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 전문 김영미PD가 본 세상 엿보기

2012. 7. 13. 09:3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출판사 팀장님으로부터 책 두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 <사람이, 아프다>라는 책이었죠. 저자는 그 이름도 생소한 김영미라는 분쟁지역 전문PD. 말하자면 이 책은 그녀가 12년이라는 오랜 세월 세계 분쟁현장을 오가며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한 다큐에세이입니다. 


한동안 저는 두 가지 핑계를 대며 그녀의 책들을 멀리했습니다. 내전과 기근 등 심각한 이슈들을 다룬 다큐에세이니 지루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과 당장 개인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죠. 후자는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핑계였더군요. 제가 에이즈환자나 청년실업자가 아니라 해서 에이즈나 실업문제를 외면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으니까요.



[출처-서울신문]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잠시 펼친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으며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넘치게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PD 김영미는 서른의 나이에 동티모르 여대생이 내전으로 희생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무작정 낯선 나라로 떠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서른이 되던 그때까지 잘하는 일은 오직 설거지뿐이었던 여자가, 아이를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를 하던 평범한 아줌마가 세계의 참상을 알리는 다큐멘터리 PD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남들이 선뜻 가길 꺼려하는 극심한 분쟁지역을 포함, 전 세계 60여 개국을 다니며 역사의 뒤안길에 희생된 평범한 이들의 아픔을 포착하기 시작했어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 남미의 콜롬비아까지.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눈물에서, 영양실조로 뼈만 남은 아이의 신음까지 김영미는 세계 구석구석의 고통과 절망을 빈틈없이 담아냈죠.





작은 거인의 희망보고서


그녀는 저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작은 거인’으로 통한다고 합니다. 책을 조금만 읽어봐도 십분 이해되는 애칭이예요. 그녀는 탈레반 본거지로 들어가는가 하면 동원호가 해적에게 납치되었을 때는 가방 하나 달랑 메고 혼자 몸으로 독점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출처-(왼쪽부터 시계 방향)yes 24, 서울신문]




그런데 그녀가 단지 고통과 절망에만 집중했다면 이 책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보고서로 끝났을 수도 있어요. 다행스럽게도 글의 곳곳에는 절망뿐인 상황 속에서 그녀가 발견해 낸 순수한 희망과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마음으로 가족의 안녕과 이웃의 평화를 기원하는 소시민들의 갈망이 담겨있습니다. 방송인 김미화의 말처럼 책을 덮으면 아주 당연한 사실들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거예요. 어떤 이념도 아이들의 밥 한 끼보다 중요하지 않음을, 어떤 종교도 한 여성의 자유보다 소중하지 않음을, 어떤 권력도 한 가족의 단란한 식사보다 대단치 않음을 말이죠.



어쩌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꿋꿋하게 삶을 꾸려가는 모습에서 그 어떤 무용담이나 모험담보다 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처한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는 그들도 희망을 가질 때가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류애를 지닌, 가슴이 뜨거운 피디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평범한 그 누군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다.





세계를 이해하는 눈 갖기


처음 <세계는 왜 싸우는가?>를 읽으며 외마디 탄성을 숱하게 내질렀습니다. 나름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하며 세상의 질서와 틀을 조금은 알고 있다고 여기던 저 자신에 대한 편견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고 있던 세계는 그러니까 너무나도 단편적인 하나의 조각에 불과했어요. 저는 수박의 알맹이는 보지 못한 채 겉모습만 보며 수박은 몽땅 초록이라고 여겨버리는 우스운 편견 속에 살던 것이었죠.



[출처-(왼쪽부터)yes 24, 서울신문]




김영미 피디는 ‘그런 이유’로 이 책들을 썼다고 밝힙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기에, 우리 아이들과 다음 세대가 이 문제에 무관심하다면 전쟁은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절망일 수밖에 없죠. 1년 중 9개월을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이 용감한 피디는 무엇이 오늘날 국가와 국가 간의 갈등과 분쟁을 가져왔는지, 그렇다면 이 다툼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들은 무엇이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이해하는 눈을 갖게 만들어주죠.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자랑한다는 우리 청춘들의 화려한 스펙이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의 그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책 속의 한 일화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어느 날 김영미 피디는 외국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고해요. 알다시피 게스트하우스는 배낭여행을 하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 숙소죠. 그 날도 역시 다양한 국적의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화의 주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으로 옮겨 붙었고 학생들은 제각각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며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깔깔 거리며 시끌벅적하던 한국학생들만 침묵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김영미 피디가 조심스레 다가가 왜 대화에 동참하지 않는가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그 문제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진짜 공부’에는 등을 돌리고 학점과 취업만을 위한 공부에만 몰두해온 대한민국 청춘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해지는 일화였습니다.

 

지구촌의 아픔을 나누진 못할지라도 이해하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국제정세와 관계들을 둘러싼 복잡한 용어들에 질린 사람이라면 그녀의 책들이 훌륭한 입문서가 되어 줄 것입니다. 특히 세계관이 형성되고 있는 청소년들과 세계를 위해 땀방울을 흘리고 싶어 하는 청춘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밝은 이정표가 되어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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