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탈자는 곧 아오지행? 현직 기자가 말하는 ‘북한 신문의 모든 것’

2012. 5. 30. 11:34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북한이라는 사회의 특성상 신문이라는 것도 보나마나 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북한 신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북한 신문은 그 존재 목적뿐 아니라 구독 행태와 배달 방식, 신문사 운영 방법 등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신문과는 많이 다른데요! 다독다독 블로그에서는 그 동안 연재되었던 주성하 기자님의 글을 요약 정리하여 그동안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북한 신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경쟁이 없는 북한 신문 (http://www.dadoc.or.kr/39)

 

북한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동신문을 포함해 민주조선, 청년전위 등 16종의 일간지를 포함해 모두 30여종의 신문이 있습니다. 북한의 신문은 돈이 많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당에 충성한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 또한 아닌데요. 당에서 지정해 준 사람들, 즉 일정한 직책을 가진 간부만 볼 수 있으니 신문사끼리는 독자유치 경쟁을 할 필요가 전혀 없겠죠? 따라서 북한에서 신문사가 폐간된다면 그건 북한 통치자가 문을 닫으려고 지시했을 경우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통치자의 입장에선 강력한 대중 선전수단인 신문을 폐기시킬 이유는 전혀 없겠죠.

 

 

 

 

 

 

또한 북한 신문들의 중요한 특징으로 광고가 없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최근엔 평양신문에 아주 예외적으로 광고가 실리긴 하지만 이런 것도 당에서 선전을 해주라는 지시를 하달했기 때문에 실린 것이지 광고비를 받고 싣는 것은 아닙니다.

 

 

교열 실수하면 바로 ‘혁명화’ 직행 (http://www.dadoc.or.kr/66)

 

북한 신문에는 오자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오자를 냈을 때 엄청 심한 처벌을 받기 때문인데요. 교열 기자들이 실수로 김정일 관련 기사의 표현에 오자를 냈으면 그는 바로 ‘혁명화’를 가야 합니다. 혁명화라는 것은 힘든 노동현장에 가서 단련한다는 의미로 쓰는 말인데, 쉽게 말하면 물 좋은 사무직에서 노동자나 농민으로 강등 시킨다 이렇게 해석하면 됩니다. 경우에 따라 복직되는 경우도 있지만 영원히 농민으로 묻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말 무서운 곳이죠.

 

 

 

 

 


북한의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탈북자는 ‘김일성 원수님’을 ‘김일성 원쑤님’이라고 잘못 나갈 뻔한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에서 원쑤는 자기에게 원한이 맺힐 정도로 폐를 끼친 사람을 의미하는 ‘원수(怨讐)’와 같은 의미입니다. 다행히 인쇄 직전 발견돼 화는 면했다고 합니다.

 

또 한 번은 한 작은 신문에 ‘로동신문(우리는 ‘노동신문‘이라고 쓰지만 북한에선 ’로동신문‘으로 씁니다)’이 ‘로동신신’으로 인쇄돼 나갔는데 이 신문 주필이 6개월간 혁명화를 나갔다고 합니다. 작은 신문이 이 정도니 노동신문 같은 데서 오자가 발견됐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주 큰 대형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자는커녕 한국의 신문에서 다반사로 볼 수 있는 잘못된 띄어쓰기조차 찾기 힘듭니다.

 

북한 신문은 그 자체로 완벽한 북한 표준어 맞춤법칙 사전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신문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잡지와 같은 다른 출판들도 엄격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북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신문을 언론이라고 보기보단 선전매체로 보기에 가능한 일이죠. 수령의 권위와 위신에 관해서 사소한 잘못도 용서치 않고, 선전선동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지 않는 북한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회부, 스포츠부가 없는 북한 노동신문 편집국 (http://www.dadoc.or.kr/198)


사상을 중시하는 북한답게 노동신문 편집국의 편제 또한 좀 독특한데요. 모두 15개의 부서가 있습니다. 편집부, 당역사교양부, 혁명교양부, 당생활부, 대중사업부, 공업부, 농업부, 사회문화부, 과학교육부, 남조선부, 대외협력부, 국제부, 보도부, 사진보도부, 특파기자부입니다. 이중 당역사교양부, 혁명교양부, 당생활부, 대중사업부 4개 부가 한국 언론사의 정치부에 해당하는 역할을 합니다. 북한이 사상 선전을 얼마나 증시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죠.

