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생이 신문 찢어 '경제 파일' 만든 이유

2012. 7. 3. 09:16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갤럭시 서프라이즈!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 5조 8000억 원.” 요즘 나는 신문 기사, 특히 이 같은 경제 기사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 출발점은 중학교 2학년 때 읽은 ‘괴짜 경제학’이다. 미혼모, 마약중독, 조직폭력 같은 사회병리 현상을 경제 논리로 척척 풀어내는 책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경제학은 복잡한 그래프이며 방정식 덩어리라는 선입관이 깨진 그날 이후 나는 경제학에 매료되었다.


고 2에 시작된 학교 경제 시간은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이론 중심이어서 생생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좀 더 흥미로운 현실 경제 지식을 얻을 방법은 없을까? 책은 시의성에 한계가 느껴지고 인터넷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신문을 읽자.”


다음 날 새벽, 배달된 신문을 가장 먼저 집어든 건 나였다. 신선한 잉크 냄새에 몸이 떨렸다. 하지만 웬걸. ‘신용 부도 스와프, 지급준비율, 평가절상….’ 경제면을 가득 채운 생소한 어휘들에 식은땀이 흘렀다. 경제 기사 읽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바쁜 아침 시간을 피해 방과 후 여유를 갖고 읽기로 했다. 하지만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고 집에 오면 밤 11시. 파김치처럼 지친 상태에서는 신문보다 티브이나 컴퓨터에 먼저 손이 갔다. 그러길 며칠. 거실 한쪽에 들춰 보지 않은 신문이 수북이 쌓였다. 이런 식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목표를 현실적으로 조정했다. 매일 하나씩이라도 제대로 읽자. 대신 읽은 기사를 파일로 축적해 가자. 그래서 탄생한 게 나의 ‘들쑥날쑥 경제 파일’이다. 이름이 왜 그러냐고? 기사를 고른 후 노트에 잘라 붙이려니 이리저리 삐져나와 보기 사나웠다. 헤드라인과 본문을 따로 오리고 본문도 토막 쳐 붙였지만 여전히 들쑥날쑥하다. 하지만 어떤가. 어차피 경제 현상 자체가 들쑥날쑥하지 않은가.








중요한 개념에는 메모를 했다. 동시에 시도한 게 기사 평가 작업이다. 이름 하여 ‘요절복통 손가락 지수.’ 손가락 다섯 개면 ‘하이파이브(high five)’로 최고 기사, 한 개면 ‘×침을 찌를 만큼’ 형편없는 기사다. 이처럼 메모에 평가까지 마치면 내가 데스크나 편집국장이 된 양 으쓱해진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정부는 돈줄 풀고 한은은 죄고.” 며칠 전 정리한 기사다. 정부는 경기 부양 차원에서 열심히 돈을 풀고 한은은 인플레를 막기 위해 돈을 빨아들인다는 역설적 상황이다. 물론 한은이 돈을 빨아들인다고 정부의 경기 부양 효과가 사라지진 않는다. 정부가 푼 돈이 민간에 넘어가 내수를 자극한 후 한은이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내용이 자못 흥미롭다. 손가락 네 개. 그런데 제목이 걸린다. 다수가 인터넷으로 뉴스 제목만 훑는 요즘 자칫 정부와 한은이 충돌을 빚은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고민 끝에 내린 최종 판정은 손가락 세 개 반.


이 파일이 벌써 노트 한 권을 빼곡히 채웠다. 공부하는 줄 모르고 한 공부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제는 신문의 경제 기사 하나하나가 그렇게 생생하고 매력적일 수 없다. 오늘도 그 풍성한 미디어의 속살을 훑으며 경제학자의 꿈이 영그는 행복감을 느낀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2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중 대상 대원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윤여동 님의 '나의 들쑥날쑥 경제파일'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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