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작가로 도약한 신경숙 소설 살펴보니

2012. 6. 14. 13:13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누구에게나 첫 사랑 같은 작가가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아플 때 반창고 역할을 해주었거나 인생과 사랑의 비밀을 일깨워주었거나 외롭고 심심한 어느 날 친구가 되어준 작가들. 각자의 마음속에는 첫 사랑처럼 생각만으로도 온 몸을 핑크빛으로 물들일 것만 같은 작가들이 있을 테지요. 제게는 그 ‘첫 사랑’이 바로 신경숙 작가입니다. 과장을 좀 덧붙이자면 또르르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터지던 사춘기 시절 신경숙의 작품들을 만나 진한 사랑에 빠졌습니다. 제게 책 읽기에 대한 설렘과 흥미를 선물한 이도 바로 그녀였죠. 그녀의 신간을 손에 넣은 날은 온종일 마음이 들떠 외출을 자제했을 정도니까요. 

그런 그녀가 드디어 일을 내고 맙니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말이지요. 짐작하셨겠지만 2008년 출간된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그 중심에 있죠. 이 소설은 현재 세계인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엄마를 부탁해>는 국내에서도 출간 10개월 만에 100쇄 100만부를 돌파하였고 현재까지 200만부 이상의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책입니다. 연극과 뮤지컬로도 제작되었고요. 말하자면 신경숙은 이 소설 하나로 우리 사회·문화 전반에 ‘엄마 신드롬’을 일으킨 셈이지요. 


[출처-서울신문, 2011. 12. 27]



세계 3대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다

그러던 2010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드디어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립니다. 저로서는 기대하고 고대하던 일이었죠. 외국을 여행하면 서점에 꼭 들렀다오곤 하는데 일본이나 미국, 유럽작가들에 비해 한국작가의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것이 현실이에요. 우리나라에도 세계에 내놓고 자랑하고픈 작가와 작품들이 수없이 많은데 우리끼리만 알고 끝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거든요. 그러던 중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세계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있다고 하니 어깨가 들썩이는 것은 당연했지요. 

이 소설은 2010년 미국을 필두로 34개국에 판권계약, 17개국에 출판되는 개가를 올립니다. 특히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는데, 사전 예약만 10만부를 돌파하고 10쇄 이상 중쇄를 거듭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지요. 

더욱 자랑스러운 것은 올 3월 신경숙이 한국인 최초로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입니다. 겹경사가 아닐 수 없죠. 맨 아시아 문학상은 세계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에요. 노벨문학상,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죠. 무라카미 하루키도 최종결선에서 탈락했을 정도로 쟁쟁한 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신경숙은 상이 제정된 이래 최초의 여성수상자로, 최초의 한국인 수상자로 명예의 전당에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


[출처-서울신문, 2011. 08. 29.]



우리 안의 ‘그 무엇’을 건드리는 작가

신경숙이 한국을 넘어 세계의 문을 여는데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지 ‘엄마’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잘 활용했기 때문일까요? 저는 신경숙의 작품 안에는 늘 우리 속의 ‘그 무엇’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오로지 사랑으로만 치유 받고 살아갈 힘을 얻고자 했던 한 여자의 지독한 사랑을 통해 잊혔던 사랑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가하면(<깊은 슬픔>1994), 거칠고 차가운 도시화·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힘겹게 성장하는 소녀를 통해 지난 시대를 돌아보고 현재를 되짚어 볼 자성의 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합니다(<외딴방>1999).

시대에 의해 상실과 아픔의 기억을 간직하고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슬픈 청춘들을 통해 용감히 투쟁하고 서로를 보듬는 희망을 보여주는 가하면(<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2010), 끝없이 희생하고 아낌없이 내어주기만 했던 엄마의 부재를 통해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던 이 시대 어머니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하지요.(<엄마를 부탁해> 2008).       

신경숙은 특유의 섬세한 문체와 시적인 묘사, 시종일관 진지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 안의 실종된 ‘그 무엇’을 아프게 건드립니다. ‘그 무엇’은 글을 읽는 독자마다 다르겠지요. 지나간 사랑의 아픔, 연민으로 얼룩진 자신의 유년시절, 이제는 볼 수 없는 엄마의 뒷모습 등 각자의 기억과 이야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어떤 글에서 ‘신경숙의 글에서는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그녀의 글은 매우 어둡고 습합니다. 거대한 상실과 우울이 배경음악처럼 늘 등장하죠. 그녀의 작품에는 사랑의 기쁨보다는 상실의 아픔이, 탄생의 환희보다는 죽음과 배신의 풍경이 더 자주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늘 그녀의 작품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왜일까요? 이것 역시 그녀의 감춰진 힘이 아닐까요?


▲ 제7회 마크 오브 리스펙트 시상식에서 피터 프렌티스(오른쪽) 시바스 브라더스 아시아태평양 부사장이 올해 수상자인 신경숙 작가에게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다. 왼쪽은 장 마누엘 스프리에 페르노리카코리아 사장. [출처-서울신문, 2012. 02. 29]



끝없는 길 위에 선 작가

전라북도 정읍 시골에서 태어나 구로 공단에서 노동을 하던 여공은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공하였습니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몰래 소설을 읽고 쓰며 문학공부를 하던 가난한 소녀는 이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성장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녀에게는 이제 원하던 원하지 않던 막중한 임무가 주어진 셈입니다. 바로 한국문학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일이지요. 저는 그녀가 지금처럼 시대와 부대끼며 사람들을 끌어안고 울고 웃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멀고 먼 길 위에 서 있을 것입니다. 시대의 애틋한 초상을 치열하게 그려낼 테지요.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발자국을 새기며 저만의 길을 걷고 있는 작가, 신경숙. 그녀의 다음 행선지가 매우 궁금해집니다.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