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문에 기자 실수로 오탈자가 생긴다면?

2011. 6. 1. 09:0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전 세계에 존재하는 신문 중 오자(誤子)나 탈자(脫子)를 가장 찾기 힘든 신문은 어느 신문일까요?

물론 세계 모든 신문을 다 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만약 제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주저 없이 “북한 노동신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노동신문만큼 교열 단계가 많은 신문은 세계에 아주 극소수 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혀 없다고 하지 않고 극소수라고 답한 이유는 위에서 쓰다시피 제가 전 세계 신문을 다 보진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모르죠. 중국의 인민일보도 교열시스템이 아주 철저할 수도 있죠.





교열 실수하면 바로 ‘혁명화’ 직행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자를 냈을 때 처벌은 북한이 가장 심하다는 점이죠. 교열 기자들이 실수로 김정일 관련 기사의 표현에 오자를 냈으면 그는 바로 ‘혁명화’를 가야 합니다. 혁명화라는 것은 힘든 노동현장에 가서 단련한다는 의미로 쓰는 말인데, 쉽게 말하면 물 좋은 사무직에서 노동자나 농민으로 강등시킨다 이렇게 해석하면 됩니다. 경우에 따라 복직되는 경우도 있지만 영원히 농민으로 묻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북한에서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탈북자는 ‘김일성 원수님’을 ‘김일성 원쑤님’이라고 잘못 나갈 뻔한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에서 원쑤는 자기에게 원한이 맺힐 정도로 해를 끼친 사람을 의미하는 ‘원수(怨讐)’와 같은 의미입니다. 다행히 인쇄 직전에 발견돼 화는 면했다고 합니다.


또 한번은 한 작은 신문에 ‘로동신문(우리는 ‘노동신문’이라고 쓰지만 북한에선 ‘로동신문’으로 씁니다)’이 ‘로동신신’으로 인쇄돼 나갔는데 이 신문 주필이 6개월간 혁명화를 나갔다고 합니다. 작은 신문이 이 정도니 노동신문 같은 데서 오자가 발견됐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주 큰 대형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자는커녕 한국의 신문에서 다반사로 볼 수 있는 잘못된 띄어쓰기조차 찾기 힘듭니다. 북한 신문은 그 자체로 완벽한 북한 표준어 맞춤법칙사전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신문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잡지와 같은 다른 출판물도 엄격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오탈자 발견되면 바로 윤전기 세워


한국 신문들에서 교열은 대체로 4단계를 거칩니다. 우선 쓰는 기자가 자체 교열을 보고, 이어 차장과 부장이 데스킹을 봅니다. 그 다음 기사는 한국어 전문가들로 이뤄진 교열팀을 거쳐 최종 발행됩니다. 그렇게 4단계를 거친 기사도 다음날이면 잘못된 것들이 꼭 발견됩니다.


노동신문은 한국의 교열시스템에 더해 몇 단계의 검증단계가 더 있습니다. 우선 인쇄소에도 자체 교열팀이 있습니다. 기사가 인쇄소에 넘어가도 끊임없이 교열이 이뤄집니다. 인쇄 중에도 오탈자가 있으면 윤전기를 세웁니다. 각 교열단계마다 책임자가 명기되기 때문에 나중에 오류가 발견돼도 어디부터 처벌해야 할지 당사자들이 바로 정해집니다.


한국 신문의 경우 오류가 발견돼 윤전기를 한번 세우면 수백만 원의 돈이 하늘로 날아갑니다. 그러니 아주 중요한 기사를 끼워 넣는다거나 정말 명백한 잘못이 발견되지 않으면 윤전기를 세울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오탈자 잡겠다고 수백 만 원 날리기엔 너무 치러야 할 대가가 크죠. 그런데 북한 신문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오자가 발견되면 무조건 윤전기를 세웁니다. 인쇄소 교열이 끝이 아닙니다. 다 인쇄된 신문을 놓고 다시 교열에 들어갑니다. 이것을 후열(後閱)이라고 합니다. 후열에서 잘못이 발견되면 이미 출판된, 배포직전의 수십만 부를 전부 폐기하고 다시 찍습니다. 실제로 외국에 선전용으로 내보내는 외국어문헌이 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 배달됐다가 오자가 발견되자 다시 비싼 택배비를 지불하고 전량 북한에 반송된 사례도 있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건 북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신문을 언론이라고 보기보단 선전매체로 보기에 가능한 일이죠. 수령의 권위와 위신에 관해서 사소한 잘못도 용서치 않고, 선전선동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지 않는 북한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속보경쟁 없는 북한의 신문


북한 신문에 오자가 없는 비결은 또 있습니다. 바로 아주 적은 지면과 매우 많은 기자, 속보경쟁 없는 제작 시스템 때문입니다. 노동신문은 하루에 발행하는 지면이 6개에 불과합니다. 대조적으로 한국 메이저 신문들은 하루 평균 50개 지면을 발행합니다. 한국 신문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더라도 노동신문의 지면이 훨씬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신문을 제외한 북한의 다른 신문은 4개 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기자 및 편집원은 노동신문이 600여명에 이릅니다. 한국 메이저 신문이 보통 300명 내외의 편집국 인원으로 제작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많은 숫자입니다. 그러니 노동신문 기자라고 해도 신문에 자기 기사가 한번 나가기 정말 힘듭니다.


노동신문은 이에 더해 각 지방에 ‘노동통신원’이라는 취재인력을 수백 명 넘게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노동신문에 소속된 기자는 아니지만,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주변의 미담 등 기사가 될만한 일을 짬짬이 기사형식으로 정리해 신문사에 보냅니다. 말 그대로 통신원이죠. 노동통신원의 기사는 1년에 한번도 실릴까 말까 합니다. 그럼에도 이중에도 자기 기사를 잘 통과시키는 수완 좋은 통신원들이 눈에 띕니다. 이런 기사는 대개 그 지방 간부들이 잘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노동신문에 기사를 잘 통과시키는 통신원은 그 지방 간부들의 신임을 받을 수밖에 없죠. 1990년대엔 한남 단천 시의 모 농장 통신원이 1년에 기사를 3~4차례나 노동신문에 내더군요. 남들은 몇 년에 한번도 못 낼 때 말이죠.


노동신문은 중앙당 선전부에서 내려 보낸 선전선동 자료를 받아 몇 개 면씩 내보내는 날도 상당히 많습니다. 또 경쟁사가 없기 때문에 속보를 전달할 긴급한 상황도 많지 않고요. 그러니 기자는 자기 기사를 며칠 동안 다듬고 또 다듬을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선 노동신문에서 오자가 나온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다른 신문도 기자가 많고 지면이 많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다른 신문은 4개면 중 2개면 정도는 노동당에서 보내는 자료나 노동신문에서 보내온 기사로 채웁니다. 그러니 오자가 발생할 확률은 더욱 낮아지겠죠. 그럼에도 교열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저도 북에서 살 때 노동신문에 오자가 난 것을 한두 번 정도 보긴 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북한 신문이 아무리 오탈자가 없는 신문이면 뭐합니까. 비록 오탈자가 많아도 날마다 새로운 소식을 가감 없이 전하는 신문이 몇 백배로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독다독