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동 감독이 말하는 내 영화의 힘

2012. 9. 25. 13:56다독다독, 다시보기/현장소식




이번 리더스 콘서트에서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탄생시킨 민규동 감독님의 강연을 듣고 왔습니다. 영상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영화감독이지만 민규동 감독은 스스로를 활자세대 영화감독이라고 말하는데요. 활자세대 영화감독이 뜻하는 바가 뭔지, 영화감독이 어떻게 됐는지 민규동 감독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들어보실까요.






민규동 감독 프로필


한국영화아카데미 13기 졸업, 프랑스 파리 8대학 영화과 실기 석사 수료함. 연출한 영화로는 <내 아내의 모든 것, 201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2011>,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2008>, <여고괴담 2, 1999> 등이 있음



민규동 감독은 학창시절 글쓰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수업시간에 한 친구의 시를 듣고 굉장한 충격을 받은 뒤로 글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자신을 빗방울의 관점에서 표현한 친구의 시를 듣고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그 친구를 몹시 부러워했다네요. 그 때, 민규동 감독의 자양분이 됐던 책이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때 사주신 ‘소년소녀 세계 명작 전집‘이었다고 합니다. 글에 대해 처음 가진 호기심을 충족시켜준 책이었던 거죠. 



시와 손편지를 사랑하는 문학 청년으로 거듭나다


민규동 감독이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휴대전화도 없고 컴퓨터도 막 대중화 되던 시기라고 해요. 유일한 소통 수단은 공중전화였기 때문에 모임 같은 것은 학교 앞 서점의 메모판을 이용해서 이뤄졌다고 해요. 심지어 외국에 나가 있을 때도 인스턴트 메신저로 실시간 연락이 가능한 지금과 너무 다른 시대네요. 민규동 감독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시와 함께 편지를 썼는데 한 번 쓰면 10장씩 썼다고 합니다. 워낙 편지를 많이 쓰다 보니까 나중에는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글을 싫어했던 학창시절의 민규동 감독과 사뭇 다르죠? 민규동 감독 영화의 탄탄한 구성은 이 때 글을 많이 써봤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황하던 시절의 안식처, 시네마 테크


대학 동아리 등 여러 활동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다 군대를 가면서 민규동 감독의 인생 행로는 또 바뀌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같은 멋진 장교같은 군인을 상상하다 그저 엑스트라 일뿐인 군인의 실상을 깨닫고 방황했다고 해요. 그때 발견한 안식처가 부산에 있었던 ‘시네마 테크’ 영화관! 그곳에서는 히치콕, 고다르처럼, 접하기 힘든 외국 감독들의 영화를 상영해줬다고 합니다. 영화는 그저 킬링 타임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예술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신촌의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6개월 짜리 영화 강습 프로그램을 수강했다고 해요.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의 꿈에 한발짝 다가가게 된거죠. 






감독 데뷔보다 그 이후가 중요한 이유 


친구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는게 다였던 민규동 감독. 어떻게 생각하면 영화감독으로서 준비가 안 된 사람이었죠. 하지만 4년만에 영화 감독으로 데뷔를 했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재미와 흥행을 겸비한 작품으로 꾸준히 영화 감독의 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 데뷔 후 더 큰 어려움에 많이 봉착한다는 그의 조언은 들을 가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데뷔 후에 ‘영화에서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 모르게 되는 순간에 좌절하게 된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안에 할 말이 없고, 세상이 어떤 것인지 사람은 어떤 것인지, 세상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변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자기만의 필터, 자기만의 개똥철학이 있어야 표현할 수 있는거라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너무나 많은 민규동 감독은 그 원천을 어렸을 때 읽은 ‘소년소녀 세계 명작 전집’로 꼽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소설들이라고 해요. 거기서 받은 에너지를 아직도 쓰고 있는거죠. 예를 들면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 생을 몇 번이고 다시 살아도 좋다’는 말을 가지고 삶을 예찬하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란 영화를 만드는 힘을 얻는거죠. 






제 책들에서 받은 저의 철학은 “인생은 유한하다”는 거예요. 저희가 언젠가는 다 죽어요. 이거 비밀인데. 알고 계세요? (웃음) 안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잘 몰라요.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이 영원하다는 생각이랑 똑같아요. 저는 인생이 유한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 인생은 짧기 때문에 이 짧은 인생동안 얼마나 행복해야 하는지, 얼마나 충실하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지가 절박했어요.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관심, 편견, 시스템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밀도 있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 저는 뭔가를 계속 쓰고 표현하고 만들고 그렇게 살 것 같아요. 



어릴 적 읽었던 세계명작 전집이 감독으로서 활동하는데 가장 큰 자양분이 된다고 말한 민규동 감독. 강연을 듣고 나니, 그는 감독이라기보다는 한 명의 훌륭한 이야기꾼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민규동 감독은 강연의 마지막에, “여러분들이 부럽네요”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감독님께서 대학을 다니던 당시에는 수업이나 강연을 통해 외부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하네요. 민규동 감독님이 살고 있는 지금은, 감독님께서 어릴 적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그런 삶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상상하는 곳 너머에 있는 미래를 만들어 보세요~ 리더스 콘서트가 여러분의 자양분이 되어 드립니다.




민규동 감독 Q & A


Q : 대학시절에 고전을 읽고 독서 배틀을 하셨다고 했는데, 영화의 소재를 구상하는데 그 때의 경험이 어떤 식으로 영감을 주나요?


A :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경험이 체화돼서 자동반사적으로 작품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옛날에 만들어진 작품이 오늘날 까지 우리에게 읽힌다는 것은 그 만큼 고전은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생존력이 강하다는 거죠. 영화의 플롯은 고작 20여 가지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들이 이미 책 속에 녹아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만들게 된 것 같아요. 다만 책을 책 그 자체로만 보지 못하고 그 안에서 영화의 소재를 구하고자 하는 직업적인 태도가 나타날 때 스스로 경각심을 갖게 돼요.

  


Q : 그런 생각이 들 땐 어떻게 하세요? 


A : 그냥 자연스럽게 보려고 애쓰죠.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해요. 여러분은 영화를 보실 때 ‘아, 재밌다.’ 하고 보시는데 저는 스크린 밖이 보이거든요. 스탭들의 위치, 감독의 상태, 배우의 심리 같은 요소가 보여서 영화 자체에 집중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책의 즐거움을 잃을까봐 늘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 멋모르고 읽던 고전이 창의력 키워”>조선일보 기사 읽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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