 

 

 

 

 


한국 언론사에는 사회부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가장 많은 기자들이 배속돼 있습니다. 그리고 스포츠신문이 따로 있고 방송사에서도 스포츠 보도는 메인 뉴스에서 따로 분리할 정도로 스포츠 비중이 큽니다.

 

그런데 노동신문에는 사회부, 문화부, 스포츠부가 따로 없습니다. 무려 15개의 부서 중에 사회문화부 한 개 부서가 사회, 문화, 스포츠를 다 같이 다룹니다. 북한의 다른 언론사도 실태는 이와 비슷합니다.

 

이는 노동신문의 지면 구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6개 면을 발행하는 노동신문의 면별 구성은 이렇습니다. 1면은 김정일의 동정, 우상화 교육, 김정일을 흠모한다는 외국인 여론, 사설 등이 실립니다. 2면은 혁명전통교양과 계급교양 자료, 당일꾼들의 활동소식, 3면 역시 김정일 우상화 교육과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충신들의 스토리를 담습니다. 그리고 4면에 가서 전국 행정, 경제 일꾼들의 이야기나 미담기사, 노동통신원들이 보내는 기사, 문화공연소식과 체육소식 등이 간단히 실립니다. 스포츠의 경우 국제경기에 나가 패배한 소식은 거의 실리지 않습니다. 5면은 남조선면이며, 6면은 국제면입니다.

 

이러한 지면구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상부(노동당 선전선동부)에서 신문과 방송에 지령을 내리고 부서장들이 이에 맞게 기자들에게 지시를 주는 식으로 굴러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한마디로 기자는 노동당에서 시키는 대로 철저히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라는 지시입니다. 세계 대다수 나라에서 언론인의 중요한 덕목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양심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선 ‘기자=노동당 선전일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남북 언론인의 만남’과 같은 이벤트들이 있었는데, 이는 본질적으로는 ‘남한 언론인과 북한 노동당 선전일꾼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신문에 광고가 실리지 않는 이유 (http://www.dadoc.or.kr/235)


앞에서 잠깐 언급드렸듯이 노동신문을 포함한 북한 신문들은 상업성을 철저히 배재한다는 의미에서 광고란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신문 모든 면이 기사로 빽빽하게 차있습니다. 신문 활자가 작다는 것과 지면 전체가 기사로 차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기사 량은 한국의 12면 신문과 비슷할 것입니다.

 

북한 신문에 광고가 없기는 하지만 지방지인 평양신문에는 간혹 상점의 판매 안내와 같은 공지가 실릴 때도 있는데요. 물론 북한 언론일꾼에게 물어보면 이것은 광고가 절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면서 인민을 위한 정보서비스일 뿐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북한 신문에 광고가 실리는 일은 아주 요원해 보입니다. (지금은 사망한) 김정일 스스로가 광고를 매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2000년 8월 한국 언론사 사장단과 만난 김정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고가 없어서 KBS TV를 내가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KBS TV만 봅니다. NHK도 광고가 없어서 좋고 국제 정치도 잘 다루고 있고, 프로그램을 점잖게 보내서 보수적이어서 내가 좋아합니다. 그러나 중국 CCTV와 러시아 TV들은 관영인지 아닌지 매우 혼탁스럽습니다. 국가소리를 내는 방송이 있어야 합니다. 광고를 하지 않고 말이지요. 나는 NHK와 BBC를 존중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 북한에서 누군가가 독단적으로 광고를 실었다가는 그날로 매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목숨을 걸지 않는 한 누가 그런 용단을 내릴 생각도 하지 못하죠. 이러저러한 점을 고려하면 아마 세계에서 광고비가 가장 “비쌀” 신문은 노동신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북한 신문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북한의 신문은 존재 목적 자체가 한국을 비롯해 세계의 대다수 신문과는 다릅니다. 새 소식 전달보다는 노동당 정책을 선전하고 사람들을 교육시키려는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 때론 황당하고, 때론 웃기고, 때론 진지하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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