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 등장한 ‘워터게이트의 추억’

2016. 12. 5. 12: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이규연, JTBC 탐사기획국장·JTBC '스포트라이트' 진행자


[요약] 워싱턴포스트가 미국의 유력지로 거듭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돼 체포된 미국의 정치적 사건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이번 미국 제45대 대통령 선거 때 다시금 재조명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극적인 역사는 1972년 6월, 미국 워싱턴DC 워터 게이트 호텔에서 벌어진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선거본부인 ‘전국위원회’가 이 호텔에 위치해 있었다. 배관공으로 위장한 정보부 요원들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건물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한다. 하지만 호텔 경비원이 외부인의 침입 흔적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을 수색하다가 5명을 체포한다. 이들은 도청 장치를 갖고 있었다. 이전에 이 호텔에 도청기를 설치했음이 드러난다. 현행범 중 한 명은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의 수석 경호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또 다른 현행범은 CIA 전직 직원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 진영은 “3급 절도에 불과하다”며 연관설을 부인한다. 이 사건 자체는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공화당 후보인 닉슨은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됐다.



#기자 초년생의 끈질긴 추적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의 초년병 기자인 밥 우드워드(사회부)와 칼 번스타인(정치부)이 이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탐사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우드워드는 ‘딥 스로트(Deep Throat)’, 즉 은밀한 내부 제보자에게서 힌트를 얻으며, 정보부와 닉슨 진영이 이 사건의 배후일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를 이어간다. 훗날인 2005년, FBI 부국장인 마크 펠트가 자신이 ‘딥 스로트’임을 밝혔다.


닉슨 진영은 법무부를 통해 FBI에 수사 압력을 넣지만 수사는 계속된다. 결국 관계자들이 기소됨에 따라 이듬해인 1973년 재판이 시작됐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닉슨의 최측근들이 도청과 사건 은폐에 관여했음이 드러난다. 과연, 닉슨 대통령은 은폐 사실을 직접 보고받았을까? 또 사건 은폐에 관여했을까? 관련자들이 입을 다물면 밝혀내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데 의회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백악관의 모든 전화 내용이 녹음되고 있었다. 법원은 그 녹음 기록을 검사에게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닉슨 대통령이 직접 사건 은폐에 개입했음이 드러난다. 의회에서 탄핵 절차가 진행되자 궁지에 물린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사임한다. 미국 대통령이 임기 도중 사임한 것은 최초의 일이다.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이 보도를 계기로 미국의 유력지로 거듭난다.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에 개입해 직접 은폐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

결국 1974년 8월 미국 대통령 최초로 임기 도중 사임하게 된다. <사진출처-뉴욕타임스>


불법 침입한 범인들은 자신들이 “반공주의자”라고 주장했다. 나름대로의 애국심 때문에 범행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두 기자는 이들의 입 맞추기를 하나하나 캐며 공화당의 불법 침입과 도청 사실을 폭로해 나간다. 취재 과정에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불법 침입한 범인에게서 압수한 수첩에는 ‘하워드 헌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닉슨의 경호 주임이었다. 우드워드는 전화번호부에 나온 이름을 뒤져 전화했지만 누구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우드워드가 대뜸 백악관에 전화해 “하워드 헌트를 바꿔 달라”고 요구하자, 교환원은 아무 생각 없이 내선으로 연결해 준다. 그사이 번스타인은 닉슨 진영의 선거자금 일부가 범인에게 흘러간 증거를 찾아낸다.



#2016 대선, 되풀이되는 워터게이트?


2016년 7월 22일, 폭로 전문 매체인 위키리크스가 민주당 전국위원회 고위 인사들이 버니 샌더스 후보를 비방하고 클린턴 후보를 옹호한 내용을 담은 이메일 1만 9,000여 건을 공개한다.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클린턴 후보에게 유리한 쪽으로 경선을 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었다. 경선을 공정하게 진행해야 할 전국위원회가 편파 진행을 했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44년 전 워터게이트 사건에서처럼 민주당 전국위원회 자료가 유출된 것이다. 유출 방식이 도청이 아닌 해킹이며, 유출 주체가 CIA가 아닌 인터넷 사이트(러시아 정부 의혹)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미국의 일부 언론들은 이 사건을 ‘워터게이트의 재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라는 무대도 그렇지만, 선거 공정성이라는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뿐만 아니라 트럼프 역시 ‘워터 게이트 폭로의 주역’과 싸우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기자 수십 명으로 팀을 꾸려 트럼프의 비리를 캔다. 워터게이트 특종의 주역인 밥 우드워드 대기자는 공식 석상에서 “트럼프 삶 전반에 대해 많은 기사를 준비 중”이라며 “특히 트럼프 부동산을 탐사한다”고 말했다.


워터게이트 보도는 정치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 준다. 주거 침입 사건이라는 단순한 사건을 파헤쳐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내용을 드러낸다. 대선의 불공정과 정치인의 비리, 대통령의 거짓말이라는 중대한 사안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부도덕한 대통령의 하야라는 엄청난 정치적 변혁을 가져다 준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워터게이트가 재조명되는 것은 이 사건과 보도가 갖는 힘이 결코 당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