록이었. 둘째는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행동에 여성 언론인들의 공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여기자들은 문화부와 같은 한정된 부서에만 발령받았기에 성차별적 관행들을 몸소 겪었다. 여성 언론계는 이러한 여성의 삶을 대변하고 온상을 드러내고자 이와 관련된 많은 보도를 내보냈고, 단체행동으로 몇 가지 성과를 도출하기도 했다. 여성차별 정년제를 철폐시키고, 여성결혼 퇴직제가 만연했던 관행을 뿌리뽑고, 정계에서 여성할당제에 대한 인식을 불어넣었으며, 성희롱과 같은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놓았다. 1988년 여성신문의 설립이 그 노력들이 결실을 맺었음을 증명한다. 홍은희 교수는 언론의 본질적 차원에서 다수의 여성 언론인들이 무엇을 추구하고자 하였는가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야 한며 전달자로서의 여성 언론인들의 역할과 함께 투쟁했던 의미를 역설하며 강연의 마무리를 지었다.


그 후 이어진 토크테이블에서는 권태선 한겨레 전 편집국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홍은희 교수가 앞서 말했던 1980년 언론 민주화에 앞장서 해직되었던 여기자들 중 한 명인 그녀는 이 자리가 여기자로서 살아온 삶을 인정받는 느낌이라며 [각주:2]소회를 밝혔다. 그녀는 1988년 한겨레 창간은 여기자에게도 진일보하는 계기였다며 한겨레가 국장이 아닌 편집위원장 체제를 도입했고 여성면을 정기적으로 발간하며 호주제 폐지와 같은 여성에 대한 인식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여성사박물관의 설립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문장을 힘주어 말했다. 여기자들이 긍정적 역사만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독재 비호와 친일과 같은 [각주:3]사적 [각주:4]영달을 추구한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좋든 나쁘든 다시보고 반성하며 어떤 점을 계승할까, 어떤 여기자가 될까 생각해보아야합니다.”


다음은 채경옥 한국여기자협회 회장이 말을 이어나갔다. “선진국의 기준은 역사를 얼마나 디테일하게 바라보고 갈구하는가이다.” 라며 입을 뗀 그녀는 마이크로(micro)한 역사를 복원하는 것, 특히 그 중 가장 마이크로한 여성의 문제를 되짚어 보는 것은 유의미한 것이라 말했다. 현재 한국 여기자 협회에 가입돼 있는 여기자는 1100명을 헤아리며 5년차 이하 기자들 중 여기자의 구성이 60%대에 육박한다. 여기자의 분포는 나날이 늘어가지만 그 증가는 바닥에만 한정되어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수가 적어지는 유리천장의 실재를 언급하였다. 그녀는 여성할당제를 미리 도입한 국가는 현재 경제가 탄탄하다며 우리나라 또한 제도적 변화와 시스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여기자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여기자는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배려, 관용 등 더 나은 가치관을 위해 여성, 그리고 여기자들이 해내야할 역할이 큽니다.”


마지막 라운드테이블은 김효선 여성신문 대표가 장식했다. 1988122일 여성신문의 창간은 1987년 이루어졌던 민주화의 봄과 함께 이루어진 여성운동의 일환이었다며 여성신문은 여성의 문제를 깊게 고찰할 뿐만 아니라 일간지를 분석하여 여성에 대한 언론의 폭격을 다시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최은희 기자를 비롯하여 여성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던 여성운동 1.0시대, 그리고 여성학, 구조 차별, 어젠다 등이 대두된 여성운동 2.0 시대를 지나 여성을 하나의 파트너쉽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양성평등의 주류화와 he for she 운동의 전개를 이야기하는 여성운동 3.0시대를 현재 맞이하고 있다 말했다. 그녀는 여성이 조금 더 정의로워졌음 좋겠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역사여성미래/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제공)


여성 언론계의 한 획을 그었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나누는 수많은 문장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었고 하나의 역사였다. 그 마디들이 공기 중에 부유하다 사라지지않게 종이에 열심히 꾹꾹 눌러썼다.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지 사회를 보시던 기계형 사무총장께서 어린 학생들도 자리했는데라며 내게 질문할 기회를 주셨다. 재빨리 마이크를 켜 한국사회에서 유리천장, 남자를 선호하는 취재현장, 많은 인적 네트워크와 성별이 치우친 취재원들 등 여기자를 꿈꾸는 한 명의 대학생으로서 걱정되는 점들을 물었다. 채경옥 회장은 여기자의 채용 현황은 높으며 여자 취재원을 만났을 때 생기는 유대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조언해주었다. 권태선 전 편집국장은 현재 한겨레는 남성들에게도 육아휴직을 줄 만큼 휴직제도가 발달되어있으니 한겨레에 들어오는 것은 어떠냐며 농담 섞인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덧붙여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기자가 놓여있는 위치는 낮다며 그만큼 더욱 뛰고 견뎌야함을 말했다.


지금보다 훨씬 척박한 사회 속 고군분투했던 여기자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2016년 오늘날에도 성차별적 관행, 인습이 완강히 버티는 사회이다. 아직까지도 그러한 차별은 만연해있는데 여기자라는 워딩에서부터도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한다. 왜 우리는 성별로 특정되는 것인가. 이제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회에서는 여기자라는 워딩이 어색해지길 바란다. 이처럼 여성이 직면한 많은 문제들의 존재는 한편으로는 이 시대 남은 자들이 또 다른 횃불을 드높여야할 이유이다. 당당했던 여성들의 족적을 기억함과 동시에 여성으로서 의제를 던지고 고찰하고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자 과제가 될 것이다.




  1. 인습 : 이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습관 [본문으로]
  2. 소회 : 마음에 품고 있는 회포 [본문으로]
  3. 사적 : 개인에 관계된. 또는 그런 것 [본문으로]
  4. 영달 : 지위가 높고 귀하게 됨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댓글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