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유성룡’과 희망멘토 ‘안철수’ 교수의 공통점

2011. 10. 17. 13:1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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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스저널(WSJ)’에 한국의 사교육 열풍이 1면 기사로 실렸는데요. 신문은 자녀 교육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며 “학부모들의 자녀 교육열이 매우 강해 이를 누그러뜨리려는 정부 당국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고 비유했죠. 

자녀 교육 열풍은 비단 오늘날에만 화두가 된 것이 아닌데요. 조선시대에도 명문가들의 혹독한 자녀교육은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평범한 자녀를 최고의 인재로 키워낸 비밀은 바로 독서 교육에 있었는데요. 독서 칼럼니스트인 이상주 씨의 책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을 보면 당대의 공부 환경과 독서 요령, 그리고 글쓰기 방법에 대한 폭넓은 사례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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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율곡 이이의 공부법, ‘먼저 뜻을 세운 뒤 행하라’ 

이이는 조선에서 유일하게 과거에 모두 장원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불리는 천재였죠. 학문이 높은 율곡은 42세에 격몽요결을 지었고, 47세에 이조판서에 올라, 48세에는 임진왜란을 예상, 시무육조(時務六條)를 계진하고 십만양병을 주청하기도 했습니다. 

율곡이 황해도 해주에 살 때 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찾아왔는데요. 하지만 그는 공부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알지 못해 스승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율곡은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1577년에 ‘격몽요결’을 완성했죠. 

‘어리석음을 없애는 비결’이라는 뜻의 이 책은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이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요. 율곡은 먼저 뜻을 세운 뒤 몸을 닦고 행하라고 권면했습니다. 학문을 하려는 이라면 먼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매일 목표한 공부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율곡 자신도 공부에 진력해 낡고 좋지 않은 습관에 빠지는 걸 늘 경계했는데요. 그는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 큰 뜻을 세우지 않고 강한 의지가 없이 배우겠다고만 하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공부에 있어서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러주는 말이라고도 볼 수 있죠. 
 



제자를 친구처럼 대했던 이황, ‘공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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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사전 민족문화대백과> 


조선 명종 선조 때의 학자인 퇴계 이황은 ‘동방의 주자’로 불리며 당대 조선 사회에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이황의 남다른 학문적 성취는 그의 교육관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가훈집인 ‘퇴계가훈(退溪家訓)’을 보면 이황은 제자를 아랫사람이 아닌 친구로 대했고, 공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황이 평소 자주 했던 말은 ‘하처 불가독 하시 불가학(何處 不可讀 何時 不可學)’인데요. ‘언제 어디서나 책읽기를 멈추지 말고, 항상 공부하고 배우라’는 뜻입니다. 그는 스물세 살에 얻은 아들 준(寯)에게도 이러한 독서법을 강조했죠. 

“책을 읽고 공부하는 데 장소를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서울에서 공부하든 시골에서 책을 읽든 성패는 오직 뜻을 세우는 것에 달려 있다. 최선을 다해 매일 공부해야 한다.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서는 안 된다.”



“도무지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야!” 이렇게 푸념하는 학생들에게 어른들은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를 댄다”고 나무라곤 하는데요. 하지만 이황에 따르면 공부 분위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아들이 공부에 전념하지 않음을 질책한 뒤 “공부 열의가 높은 벗과 함께 절에 들어가 긴 겨울날 부지런히 책을 읽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이황은 특히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성품과 행실이 바르지 않아 예의차림을 비난하거나 현명한 위인을 욕하고 여러 동료에게 피해를 끼치고, 바른 길을 따르지 않으면 학생들은 의논하여 그를 쫓아내라”고 말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공부하되, 의문이 날 때가 아니면 옆방의 동료를 찾아가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죠. 
 



‘젊은이들이 성공만 쫓으면 안 된다’ 유성룡의 남다른 교육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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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이황의 제자이자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유성룡 또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를 지낸 그는 평소 문장과 글씨가 뛰어나고, 서애집, 징비록, 퇴계선생연보 등의 책을 쓴 것으로 알려졌죠. 

유성룡은 젊은 시절 바둑을 두면서 두뇌를 계발했다고 하는데요. 자녀에게는 유독 책 읽기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의 집안은 유성룡이 명종 때 벼슬에 오른 것을 포함해 고종 때가지 종손 9대가 내리 벼슬을 했는데요. 이는 집안에 끊이지 않는 책 읽는 소리 덕분이었죠. 

유성룡은 마흔 살에 얻은 아들 유진에게 글을 직접 가르쳤고, 유진이 열 살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틈틈이 글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이런 노력 끝에 유진은 스물여덟 살에 진사시험에서 장원으로 합격할 수 있었죠. 

‘서애교자훈’을 보면 그의 자녀 교육관이 잘 드러나 있는데요. 유성룡은 아들에게 글을 주면서 “비록 세상이 어지럽고 위태로워도 남자라면 공부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죠. ‘기제아’에서는 자신의 공부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 공부를 등한시하다가 열아홉 살에 관악산에 들어가 몇 개월 동안 맹자를 20번 읽고, 다음 해에 안동으로 내려가 춘추를 30번 읽은 뒤 과거에 합격했다. 그러나 책을 100번쯤 읽었으면 지금처럼 학문이 얕지 않았을 것이다.”


유성룡은 마치 오늘날 안철수 교수처럼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는 젊은이들이 세태에 휩쓸려 성공에만 몰두하는 현실을 개탄했는데요. “요즘 서울의 젊은이들은 빠른 성공만을 원한다. 옛 성현의 글이 담긴 책들은 다락방에 처박아두고 매일 남에 비위나 맞추는 글을 찾는다. 그리고 그 말을 도둑질해 시험 감독관의 눈에 띄도록 글을 지어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조선명문가 독서교육법>을 쓴 작가인 이상주 씨는 20여 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하며 한국의 전통 교육과 독서법에 관심을 가져왔는데요. 우리 교육과 독서에 관한 공부를 하다가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들의 교육방법으로 ‘독서’만한 것은 없습니다. 흔히, 어른들은 “공부도 다 때가 있다”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어렸을 때에 보고 느끼는 것이 가장 오래 남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서습관을 유아시절부터 들이면 깊은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요. 사교육도 좋지만 이젠 ‘독서’로 아이들에게 폭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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