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전(苦戰) 극복위한 고전(古典)읽기

2012. 7. 24. 10:18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하루에도 수십 종의 신간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 년 넘게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대의 다양하고 재빠른 변화만큼 책의 생명력도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베스트셀러 도서들이 순간의 유행과 트렌드에 힘입어 인기를 얻게 되고 유행이 지나면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추세입니다. 더 자극적이고 더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세태로 인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골치 아픈’ 책들은 독자의 외면을 받습니다. 


그런데 일 년간 꾸준한 사랑을 받기도 힘든 현실에서 수 십, 수 백 년 간 사랑을 받으며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책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흔히 말하는 ‘고전’에 관한 이야깁니다. 그 안에 사랑의 가치가 있든 자아의 혁명이 있든 혹은 단순한 재미와 감동이 있든 분명 ‘무언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고전은 흔히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선뜻 펼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지루함을 무릅쓰고라도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들, 고전(古典)이 어떻게 삶의 고전(苦戰)을 면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들을 담고 있는가 밝혀보고자 합니다.




▲EBS 다큐 프라임 <서당>의 한 장면





뿌리를 바꿔주는 혁명적 독서

모든 고전은 당대의 문제작이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현실과 싸워 부딪치고 고민한 끝에 탄생한 치열한 결과물이라는 것이죠. 그 깊이와 열정이 남달랐기에 세상에서 가장 거스르기 힘든 시간의 힘마저 초월해 현재까지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겠지요. 시공간을 뚫고 영생을 얻을 수 있었던 고전의 힘은 뿌리를 뒤흔들며 삶의 혁명이 가능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덮으면 그만인 책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의 끝에 혁명마저 얻어내게 하는 힘을 갖고 있지요. 고전의 힘을 절감할 수 있는 매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929년, 서른 살이던 허친스(Robert Hutchins)는 시카고 대학의 5대 총장으로 부임합니다. 당시 시카고 대학의 많은 학생들은 열등감과 패배감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꿈과 비전을 상실하였기에 공부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지요. 아이들의 무기력함을 개혁하기로 마음먹은 허친스는 일명 ‘그레이트북 프로그램(The great book program)’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졸업 전까지 백 권의 고전을 읽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백 권을 단지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세 가지의 목표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는데, 그 첫 번째는 고전에서 자신만의 롤모델을 발견하는 것, 두 번째는 인생의 가치를 찾는 것, 세 번째는 발견한 가치에 꿈을 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지금까지 85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한 명실공히 세계 초일류 대학으로 성장한 것이 그 생생한 증거지요. 




▲김홍도 <서당>




이는 비단 시카고 대학만의 일화가 아닙니다. 세인트존스대학 같은 경우 전공과목이나 교양강좌가 아예 없으며, 백 권의 고전 토론이 대학 사 년 커리큘럼의 전부라고 합니다.(이지성, 황광우 <고전혁명 생각정원. p.41. 참고) 이쯤 되면 고전을 단지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라고 평가절하하는 분들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고전에는 삶을 바꿀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도 뿌리째 바꿀 수 있는 힘이. 뿌리를 바꾼다는 것은 온전히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서 있는 땅의 지층을 재배열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처세술만 짜깁기한 책을 통해 나를 혁명할 수 있을까요? 얄팍한 가치로 중무장한 책을 통해 삶의 의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일시적으로나 단기적으론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머나먼 길의 이정표를 얻고자 할 때는 얘기가 달라지지요.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전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편견을 깨뜨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고전은 현재 현실에서는 적용이 불가능하며 단지 교양을 위해 읽는다는 편견을 깨시기 바랍니다. 고전은 수면제 대용으로 쓰일 만큼 지루하고 딱딱하다는 편견도 버리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혁명’(혁명이란 거창한 의미가 아닙니다. 습관 하나를 정복하는 것도 인생의 혁명을 경험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을 원하신다면 매사에 긴박함과 절실함을 갖고 고전을 파헤쳐보십시오. 왜 (현재 당신이 손에 든 그 책이) 수 백 년의 세월동안 인류를 변화시켜왔고 누군가에겐 등불이, 누군가에겐 방패가, 누군가에겐 창검이 되었던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장혼이 목활자로 만든 서당교과서 몽유편




무엇보다도 고전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시길 바랍니다. 남의 생각을 암기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진정한 나를 재편하십시오. 인문학자 황광우 씨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 있어 지구의 생명체들 중 유독 호모사피엔스에게 눈독을 들인다면 그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프랑스의 에펠탑 때문이 아니며 아마도 지난 삼천 년 동안 성취한 영혼의 기록물, 고전일 것이라 확신한다고 이야기했지요. 고전이야말로 위대한 세계 문화유산의 덩어리일 테니까요.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숱하게 나를 변화시키겠다는 결심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서점을 기웃거리며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을 사들이기도 하고, 강좌를 듣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안에서 원하는 변화를 얻어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도 삶이 늘 제자리라 여겨진다면 지금이야말로 고전을 공부할 시기입니다. 그것은 근본과 뿌리를 다스리고 치유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임에 분명하니까요. 


공자의 <논어>, 한비자의 <한비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노자의 <도덕경>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이 수많은 고전을 간과하고 삶을 마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요? 인류가 남긴 영혼의 일부를 외면하고 지나친다는 것은 건강을 위해 온갖 보양식을 챙겨 먹으며 정작 운동은 기피하는 우를 범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고전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의 근육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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