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날 할아버지가 쥐어준 신문기사

2012. 7. 4. 09:23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꼬깃꼬깃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할아버지께서 읽어 보라고 오려 주신 신문 기사다. 봉사활동 면접날이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할아버지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다. 나이를 먹을수록 표현만 서툴러지는 손자다. 주머니에 넣었던 신문 기사를 다시 꺼냈다. 면접 팁을 다룬 짤막한 기사였다. 새벽부터 언제 또 이런 걸 하셨는지 모르겠다.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저려 왔다.








할아버지 댁 안방에는 낡디낡은 화장대가 하나 있다. 화장대 위에는 세월의 묵직함만큼 지난 신문들이 쌓여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날의 시작을 언제나 신문과 함께하셨다. 안방 마루에서 신문을 활짝 펴놓으시고, 빛바랜 갈색 안경으로 꼼꼼히도 읽으시던 모습이 아련히 생각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글자를 읽던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신문을 인생의 벗으로 삼으라고 읊조리시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이렇게 소중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렇다. 면접을 준비하는 데는 신문이 특효약이었다. 지난 기수들의 발자취는 신문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일부는 스크랩을 해서 읽었고, 100초 스피치에 담을 내용은 따로 뽑았다. 신문에 담겨 있던 봉사단의 활약상들은 내 가슴을 더욱 설레게 했다. 기자들의 현장 기록기는 그만큼 생생했다. 꼭 가고 싶었다. 지난번엔 보기 좋게 떨어졌고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100초 자기소개 스피치 시간이다. 신문에서 봤던 사막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인상적이었던 기사도 언급했다. 그만큼 많이 공부했고, 관심 역시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개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내게는 NGO에 대해 아는 단체가 있는지와 환경봉사에 임하는 개인적인 포부 등을 물어보았다. 떨리고 긴장됐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하려 애썼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자칫 순간을 넘기려는 임기응변이 오히려 신뢰를 잃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면접이 끝났다. 허무하고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며칠이 지나고 문자가 도착했다. 최종 합격이었다. 면접도 처음으로 통과하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봉사단도 됐다.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다. 신문이 일등공신이라면 일등공신이다. 면접만 가면 얼굴이 뻘게지고 말도 제대로 못했던 나다. 신문의 도움이 없었다면 최종 합격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뼈저리게 느꼈다. 몇몇 사람들이 비웃던 신문의 종말은 불가능하다. 신문이 품은 아날로그적 지식은 신문만이 전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신문의 통쾌한 반격을 기대하고 싶다. 


할아버지께서는 요즘도 신문 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신다. 여전히 세상 이야기를 꼼꼼히 보고 듣고 계시다. 신문과의 인연은 할아버지를 지나 내게로 향하고 있다. 추억 속에서 꺼냈던 신문과의 인연에 내 미래를 걸고 싶다. 작년부터 나는 기자를 꿈으로 품고 있다. 신문을 통해 배웠던 만큼 사랑하는 이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기사,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의 기사를 나 역시도 쓰고 싶다. 지난여름 따뜻한 손으로 전해 주시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간직한 채 말이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2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중 대학부 금상 성균관대 4학년 이재성 님의 '통쾌한 반격 기대할게'를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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